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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시기오놋에 맞춘 찬송과 감사 (합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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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바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도
지금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정국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바국 선지자는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찬양예배를 드리면서
하바국의 시기오놋에 맞추어 드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 드리는 감사와 찬송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앞날을 부여 앉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선지자 하바국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1절에「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바국의 기도라 ] 합니다.
시기오놋이란 열정적인 노래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바국이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니 하바국 선지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입니다.
하바국의 심령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마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먼저 내 마음이 불길처럼 뜨거워진다는 것입니다.
왜 내 마음이 뜨거워야 하고 내 마음에 불길이 타올라야 합니까?
내가 변화 되어야만 환경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지성 <장 콕토>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 만약 당신의 집에 불이 났다면 당신은 먼저 무엇을 갖고 나오겠는가. ]
사람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입니다.
그냐, 말할 것도 없이 귀중품부터 챙겨야지 하면서
현금이 우선이고 어떤 사람은 보석, 땅문서,
모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 콕토 자신의 대답은 특이합니다.
[ 나는 불을 갖고 나오겠소 ]
그 말의 의미는 그것은 불을 갖고 나와야 불을 끌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전적인 불의 열정을 갖고 나오겠다는 고백이다.
비록 모든 것을 불 속에서 잃었어도
그 속에서 불의 열정만 건졌다면 잃은 것의 전부보다 더 큰 것을 얻은 셈입니다.

하바국 선지자 가슴에 바로 이 불이 붙었다는 말입니다.
본래 은혜란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깨닫고 보니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불이 얼마나 크게 붙었든지
선지자 하바국이 놀라 충격을 받을 정도입니다
하바국 선지지자가 이렇게 놀라 충격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바국 선지자는 주전 610년경 남쪽 유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로서
이때는 선한 왕 요시아가 죽고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느고로 하여금
왕을 가두고 동생 엘리야김으로 왕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김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하나님의 전을 헐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교만만 잔뜩 가지고
실지로는 우상숭배 형식적 예배 등을 통해 하나님을 패역했던 것입니다.
이럴 때 하바국 선지자가 바라보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의조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1:2절 하나님 내가 부르짖어도 왜 듣지 아니하십니까? 하면서
하나님 백성이라 하는 유다가
이렇게 간악하고 패역하며 분쟁과 변론만 일삼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데 어떻게 그냥 두십니까?
이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떨어져 믿는 사람들까지 흔들립니다.
그럴때 하나님이 답변하십니다.
1:5절 [ 너희는 놀라고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인데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너희 견고한 성읍을 취할 것이니라 ]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리라는 경고입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하바국 선지자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악을 용납지 아니하시는 분이신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것이 가하니이까?
어찌하여 하나님의 선민을
바다의 물고기 같이 하여 초망에 걸려들게 하시고
곤충같이 떠돌게 하심이 가하니이까?
하바국 선지자는 너무 답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하고
파수꾼이 망보는 성루에 올라가 철야기도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2:2절 이하에서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게 하라」
사람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으려면 얼마나 크고 분명하게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 [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바벨론의 교만과 강포를 다 알지마는
또한 저들은 자신들의 죄로 망하지마는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니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크고 분명하게 나무에 새겨서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되지만 그 가운데 그래도
[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 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우리가 아무리 혼탁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하더라도
너는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 - 어떤 믿음입니까?
어떤 환난 중에서라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하심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
그 믿음을 가진 자는 때가 되면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된 때에 그의 역사를 분명히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인내로서 하나님의 정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2600여년 전 하바국 선지자의 질문
「왜 선하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하는 일마다 꼬이고 시련만 계속 당하고
적당하게 사는 자들은 저렇게 저렇게 큰소리 치며 잘살고 있습니까?
왜 나만 고통당해야 합니까?」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응답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슴은 불변의 진리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약속을 붙들고 성전에 엎드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갈대아 사람들의 침범 소문을 듣고 놀랐지마는
이 보다 더 하바국 선지자에게 놀라운 소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2절에
2절「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주께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
주께 대한 소문은 바로 하나님의 부흥의 소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악인들은 정녕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막강한 자들도 초개같이 불 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바국 선지자는
여호와가 불공평하신 하나님이신 줄 알았는데
공의로우신 하나님인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바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흥을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부흥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이 떠오릅니다.
3-15절 까지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출애굽 할 때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이 떠 오른 것입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이 데만에서 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이시냐? 하면 데만에서 나오신, 바란 산에서 나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데만과 바란 산은 시내산 가까운 지역들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상기시키는 지명들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영국의 <로이드 존스>의 부흥이란 책 가운데서 말하듯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 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심을 말합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마음이 뜨거워지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믿기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오심이 4절에
[그 광명이 햇빛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
즉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다 볼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행하실 때는 7절에서 나타나듯이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하는 말은
이스라엘 첫번째 사사 웃니엘에 의해서 8년을 섬기던
메소포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물리친 전쟁을 말하고 있고
미디암 땅의 휘장이 든들린다는 것은
기드온의 300용사가 미디안 135,000명을 물리친 전쟁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것은 바로 열국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오시는 것은
13절에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내사
원수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
바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오늘도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회복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이 득세하고 부조리가 난무할지라도
그리고 세상사 나의 뜻대로 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이 뜨거워져 하나님의 부흥의 소식이 들리워지기 바랍니다.
어느 때이고
하나님의 부흥의 때가 나탄 시기는 암흑과 좌절과 절망의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때에라도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소서~!」라고
부르짖는 자에게 부흥의 역사는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선지자 하바국의 기도이지만 또한 찬송이기도 합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이러한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흥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구원의 찬송이 있습니다.
17절 [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할렐루야~!
어떻게 16절에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상황 가운데서
이런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까? 이게 가능한 말입니까?
이것이 바로 부흥의 역사의 징조요 확신인 것입니다.
사실 지금 내 마음 깊숙한데서 울려 나오는 찬송
찬송가를 펴지 않아도 눈감고도 부를 수 있는 찬송은
사실은 내가 고난 중에서 불렀던 찬송인 것입니다.
고난 중에 구원의 주로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하는 신앙
진정한 신앙인 것입니다.
아무리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상황이 눈 앞에 전개된다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또한 그 구원의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뻗쳐지기 때문에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찬송을 부르는 자입니다.

