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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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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육 간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올해는 세계도처에서 전쟁과 테러 사건이 빈발하고 쓰나미와 지진과 같은 재해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하게 지내올 수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매일같이 일용한 양식과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받았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 수 있도록 믿음을 붙들어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일 년 365일 내내 감사하며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감사할 때도 있었지만 감사보다는 불평하며 지낸 날도 적지 않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과 같이 감사를 위한 특별한 날을 정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감사생활을 점검해 보고 한 해 동안 받은바 은혜를 회상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 저는 “감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라는 주제로 설교함으로 성도님들과 더불어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많은 제물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소나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의 종류는 번제 말고도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의 유대교는 제사가 신앙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민은 매일 드리는 제사 외에도, 특별히 안식일마다 제사를 드렸고, 달의 첫날에도 드렸으며, 각종 절기 때에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나서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가 일천번제를 드린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많은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믿음과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일천번제가 솔로몬이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행한 종교행사에 불과했다면 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시편 50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치는 제물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7)내 백성아 들을찌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짐승의 고기나 피가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물 그 자체를 기뻐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예배에도 적용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리 만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얼마나 많은 제물을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로 드린 제사라면 비록 산비둘기 새끼로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만 예배가 아니고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사업장에서나, 그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중요한 이유는, 감사가 없는 삶은 참 예배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50편에 보니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감사로 예배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냐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는 예배냐, 그 기준은 감사로 드린 것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역시 우리의 삶속에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한 촌에 들어가셨다가 문둥병자 열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호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희가 가다가 온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때 그 중 한 사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눅 17:).

열 명의 문둥병자가 똑같이 나음을 입었는데 주님을 찾아와 사례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도 병이 나은 것을 보고는 뛸 듯이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감사할 일인데도 감사하지 않는 것은 타락한 사람의 특성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다툼과 원망, 불평이 하늘을 사무치고 있습니다. 분명히 과거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 대신 탐욕과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우월감과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합니다. 그 결과, 남보다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문둥병을 고침 받고서 주님을 찾아 감사하지 않고 각기 제 갈 길로 가버린 아홉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되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에게 병 고침보다 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육신의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러 온 사람을 보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칙을 대하는데 그것은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받은 은혜를 하나씩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사마리아인처럼 “하나님,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나 많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아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두 번째로, 감사할 때 우리 심신이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사실이 그러한지 아닌지는 성도님들께서 시도해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어둡고 우울할 때 짜증내고 불평하는 대신, 입을 열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보십시오. 신기하게도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고 우울하던 마음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의도적으로라도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그리할 때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때 낙심이 사라지고 소망이 깃듭니다. 감사할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샘솟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사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고 다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불평과 원망은 우리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 이유는,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령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느라 물질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고 했습니다.

또 몸이 건강해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질적인 질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했을까요? 그는 그 병이 자기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는 귀한 진리를 깨닫고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고 말했습니다. 결국, 감사는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생각을 하면 불리한 여건도 감사의 조건이 되고, 믿음이 없으면 행복한 여건도 원망, 불평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에서도 감사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식구들이 감사를 표현하는 가정과 감사할 줄 모르는 가정은 그 분위기가 천양지차가 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감사함으로 먹는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반면에 매끼 진수성찬을 차려놓고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곳은 지옥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잠 17:1).

부부 간에도 서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이 가족을 위해서 수고해서 온 가족이 평안히 살게 되어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넉넉지 않은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느라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고마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하고, 부모는 자녀들이 잘 자라주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족이 서로 감사할 때 그 가정은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감사는 교회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구인들을 보면 참 좋은 생활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에도 감사를 잊지 않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친절에도 그들은 “땡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사하는데 서툽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감사할 때 침묵하는 것은 다만 자신의 무례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특히, 우리는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님들을 대할 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역 식구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구장님들에게 감사하고,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맡아서 신앙교육을 시키느라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교회 차량을 운행하시는 분들과 만나실에서 헌신하시는 성도님들께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고를 알아주고 감사할 때 힘이 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때 뇌에서 몸에 유익한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잠을 잘 자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는 잠자는 동안 앤돌핀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 역시 사랑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앤돌핀이 많이 나오므로 예뻐지는 것입니다. 엔돌핀은 그 효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암도 치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를 생활화할 때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지속적으로 앤돌핀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항상 원망, 불평만 하는 사람은 몸에 해로운 호르몬이 생성되어 쉬 피로하게 만들고 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려서 질병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원망, 불평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또한 남을 불신하고 적으로 간주하게 되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해 나갈 수 없게 합니다.

이해인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은” 이라는 시에서,

〈감사하는 마음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예민하게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평화로운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감사를 생활화함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게 가꾸어 나갈 뿐 아니라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환난 날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고 다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만족하며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 1:15)고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응답을 주시되 아울러 징계를 내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백성이 매일같이 만나만 먹다보니까 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모세를 찾아가서 “우리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광야에 살면서 매일 같이 만나를 먹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래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해서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해서 고기를 먹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스라엘 자손은 함께 나온 이방인들의 충동에 넘어가서 저마다 장막 문에 서서 울며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불어 바다에서 메추라기 떼를 진 가운데로 몰아넣으셨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나가서 메추라기를 잡아서 저장해 두니 무려 한 달 동안이나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셔서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원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감사함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동맹을 맺고 쳐들어왔는데 막아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조직해서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적들이 서로 싸워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유다 백성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았고 화살 한 대 쏘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한 것밖에 없었지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가다가 바다 한 복판에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선장이 선객을 갑판에 모으고 제비를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그 때 요나는 이 풍랑이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면 잠잠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점점 더 거세지자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대기시켜 놓으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캄캄하고 악취가 진동하고 숨이 막히는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2)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6)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의 기도는 회개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맺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니 요나를 육지에 토하였고, 그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고, 골로새서 4장 2절에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구절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편 50편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 하루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강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그 날까지 감사생활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심신의 건강을 누리며, 풍성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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