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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로 그 문에 들어가며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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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세상사람 중에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상의 특권에 따르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롬 8:15). 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지키고 보호하며 인도하십니다(사 41:1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앞서 나가시며 자기 백성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나면 영원한 나라 천당을 예비해 놓았습니다(고후 5:1).
그 무엇보다 더 큰 행복은 성도의 삶속에 감사의 조건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짜증나는 세상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할 일들로 가득 차 있지만 주님과 더불어 임마누엘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본문 말씀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나 그 궁정에 들어간다는 말은 모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은혜와 감사와 찬송은 서로 연결된 용어로써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며 행복한 삶의 내용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시 30:4-5).

I. 믿음으로 감사합시다.

성도의 감사는 눈에 보이는 조건들만 가지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모든 일이 형통하고 성공할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믿음이 감사로 연결되는 삶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히 11:1).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뿐이지만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1) 생명이 보존되는 것에 감사합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서는 엄청난 자연재난과 충격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삽시간에 수만 명의 생명을 삼키면서 쓰나미가 휩쓸고 가기도 하였고, 지축을 흔드는 지진으로 인하여 한 도시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참사들도 보았습니다.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는가 하면 각종 사고와 질병 앞에 인간의 생명이 무력하게 노출되는 모습을 실감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목숨이 보존되고 이 정도라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 17:28).

(2)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죄와 마귀가 들끓는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임마누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와 함께 로마에서 믿음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하나 그의 곁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10-11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 모세와 함께 출애굽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사십년간의 광야 길에서 모두 다 죽어 그곳에 묻혀버렸습니다. 역사적으로 지상의 교회가 존속하는 동안 환난과 유혹과 온갖 시험에 시달리며 그침 없는 싸움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핍박하기도 하고(벧전 5:8), 광명한 천사처럼 유혹하는가 하면(고후 11:15), 때때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발동시켜 흔들기도 하는 것입니다(롬 7:23).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셨기 때문입니다(고후 5:14).

(3) 교회를 통하여 은혜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교회가 삶의 구심점이 됩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의 지체라고 하였습니다(엡 4:16). 세상살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변화 가운데서도 우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5:5). 성도가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에서도 교회에 나와 경건한 예배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또한 성도들과 교제를 하며 주께 받은 사명과 은사대로 봉사할 때 거기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신령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Ⅱ. 구약시대 성도들의 감사

구약시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특별한 민족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신명기 7:6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3:21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감사할 이유

본문 말씀 2절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가 지으신 피조세계로부터 찬송받기를 원하십니다(시 19:1-2, 롬 8:21). 또한 하나님은 왕으로서 자기 백성으로부터 찬송과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요 1:11, 시 145:1).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시 23;1). 선한 목자의 경우 양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사랑으로 돌봐줍니다(요 10:14-15). 그러므로 양된 자기 백성은 목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여야 됩니다. 시편 79:13에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 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2) 감사하는 절기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지킬 감사의 절기를 율법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16:16-17에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하는 삼대 절기는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담아 감사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출 23:15). 유월절의 상징은 피를 흘리고 희생이 되어 준 어린양이 됩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후 오십일 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 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손으로 수고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신 것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밭에서 거둔 곡식을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한편 수장절을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기간 초막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하면서 오늘의 안정된 장막 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3) 감사의 행위

시편 116:12-14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17절에는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

① 하나님께 찬송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송하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136편에는 모든 절다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는 말로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날에 겪었던 고난과 거기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온 다음 미리암이 소고를 들고 춤을 출 때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하고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였습니다(출 15:21).

②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린다”는 것은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신명기 16:16-17에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가장 좋은 것으로 정성이 담겨져 있어야 됩니다. 잠언 3:9-10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③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고 하였습니다(18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향하여 신앙고백을 하면서 헌신을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자기 입으로 하나님께 고백한다고 서원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그냥 넘겨버리기를 잘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의 경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시 15:4).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가 됩니다(갈 6:7). 우리가 은혜 받고 감격하여 하나님께 서약한 바를 성실하게 이행하여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Ⅲ. 은혜 받은 성도들의 감사

로마서 12:1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때나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적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고 하는 말씀도 역시 감사하는 생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감사의 특징을 신약적인 의미에서 살펴보면,

(1)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감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5:20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였습니다(고후 9:15). 바울의 경우 실제로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행 16:25).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갈 때는 지중해에서 유라굴로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마른 떡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들에게 먹여 주기도 하였습니다(행 27:35).

(2) 정성을 다하는 감사입니다.

감사에는 어디에서나 헌물이 따라오게 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예배를 드릴 때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것을 제물로 드렸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일 년 되고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레 1:2-3). 곡식으로 예물을 드릴 때도 처음 익은 것 중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19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들로 보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가장 귀한 것으로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헌신을 보시고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하시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막 14:8-9).

(3) 즐거움과 소망에 넘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사는 자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움의 헌신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주겠다고 하면서도 마냥 즐거움과 행복에 젖어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눅 19:8-10).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 수감되어 있으면서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광대함을 깨닫고 행복해 있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3:18-19에 보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죽음이 눈앞에 이른 순간에도 하늘나라의 확신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인생을 자랑하며 감사와 찬송으로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딤후 4:7-8).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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