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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제일 큰 감사 (시 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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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새삼스럽게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들을 생각해 봅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생각해 보니 참 받은 은혜와 복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 또 큰 은혜가 되어 내 삶에 넘침을 느낍니다.

저라고 살아오면서 당한 어려움과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몇 번이고 죽고 싶었을 만큼 저의 삶도 고단하고 피곤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 고난의 흔적과 상처들이 제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만한 일들이 제게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니 제가 당한 모든 어려움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우리의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탓할 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며 사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하나님께는 감사할 일만 있었습니다.

정말 생각해 보니 살아오는 동안 격은 모든 좋은 일들, 귀한 일들, 복된 일들은 다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격은 모든 나쁜 일들, 힘든 일들, 괴로웠던 일들은 다 나와 우리 인간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맹신적이지 않은가 생각하시는 분이 혹 있으실는지 모르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저에게 그와 같은 생각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받은 은혜와 축복이 참 많았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저 쉽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 통에 태어나서 가난한 중에도 조금 더 가난하여 사는 일에 불편함이 많았고, 쪼들리는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굶지 않고, 한 데 잠자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저는 무엇보다도 감사합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여유 있게 되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웬만한 필요한 것은 큰 불편 없이 언제든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의 하나님께 대한 저의 감사는 그것이 제일 큰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굶지 않고 한 데 잠자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이 제일 감사합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안정된 지금도 행복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쪼들렸던 과거 어렸을 때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좋은 친구들 때문에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렸을 적 생각하면 자다가도 행복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저에게 가난했지만 행복한 어렸을 적 추억을 주신 하나님이 저는 참 감사합니다.

많은 사고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지켜주신 하나님이 저는 감사합니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집에 큰 불이 났었고, 그 때 제가 불타는 집 속에 있었지만 죽음을 무릅쓴 아버지에 의해 구출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차례의 큰 차 사고도 있었습니다. 83년도와 93년도 그리고 2003년도에 당한 차 사고들은 죽어도 할말이 없는 큰 사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살아보니 세상은 참으로 위험한 곳입니다. 이런 저런 사고와 위험이 늘 충만한 곳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 저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늘 지금까지 저와 제 가정과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곤 합니다.

제게 행복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가정과 자식에 대하여 책임감이 있는 부모님을 만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합니다. 좋은 아내를 만나 세 아들을 낳고 살게 된 것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세 아들이 모두 다 크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잘 자라 준 것이 감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제 아이들이 모두 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 아이들이 된 것이 제일 감사합니다. 제가 아무리 목사라고 하여도 그것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아이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된 것이 저는 무엇보다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요즘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마치 구름에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미친 듯 들떠서 삽니다. 한 달 여 전에 태어난 제 손녀 때문입니다. 다들 그러시겠지만 너무너무 예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매일매일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삽니다. 정신없이 짜여져 있는 일정들을 날마다 살피며 언제쯤 대전에 살고 있는 손녀에게 내려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저를 할아버지 되게 해 주신 하나님이 저는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딸 없이 아들만 키운 저에게 첫 손녀를 주신 하나님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 업어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목회자 되게 하신 하나님이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저를 목사 되게 하셨습니다. 물론 음악을 했어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목사가 된 것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 누리는 행복과 만족과 감사는 경제적인 삶이 안정되어 누리는 행복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혼자 커서 사람대하는 것이 서툰 제가 사람들을 대하고 다루는 목회를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좋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된 것이 저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누가 뭐래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특히 높은 뜻 숭의교회 목사 된 것이 행복합니다. 주일 날 예배 전 후 로비에서 커피와 차 한 잔씩을 들고 웅성거리시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배가 부릅니다. 큰 운동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장 가득 메운 자동차를 보면 행복합니다. 교회의 이곳저곳에서 봉사하시는 교인들을 보면, 그리고 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런저런 사역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특히 저는 저희 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4부 청년예배를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갈 때 예배당으로부터 사무실로 내려가는 짧지 않은 길이 우리 교회 청년들로 가득 찹니다. 500평이 넘는 청어람 교육관이 정말 터져 나갈 것 같이 청년들로 복작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 아름다운 제물위에 나를 번제로 쏟아 부어도 하나 아까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 만해도 감사하고 행복한데 부족한 저에게 전국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젊은이들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표현으로는 너무너무 부족함을 느낍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저도 나의 잔이 넘칩니다.

이것만해도 저는 너무너무 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모든 은혜와 축복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제일 큰 감사가 있습니다.

제에게도 여러분들이 잘 모르시는, 제 아내와 아이들이 잘 모르는 죄와 허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러분들과 저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감추고 싶은, 감추어야만 하는 부끄러운 일과 허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은, 아니 나라고 하는 인간은 죄와 수치와 허물을 자동적으로 생산하는 기계 같아 보입니다.

대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점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아주 치명적인 것도 있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을 단숨에 빼앗아 가 버리 수 있는 치명적인 죄와 허물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지만, 그래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탄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사탄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된 사람을 어떻게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아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안다고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차라리 편안이라도 하겠습니다. 해결도 하지 못하면서 그와 같은 사실을 안다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제일가는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저는 저의 모든 죄와 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흰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깨끗해졌음을 믿습니다. 그 때문에 제 모든 허물과 죄를 낱낱이 알고 있는 사탄이 저를 고발하지 못하며 송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더러운 그릇과 같은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게 하사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내는 하나님의 그릇과 도구로 삼아주시고 열심히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이 저는 제일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고백한 말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제가 바로 그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게 있어서 손녀딸을 얻은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할 수 없는 큰 복보다 더 큰 복이 제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죄의 은총과 복입니다. 하나님의 속죄가 없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으셨다면 제가 누리는 모든 은혜와 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시 중에 선물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내야 흙이 온대 밀랍이듯 불 켜시고
한 평생 돌이 온 걸 옥의 문양 그으시니
난생처음 이런 조화를 보겠네.

흙이 밀랍 되어 어두운 세상 밝히는 빛이 되고, 흔 하디 흔한, 아니 천하디 천한 돌이 옥처럼 쓰임 받는 축복처럼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은혜는 없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된 것보다 귀한 은혜는 없습니다.

시편 116편 12절에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 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아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주신 영생의 축복을 생각하면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양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문제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다 그리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시고 감추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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