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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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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창세기 20장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냥 읽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생명의 메시지를 발견해 내겠다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집중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들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가운데서도 4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대단히 심오한 진리들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밭에 감추어진 보화'는 수동태로 되어 있어요. 다시 말씀드려서... 누군가가 그 밭에 보화를 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금은보화를 누가 숨겨두었을까요?... 누가 보화를 숨겨두었을까?...
바로, 밭의 주인이 자기 밭에 보화를 숨겨두었어요.
그리고는 놀랍게도 보화가 숨겨져 있는 그 밭을 다른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빌려준 겁니다. 그래서 소작농은 그 밭을 빌려 가지고 농사를 했습니다.

먼저 A라는 사람이 그 밭을 빌려서 농사를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B라는 사람이 농사를 했는데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밭을 C라는 사람이 경작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이 농부는 쟁기를 가지고 밭에 나갔습니다. 그러고서는 자기가 빌린 그 밭을 갈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사람은 남의 밭을 경작하지만 자기가 주인인양 주인 의식을 가지고 밭을 사랑합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은 남의 밭이라서 대강 대강 밭을 갈아먹고 살았는데.... 이 사람은 밭고랑을 파는데도 대충하는 일이 없습니다.
깊이 파서 돌들을 골라 내 버리고.. 또 단단한 흙을 부수면서... 아주 못쓰는 산기슭에 있는 박토를 아주 옥토로 만들어 가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어느 날, 깊게 밭을 갈아 가는 가운데... 쟁기 끝에 무엇이 "달그락..." 하고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파보니까, 놀랍게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보화가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소작농은 너무너무 기뻐서... 자기 재산을 전부다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밭을 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주인은 그 밭을 그 사람에게 파는 거에요.
주인은 그 밭에 보화를 숨겨놓고.... 자기 보화를 숨겨 논 그 밭을... 찾는 자에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사고자 하는 자에게 파는 겁니다.
여기에 이 비유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보화를 숨겨 놓으시고 "이걸 찾아서 네가 갖아라!" 그러십니다.
옛날 가요 중에 그런 가사가 있죠... "빙글빙글 도는 회전 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임자지..." 그런 노래와 같이... 여기서 보화.. 천국의 모든 보화는 차지하는 자가 임자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보화를 찾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일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 때 보물찾기를 했어요...
전도사님들이 여기 저기 보물을 숨겨놓고 찾아보라고 하는데, 애들이 처음에는 전도사님한테 와서 어디에 숨겼냐고 가르쳐 달라고 떼를 씁니다.
가르쳐 주지 못하죠.... "저 쪽에 있어... 얼른 가서 찾아봐" 그럽니다.
애들이 마구 뛰어가서 찾는데 숨겨놓은 곳은 지나쳐 가고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맵니다. 숨겨놓은 사람은 얼마나 보기에 안타깝겠습니까?... 저기 돌을 들춰내면 보물이 있는데.... 저기 나뭇가지 그 뒤를 보면 있는데... 그걸 못 찾고 대강 대강 보면서 지나칩니다.
조금만 더 파헤치고 조금만 더 살펴보면 있는데 말입니다.
말씀의 밭을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여서 파들어 가고... 보화를 찾아내고... 그것을 소유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밭에 보화를 숨겨놓고 계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보화를 예비해두시는 분... 그걸 찾아서 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보화가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얕게 쟁기질을 하면은 발견할 수 없고, 깊게...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여서 깊게 쟁기질을 하면은 덜커덩하고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다가 보화를 딱 숨겨둔 거예요.

앞서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은 그냥 "이게 뭐 내 밭인가? 내가 깊게 파고 거름을 주고 그렇게 땀을 흘릴 필요가 뭐가 있어?" 그러면서 적당하게 대강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화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C라는 사람은 마치 내 밭인 것처럼, 마치 주인이 보는 것처럼 그 밭을 정성스럽게 갈되 깊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깊게 팠는데, 바로 그 위치에 무엇이 있었느냐?.... 보화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온통... 이런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화를 숨겨놓고 그것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냥 읽을 것이 아니라...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깊이 생각하며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어떤 내용입니까?...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보화를 발견하셨습니까?...
먼저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랄'이란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그랄이라는 지방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 지역에는 팔레스타인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서 살고있는 땅이었습니다.
그 지방으로 아브라함이 내려갔어요. 내려가면서 한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너무 예뻐서 걱정입니다. 나이가 90이 된 할머니가 너무 예뻐서 걱정할 정도니... 천국에 가시면 사라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걱정을 하는 중에 꾀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서는 두 사람 사이에 의견 절충이 끝났습니다.
그러고서는 그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아비멜렉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왕이 사라를 취하여 후궁을 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왕에게 "네가 사라를 건드리면 반드시 죽으리라!" 호통을 치시고는 사라를 빼내어 다시 아브라함에게 줍니다.

