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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할 수 없는 이유 (민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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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이런 실험을 해봤다고 합니다. 한 동네를 정해 놓고, 집집마다 매일 현관에 1만원씩 놓아두었습니다. 첫째날 ... 동네 사람들은 너무 이상했지만 조심스럽게 그 돈을 집어넣었습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 ... 며칠이 지나자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정체불명의 그 사람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2주쯤 지나자 ...  돈이 언제 오나 나와서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3주쯤 지나자 ... 전혀 감사한 마음이 없이 당연히 받기 시작합니다. 4주째는 아주 자연스런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의식도 없이 돈을 챙깁니다. 그런데 실험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평소와 달리 돈은 나눠주지 않고 그냥 동네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동네 사람들이 불평하며 화를 냅니다. 심한 경우 어떤 집 주인은 아예 문을 열고 나와서 항의합니다. “왜 오늘은 돈을 주지 않는 겁니까? 어서 내 돈 만원을 달란 말이요!”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동네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그동안 준 것도 감사하지. 그리고 안 주면 그러려니 해야지, 언제 자기 돈 맡겼나?”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동네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감사해야 될 경우에 감사치 못하고 오히려 불만 불평 원망을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인간에게 내재된 죄성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되는데,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이런 사실을 지적합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 심한 경우 짐승만도 못하다고 성경은 공박합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오늘 본문 성경에도 인간의 그런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혹시라도 우리 마음속에 감사치 못하는 완악함이 있다면 돌이켜 감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1] 감사 대신 불평한 이스라엘 : 배은망덕의 죄악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출애굽 구원의 역사를 이뤄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오매불망 소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에 대해 불평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4절. “ ...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 ” 5절.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 ”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생각하면 매일 매일 감사해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된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광야 40년 내내 이런 식이었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금세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건 인간의 도리도 아니고, 신앙인의 도리도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들은 더욱 큰 고통의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허겁지겁 울면서 회개하고 난리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진노를 푸시고 용서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잘 해야 될 텐데, 조금만 어려워지면 또 다시 원망과 불평의 못된 습관이 나옵니다. 한 마디로 악순환이었습니다. 
  우리도 혹시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 한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미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 상태를 갖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든 이런 구습, 악습에서 벗어나 항상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요, 축복의 지름길인 줄로 믿습니다. 

[2] 이스라엘이 감사할 수 없었던 이유 : 탐욕, 망각, 불신 - 이유도 아닌 이유들 
  우리는 원망과 불평의 악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됐나 그 이유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감사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이스라엘이 감사치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살펴보기로 합니다. 

  ① 탐욕 :
  4절.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 ” 이게 원망과 불평의 원인입니다. 탐욕이 무엇입니까? ‘과도한 욕심’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마치 블랙홀(Black Hole)과 같습니다. 계속 더, 더, 더 원합니다. 이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됩니다. 그리고 탐욕이 있는 한 인간은 만족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었지만 전혀 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 만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만나는 정말 좋은 음식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제조해서 아침마다 이슬과 같이 내려주신 ‘천국제 웰빙 푸드’입니다. 사실 이것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필수영양소를 다 넣어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광야에서 농사도 못 짓고, 목축도 못 하는데 ... 여건도 안 되고, 계속 이동해야 되니까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매일 만나를 내려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맨 처음에는 그들도 좋아했습니다. ‘만나’라는 명칭을 누가 지었습니까? 자기들이 ... “이것이 무엇이냐?” 그러다가 만나가 된 겁니다.(출16:15 참조. 히브리어 ‘만후’)

