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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말 할 수 없는 은혜로 감사 (고후 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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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옛날엔 추수감사절이 되면 추수한 가을 곡식들을 모두 하나님 앞에 놓고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주일 아침이 되면 성도들이 쌀가마에 농사지은 것들을 제 들고 교회를 오지요. 교회학교 어린이들도 무우나 배추 한 포기씩 들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바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그러기에 추수감사의 의미도 옛날과는 다른 것입니다. 과거에는 일년 농사를 도우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했는데 이제는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을 보면 A.D44-46년 사이 팔레스타인 전역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기근이 심해 굶어 죽게 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호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마게도니아 지역 교회를 다니면서 모금을 하게 되는데 저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많은 모금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바울은 이일에 감사하면서, 뒤이어 고린도 교회도 이에 참여해 주기를 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50주년 희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금년 추수감사절 헌금은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드렸으면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바울이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제일 위험에 빠지는 일중에 하나는 헌금을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어쩔 수 없어서 체면 때문에 또는 내가집사니까, 그냥 넘어가기가 뭣하니까? 하고 드리는 헌금입니다. 이런 헌금은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는 쓰잘데없는 헌금입니다. 조금 죄송한 표현입니다마는 쓰레기 같은 헌금입니다. 드렸는데 아무의미가 없어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도 별로 의미가 없는 헌금인 것입니다.

이런식의 헌금은 절대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죽은 헌금입니다. 살아있는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혼이 담겨있고 여러분의 정성과 생명이 담겨 있고 그리고 그 헌금으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역사를 만드는 헌금이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도 헌금을 미리 준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다가 우리가 가면 그런 헌금을 드리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두 번째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것은 심은 대로 사라져 버립니다. 많이 심으나 적게 심으나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으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는 생명이 있을 때 살아 있을 때만의 원리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많고 적음이란 물질의 양이 아닙니다. 가난한자의 10원이 부자의 만원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정성 주님을 사랑하는 정성이 들어 있을 때 말입니다. 헌금이라고 다 헌금입니까? 하나님이 열 납 하지 않는 헌금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바쳐도 헌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하나님이 열납 하는 헌금이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헌금을 하면서 괴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색함으로 억지로 하는 사람에게는 헌금을 하면서 괴롭습니다. 이런 사람은 괴로운 일이 많으나 하게 되지요.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헌금의시간이 행복한 것입니다. 엊그제 어느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갔어요. 목사님 하나님께 선교헌금을 얼마를 정하고 기도하는 중인데 먼저 조금 준비했어요.

내가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너 선교헌금 해라 한 적도 없고 그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헌금을 정하고 미리 준비 했다가 내가 가니 헌금을 주는 거예요 그 얼굴을 내가 보았어요. 그냥 돈이 아까워서 얼굴을 찡그리고 분하고 억을 해서 괴로워하는 그런 얼굴이 아닙니다. 얼마나 밝고 행복하고 얼굴에서 광채가 나요. 이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아무나 광채가 나나요. 하나님과 대면한 자만이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광채가 납니다.

은혜 받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오늘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 부흥회참석해서 은혜 받았습니다. 간증을 듣고 은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엇인가요? 설교가 재미있었다는 것인가? 설교가 멋지었다는 것인가?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는 것인가? 실천과 삶의 변화가 없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말씀은 재미있게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또한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을 은혜 받게 하기 위해 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말씀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남편은 졸기만 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항상 하던 대로 남편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말씀에 은혜도 못 받아요?" 그러자 남편이 "여보! 은혜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 당신처럼 되는 것이 은혜 받은 거야!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은혜는 안 받아!"하더랍니다. 당신의 얼굴은 은혜 받은 얼굴입니까? 얼굴을 펴세요. 그런데 그게 펴지냐 말입니다. 펴졌다가 금방 다시 우그러지지요.

은혜는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니 얼굴이 저절로 펴지지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은혜요 감사입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사방에 은혜가 깔려 있습니다. 보는 것이 다 은혜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백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입니다.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한 것은 다윗이 남들보다 더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에겐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가 우리와 다르다면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주님의 은혜라 깨달으니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내 잔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 감사절에 내 잔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깨달으니 자원해서드리고 감사해서 드리고 기뻐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니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죽음자의 시신이 있는 무덤에 가서 무엇을 얻을까 하고 절하기도 합니다마는 죽은 자는 우리를 도울 수 가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 계실뿐 아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주시되 풍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심고 싶어도 씨가 없으면 심을 수가 없습니다. 밥이 있다고 행복한 것입니까? 밥 속에 들은 사랑의 씨를 먹어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밥 속에 미움이 들어 있고 저주가 들어 있으면 위장병에 걸립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기가 쉬운데 보이지 않는 것 중에 더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이 소중한 것들의 씨앗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씨앗이 내 심령에서 자라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 축복을 받아야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 심겨져서 배배틀리다가 축 늘어진 인생으로 살지 말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강변에 뿌리를 내리고 가뭄이 오는 해에도 걱정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길입니다. 그 길은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사는 길입니다. 12절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끝으로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감사함으로 봉사하고 감사함으로 구제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일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단 한 가지 감사도 없을 수 있습니다. 아니 감사보다 원망이 더 많을 수 도 있습니다. 일년을 지나면서 감사의 사람으로 풍성 해질 수도 있고 원망의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초기 감사절을 시작한 유래를 보면 조건을 보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핍박을 받은 청교도들이 고향을 버리고 생면부지의 땅 아메리카를 찾아옵니다. 예수 잘 믿으려다가 고향에서 쫓겨 왔습니다. 배타고 오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도착하여 인디언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느라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얻은 수확이란 것이 보잘 것이 없습니다. 이런 열악한 조건은 그들을 감사하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의 조건을 찾았습니다. 자유의 땅에 와서 예수를 마음대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심한 풍랑 가운데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인디언에게 씨앗을 얻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수확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수확한 열매를 가지고 감사 드렸습니다.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 복을 세어보는 것은 항상 어렵습니다. 찬송가에는 “주신 복을 세어 보아라.”고 합니다. 복을 셀 수 있고, 감사를 셀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주의 은혜가 있다면 감사하며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을 축복합니다. (김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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