아비멜렉 왕이 화가 났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화를 냅니다.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왜 그랬느냐?..." 노를 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들은지라 겁도 나고 해서... 아브라함에게 은 천 개를 주고는 사건을 무마했습니다.
예수님은 은 30에 팔렸는데... 은 천 개면 엄청난 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창세기 12장에 보면 똑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10절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란 사람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아직 안 바뀌었을 때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걱정스런 일은... 사라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에게 빼앗길까봐 두 사람이 상의하기를 누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사라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합니다. 너무 예쁘니까 왕에게 그 말을 전했습니다.
결국은 애굽 왕 바로에게 누이라고 말하므로... 결국은 바로 왕이 많은 돈을 아브람에게 주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내를 돈주고 팔아 넘긴 겁니다.
16절에 보면은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그랬습니다.
많은 재산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돈주고 팔아먹은 거지 뭡니까?...

그래서 바로 왕이 사라와 함께 잠을 자려고 하는데 누가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므로... 바로 왕이 기겁을 하고 아브람을 불러 호통을 칩니다.
"이 나쁜 놈아... 어찌하여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팔아먹느냐? 에이 나쁜 놈!"
그러면서 크게 화가 나서 호통을 치고 돌려보냈습니다.
창세기 12장과 20장이 지금 똑같은 내용입니다. 성경은 불과 몇 장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습니다.
12장과 20장, 똑같은 복사판이에요.
다만 대상이 바뀌었죠... 처음에는 바로 왕이었고, 나중에는 아비멜렉 왕이었습니다.
같아도 이렇게 같을 수가 있습니까?...
완전히 내용이 같습니다. 똑같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12장의 사건과 20장의 사건이 똑같은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첫째로, 12장은 이 아브라함이 흉년을 만나서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20장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지방으로 내려갈 때에 흉년이 들어서 내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로, 12장의 사건은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즉 초신자였을 때 저지른 잘못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제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던 단계입니다.
초신자 때는 실수도 하고... 잘 모르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처음이니까... 모르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20장의 사건은 초신자 때 저지른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한지 20년이 넘어서 25년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니까 처음에는 집사요 권사요 그러다가 장로가 되었습니다.
교회서 인정도 받아 가지고 회장도 하고... 아주 인정받고 있을 바로 그 때에 저지른 일입니다.

셋째로, 12장의 사건은 아브람 때에 저지른 사건입니다. 옛사람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20장의 사건은 아브라함 때 지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주시고 새롭게 살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때에 이런 일을 저질렀어요.

네 번째는, 12장의 사건은 죄라고 하는 것을 처음 지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20장의 사건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재범입니다.
재범이라는 말은 아주 죄질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보통 형사법에도 보면,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이라는 것이 있어서... 같은 죄를 10년 언도를 받는다면 재범을 하는 사람은 가중처벌을 받아서... 배로... 20년을 언도 받는 아주 중죄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생각해 볼 때에... 신앙생활을 한지 25년이 지난 지금 같은 죄를 저지를 아브라함의 모습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사건입니다.
똑같은 경우, 똑같은 상황, 똑같은 거짓말... 똑같은 사기 수법으로 죄를 저지릅니다.
그것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거금을 받아 챙기는... 아주 죄질이 나쁜 죄입니다.

아브라함을.. 아주 나쁘게 표현하면...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여자를 팔아먹는 매춘의 포주 1호입니다.
그것도 남의 여자 데려와서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팔아먹는 사람... 그러니 얼마나 죄질이 나쁘고 악덕 포주인지 모릅니다.
재주도 좋아요... 지금 사라의 나이가 몇 살입니까?
세상에.... 90살이 된 할머니를 데리고 와 가지고 팔아먹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성경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공의란 말은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로 와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부르짖고 그러지만 적어도 구약시대는 공의의 하나님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장의 사건은... 신앙생활을 25년이나 하였으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고 나쁜 일만 골라가며 하는 이 나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그냥 두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면 이 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을 야단치시고 호통을 치시고 벌을 내리셔야만 합니다.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앉은뱅이가 되게 하시고... 갑자기 병원에 가서 진단을 했더니 "당신은 말기암 환자입니다.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으니 드시고 싶은 것을 마음껏 드시다가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뭐... 그런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그냥 사업이 쫄딱 망해버리고... 곱게 키웠던 자식이 어느 날 죽어 버리고... 집안이 풍지박살이 나야 마땅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공의대로만 우리를 처치하셨다면... 여기 이 자리에 남아 있는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편 103편 10절 이하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할렐루야!