유대인의 제2경전인 탈무드에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존경받는 랍비 중 한 사람인 아카바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시간을 알리는 수탉,
먼 길을 위한 나귀와 토라를 가지고 갔습니다.
여행 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 잠을 청하니 모두가 거절했다. 언제나 감사만 하는 아키바는
[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주실 것이야 ] 라며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어귀 노상에서 잠을 잤습니다.
길에서 노숙하려니 잠이 오질 않아서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켰으나 바람이 불에 꺼졌버렸습니다. 아키바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거야"하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잠을 청했더니
여우의 울음소리에 나귀가 놀라서 멀리 도망갔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불평했을 텐테
[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것야 ] 하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나귀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 멀리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토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키바는 "더 유익하게 해 주실거야"라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날이 밝았고 마을에 들어가 보니
전날 밤 도적 떼가 그 마을을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험 속에서 감사하는 아키바를 지키주셨던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열매보다 소보다 더 귀중한 생명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우리에게 하바국 선지자의 찬송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전천후 감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 열매 감람나무-소출
밭에 식물, 우리에-양 외양간에-소 가 없을지라도 ]
찬송하고 감사하는 신앙 - 전천후 감사 신앙에는
우리가 잃은 것보다 더 귀중한 것을 하나님은 안겨다 주실 것입니다.

화란의 코리텐붐 여사의 <피난처>란 작은 책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치 독일의 수용소라는 곳은 음식도 나쁘고, 잠자리도 나쁘고,
그야말로 고생이 많은데 특히 어려운 점은 감방에 벼룩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벼룩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베시는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환한 얼굴로 자꾸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언니는 이게 이해가 안가서 어떻게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동생이 말하기를 [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 감방의 사람들이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 성경공부 합시다. 해서 다들 모여 앉아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이 감시하려면 안하는 척 숨겼다가
또 독일군이 물러가면 공부하고는 했는데
당최 감시가 너무 심해서 성경공부를 하기가 어려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감시자가 오지를 않아요.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감시자가 가까이 왔다가 그냥 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말이
[ 어휴, 이 감방에 가까이 가기도 싫어,
벼룩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만 왔다 가면 하루 종일 가렵다 말이야 ] 하더랍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성경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벼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봤습니까?

벼룩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땅의 더 높은 곳에 다니게 할 줄 믿습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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