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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마 26: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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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신의 생애에 두 번 제자들을 자신이 준비하신 식탁에 초대하셨습니다. 한번은 오늘 말씀이고, 또 한번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 해변에서 조반식탁을 마련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활 후에 조반식사 초대 때는 떡과 생선을 숯불 위에 구워 놓으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며 아침 식사를 직접 하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고, 조반 먹은 후 베드로를 중심으로 반문형식의 설교를 하셨는데 그때는 제자들의 사명감을 위한 영성 훈련이었다고 우리가 평가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성찬의 목적을 예수님 자신이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주님의 성찬의 목적을 확실하게 정의하셨습니다. 성찬의 의미는 “죄 사함”이 됩니다. 우리 기독교 진리의 인간 정의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의 노력은 “선(善)의 추구”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미 죄인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향하기 위한 진리로의 방향제시라고 우리가 평가를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름대로의 법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모든 법문화의 기초가 있습니다. “상벌”문화로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벌을 주고, 선을 행한 자는 이에 해당하는 상을 준다는 문화입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성경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를 지은 인간이 벌을 받아서 에덴을 쫓겨났고 그 회복을 위한 구원의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 구성에 원인이 되고 있는 “피”를 속죄의 조건으로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죄 사함의 길을 인간은 가게 되는데,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속죄 축복을 인간들이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는 십자가의 피가 죄 사함의 이유가 되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이 성찬의 의미로 사해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렇다면 기독교 진리는 확실해졌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공로 없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를 죽이고 내가 살아난 자리에 사는 것입니다. 아울러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바로 기독교 진리의 진정한 참여자는 용서의 능력이 소유된 자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기도문의 중심 부분은 의무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말의 해석은 “우리에게 죄 지은 자에 대한 용서 없이 하나님의 죄 사함 은총을 기대하지 말라!”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심각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는 누구나 공동체 속에 일원으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정에서 출발해서 수많은 사회생활과 우리처럼 이렇게 교회 공동체, 혹은 국가 공동체 하나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떻게 이러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인간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용서의 진리 실천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용서하는 진리가 없다면 이 세상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악순환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며 너희도 이렇게 용서하라고 하는 진리가 인류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가 무엇인가? 아픔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그러니까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제자가 있다면 십자가를 지는 제자인데, 십자가는 곧 자기 아픔을 말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을 두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이것을 하나는 “because”라고 하고, 하나는 “in spite of”라는 말을 합니다. 먼저 “because” 즉, “왜냐하면” “때문에” 우리는 사랑합니다. 예쁘다든지 능력이 있다든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무슨 조건 하나가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사랑에 우리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in spite of”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까지 갈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것이 사랑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신을 죽이고 있는 사람을 향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쓰러지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에 도달하는 표현입니다.

저는 이민자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내가 바라본 미국의 부흥사와 목회자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는 부흥사 한 사람과 목회자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부흥사는 여러분도 잘 기억하시는 “빌리 그래함” 목사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보다 더 훌륭하고 열매가 많은 부흥사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목회자는 달라스 침례교회의 “크리스 웰” 목사입니다. 어떻게 그가 미국 침례 교단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훌륭하고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었는가 제가 좀 살펴봤습니다. 현재 그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43년간 목회를 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에 43층의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그를 기념하자.” 그럴 만큼 존경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개신교 가운데 침례 교단이 가장 교인 숫자가 많고 큽니다. 그런데 전체 침례 교인들은 그를 ‘침례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존경을 받습니다. 어떻게 목회를 했는가? 그의 목회 철학의 특징은 하나입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 하나로 43년의 목회를 한 교회에서 했습니다. “우리는 용서 하나로 우리의 삶을 시작하자.” 자신이 실천하고 자신이 용서하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젊은 목회자 시절에 잊지 못할 일화가 있습니다. 외국 목회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 한국 목회자들이 그렇게 취미 활동을 하면 아마 교인들에게 상당히 비판의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외국 목회자들은 종종 합니다. 취미 활동도 보통 우리 한국인 목회자들은 절대로 하지 아니하는 그런 취미 활동을 아무 불편 없이 잘 합니다. 크리스 웰 목사님은 젊은 목회자 시절부터 사냥을 좋아했어요. 대한민국 목사 가운데 사냥을 취미로 하는 목사님은 거의 없잖아요? 사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것도 꼭 토요일 날 간단 말입니다. 한국인 목회자들은 기도하고 성경보고 설교 준비하고 내일의 주일 준비를 위해서 마음 자체를 아주 경건하게 가져야 되는 시간인데, 이 분은 토요일이면 틀림없이 사냥터를 찾아가서 사냥을 하는데 짐승을 수없이 잡으면서 잘 한단 말입니다. 어느 날 토요일도 사냥을 나갔어요. 그래서 신나게 짐승을 잡는데 멀리서 물체 하나가 움직이는데 아, 노루가 한 마리 지나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정 조준을 해서 쐈는데 가서 보니까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현장에서 죽었어요. 그러니 목사 생활은 끝난 거지요. 목사가 어떻게 했기에 토요일 날 사냥을 즐기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아니, 사람과 노루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으니 멀쩡한 사람이 한 명 죽었단 말이에요. 크리스 웰 목사가 아주 젊은 시절입니다. 30대 초반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의 목회는 끝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는 돌아와서 교회에 사실을 보고하고 목회직에 사표를 냈습니다. 사실 교회도 ‘사람 죽이는 목사’라는 별명이 붙은 목사를 존경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때 온 교회가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때에 최고의 좋은 결정을 해야 되는 기회를 만났는데 담임 목사의 실수를 용서하자.” 그래서 크리스 웰 목사에게 계속 목회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여서 43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 교단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그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기독교의 진리는 바로 용서이다. 내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서 용서하는 자가 주님의 제자이다.” 눈물의 설교를 했고 자신이 실천을 함으로 미국에서 제일 큰 교단인 침례 교단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침례교의 아버지’가 되어서 43년을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 사함을 주시는 떡과 잔을 받는데, 주님이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내가 떼는 살과 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다같이 오늘 이렇게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이렇게 함으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영적 판단 때문에 오늘 성찬 예식을 함께 하자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용서받음과 용서함의 마음으로 이 성찬에 참여하시고 영적 축복의 임재가 가슴마다 임재하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내가 흘리는 죄 사함의 피요 언약의 피라고 주님이 성찬의 의미를 정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떡과 잔을 받음으로 이 떡과 잔의 의미가 주는 영적 축복과 은혜를 오늘 참여하는 모든 사람마다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성찬 예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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