오늘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창세기 20장에서 한번도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화난 얼굴 한번 보이지 아니하시고... 또,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누구에게 나타나셨느냐 하면...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오히려 잘못이 없는 아비멜렉 왕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비멜렉에게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호통을 치십니다.
7절에 보면은 "네가 정령 죽으리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건드리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이 사라를 빼내서 아브라함에게 안겨 주십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이 있은 후에... 21장에 보면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주시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바로 아내 사라를 두 번 팔아먹은 이 사건 뒤에 주시는 거예요.
이런 하나님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행하실 수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도대체 하나님이 이렇게 전혀... 상상 이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무슨 교훈을 말씀하시려고 하시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창세기 20장을 좀더 자세히 보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고, 한 사람은 아비멜렉 왕입니다.
이 두 사람이 분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여러분이 보시기에 누가 더 도덕적으로 의로운 사람입니까?
아비멜렉이 더 도덕적이고 아주 고상한 사람입니다. 아주 품위가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너무 너무 예뻐서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한 그런 여자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밤에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인격자입니까?....
뿐만 아니라 4절을 보세요. 4절을 보면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랬습니다.
자기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겁니다.
5절을 보면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그럽니다.

그는 정말 손이 깨끗한 사람이요, 마음이 온전한 사람이었어요.
그 속을 우리는 모르지만 성경이 그렇게 증거합니다.
6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그랬습니다.
하나님 조차도 아비멜렉이 온전한 마음의 소유자...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해 주시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아브라함은 너무너무 추악하고 비겁하고 죄질이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아비멜렉을 버리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의롭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아비멜렉은 버리시고... 더럽고 추악하기 그지없고 25년 동안이나 신앙생활 하면서도 전혀 변화가 없는 그런 악독한 사람... 자기 이익만 챙기고 아내를 수없이 희생시키고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남의 남자의 품에 가게하고 그리고는 많은 재산을 챙기려고 애쓰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선택하셨다 라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증거하십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말씀을 주시려는게 아니라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웁니다. 믿음, 그러면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 그러면 믿음을 떠올립니다.

버림받고 저주를 받아 마땅한 아브라함을 택하신 오늘의 말씀은... 믿음이 무엇이냐?...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냐?
어떻게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이에요.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있어요. 그는 습관적으로 추악한 죄를 범하고 있어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 그리고 거듭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끝까지 놓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축복의 자리에까지 그를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서 교회에 나왔습니까?.. 여러분이 신앙이 좋아서 10년 20년 신앙생활을 유지하십니까?... 신앙이 좋아서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2: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예요...
세상사람들보다 내가 똑똑하고 내가 더 의롭고 내가 경건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죄악의 자리에서 부르시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뽑아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악들을 그대로 고스란히 안고...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따라 징벌하셨다면 우리는 벌써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형벌로 쓰러지고 말았어야할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부족하지만... 우리의 실 날 같은 믿음을 붙잡아 주시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여기 이 자리까지 인도하시고 저 천성에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들로 다듬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은 멀리 던져버리시며...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질이 아주 나쁜 사람들을... 오히려 뽑아내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인쳐 주시며,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 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저는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사실은 주님이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구구절절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사랑한다고... 은혜에 감사하다고...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할텐데... 성경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장 최대의 크라이막스... 가장 큰 절정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로마서 5:8절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까지 내어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 너무 사랑하십니다.
거듭 반복되는 죄를 짓고, 도저히 소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못된 인간인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놓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며 사랑해 주십니다.
스바냐 3:17절에 보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쩔 줄 몰라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뭐길래 이처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십니까?...
지금... 절망스런 상황에 놓였습니까?...
염려와 걱정스런 문제가 있습니까?...
고통스런 일을 만나고... 남에게 말못할 그런 고민거리가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주님이 여러분을 더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없으면 못산다고 그러는데... 주님은 여러분이 없으면 더 못사세요.... 너무 너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어 던지신 사랑입니다.

그 넓은 주님의 품으로... 그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안기어 누워있는 모습과 같이... 주님의 사랑의 품에 꼬옥 안기세요...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면...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죄악이 있다면 통회하고 자복하며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며, 말씀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살아 갈려고 애를 쓰는... 주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복된 권속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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