  7절~9절 보면, 하나님이 매일 만나를 공급해 주셨고,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영양 부족이 생긴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울며 애통해 할 정도로 말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됐나요?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 탐욕이 생긴 겁니다. 인간이 ‘가진 것’보다 욕심이 더 많으면 불행해집니다. 반대로 ‘가진 것’보다 욕심이 적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많은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걸 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소유를 얻어도 계속 불행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 속의 욕심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자기 힘으로 안 됩니다. 신앙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갈5:22~23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오죠. 우리가 예수 믿으면 성령님이 마음 속에 오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모습을 형성해 주십니다. 그것이 곧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 중에 맨 마지막 것이 무엇입니까? ‘절제’(self-control)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통제(control)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의 전차에 브레이크 장치를 달아야 합니다. 만일 이게 없으면 사고 칩니다. 망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욕심을 다스림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딤전6:6~8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이렇게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으면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② 망각 :
  앞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애굽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그까짓 음식 몇 가지 때문에 ... 사실 따지고 보면 만나보다 더 좋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5절.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 생각나거늘 ... ” 생선, 부추, 마늘 등 몇 가지 음식 때문에 종살이 하던 애굽을 그리워하다니! 그들은 생각할 것을 생각지 않고,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됩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때의 그 비참함을 기억해야 되는데 한심합니다. 강제 부역을 하고, 채찍에 맞으며 고생하고, 압제받으며 설움 당하던 것을 기억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광야 생활이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살이에서 구원받은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사실 현재의 형편도 감지덕지인데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인생이었습니다. 지옥 갈 인생이었습니다. 과거에 잘 먹고 잘 살았다 해도 그런 것은 별 게 아닙니다. 과거에 죄 가운데 살면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방황과 허무,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이런 겁니다. 지옥행 열차를 타고 갈 때 1등칸을 타고 푹신한 좌석을 즐기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그게 무슨 대수냐 이겁니다. 지옥행 열차에서 내려 천국행 열차를 탔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이겁니다. 물론 천국행 1등칸을 타면 좋겠죠. 그러나 3등칸이라도, 입석이라도 좋은 겁니다. 아니, 그냥 매달려서 가도 좋은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아제는 영생을 얻었고, 천국의 소망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 가기 전이 세상에서 이미 영혼 가운데 영생의 기쁨, 하늘의 신령한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 외에도 육신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푸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있네 없네 해도 옛날에 비해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옛날 임금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타고 다니는구나! 오죽하면 옛날에는(그래봤자 30여년 전만 해도) 뚱뚱하면 풍채 좋다고 했잖아요. 배가 나오면 부러워하면서 배 사장님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비만이라고, 똥배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래서 ‘살빼기 전쟁’을 합니다. 좋은 것만 골라 먹고 골라 먹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있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부요해진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올챙이 적 생각하면 감사 감사할 것밖에 없건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잊지 맙시다. 시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여러분! 예수님 만나지 못했을 때 비참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에 늘 감사 감격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불신앙 :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신뢰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삶을 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지고 볶고 난리입니다. 자기들이 판단합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신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잖아요. 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웁니까? 원망하며 하나님 속을 긁어놓습니까? 한편 생각해 보면 종살이는 고단했어도, 사람이니까 그때 먹던 음식이 생각날 수도 있겠죠. 그러면 하나님께 신사적으로 기도하면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전능자이신데 불쌍히 여기면서 주셨을지 어떻게 압니까?

  불평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잔뜩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불신앙으로 울고불고 하니까 그게 복이 되질 못합니다. 민11:36 보면, 메추라기가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쌓인 두께가 2 규빗(1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길이로 45cm 정도니까 2규빗은 90cm)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한 까닭에 주동한 사람들 다수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됩니다. 민11:33절~34절 보면 그들이 고기를 씹기도 전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신앙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복을 내리십니다. 그게 신앙의 사람이 가질 태도입니다. 시50:14~15 말씀을 보십시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부디 이 말씀대로 환란 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 옛날 광야를 통과하던 이스라엘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봅시다. 그들은 감사할 수 없는 이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펴본 대로 그 중 하나도 정당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감사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감사할 이유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고, 지금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 됩니다. 설사 죽음이 닥쳐온다 해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당연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로 당연한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기본이요, 축복의 씨앗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참 인간이요, 참 신앙인이요, 참으로 축복된 인생입니다. 부디 감사하는 신앙으로 복된 인생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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