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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지 말라! (잠 16: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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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학 실험실에서 어떤 연구를 하다가 독성 물질이 알사탕처럼 둥글둥글하게 굳어졌습니다.  그것을 좀더 연구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병에 가득히 담아두고 누가 만지거나 먹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병에 DANGER - 위험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 실험실에 중학생 아들이 놀러갔다가 DANGER이라고 써 있는 알사탕을 먹고 죽을 뻔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중학생 아들에게 과학자인 아버지가 아주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야단을 쳤습니다.  "야, 이놈아.  너는 중학생이 되어서 DANGER라는 영어 단어 하나도 못 읽느냐?"  그랬더니 이 아들이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대꾸를 하더랍니다.  "아니, 아빠.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것에다가 그런 영어를 써 놓으세요.  보세요.  DANGER, '단거' 잖아요?"


독약은 독약이라고 말해야 되고, 죄는 죄라고 말해야 됩니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설프게 알면 코 다칩니다.  나와 우리를 향한,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바로 알아 가십시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 하려는 남다른 소원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우리 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뜨거운 소원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려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마음을 더 강하게 하십시오.  사람을 가까이 하려는 소원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소원을 더 크게 품으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도 못하고 예배를 간절히 사랑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가장 큰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때에라도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신다"  이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경험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내 인생의 목자로 삼은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에게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시금 새 힘을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나와 여러분과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내 인생의 목자로 삼으십시오.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공통점은 그들이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끝까지 성령을 의지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 곳입니다.  살맛이 없던 사람들이 와서 살맛을 얻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생기의 바람을 맞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집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능력을 탐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을 붙잡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제발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하여 일어나 생명을 걸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여호와여,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생명을 걸고 매달렸던 야곱처럼 그렇게 한 번 매달려보십시오.  솔직히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여러분의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한 번이라도 매달려본 적이 있었습니까?  야곱처럼 환도뼈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그렇게 간절히 매달려본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지금이 그때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와 내 가정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 사업과 직장을 축복해 주옵소서."  매달리십시오.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세상을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도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일도 이루어주십니다.  지금까지 알지도 못하고 전혀 알 수도 없는 큰 일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며 주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와 감화를 받으십시오.  사탄 마귀는 사람을 충동질하지만 성령은 언제나 사람을 감화 감동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마귀가 일으키는 충동질에 서두르지 마십시오.  내 성질에 충동질을 일으켜서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모든 행위로부터 자유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내 안에 성령께서 주시는 감화와 감동을 소멸하지도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하찮은 것에 의하여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환경 때문에 넘어져서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어떤 시련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단이 일으키는 충동질에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안식을 위하여 밤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시련의 밤도 주십니다.  그 영혼에 더 아름다운 정화가 필요하면 좀 더 큰 시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국은 밤이 지나가는 것처럼 시련의 날도 지나갑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이 어떠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그 생각이 경건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그 생각이 은혜로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경건한 자의 삶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벤츠와 같은 고급차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60평 고급 아파트에 아주 우아한 살림을 차려놓고 소파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 등에 매달려 사탕을 먹으면서 엄마 등에 온통 사탕칠에 다가 콧물 범벅을 해 놓고도 좋아하는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품에 있는 한 환경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품에 있는 한 두려움도 염려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진대 우리가 주님 안에만 거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역경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때까지 웃음을 잃지 마십시오.  어떤 고난과 풍랑을 만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때까지 여유를 잃지 마십시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모든 바른 믿음에는 확증과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은 증명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 나와 내 가정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십시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시위하십시오.  증명되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의 모습도, 성장의 모습도 결정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한 인간의 생각의 습관은 그의 성품의 뿌리가 됩니다.  권세와 지위만을 꿈꾸면 더욱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에 불타고 있으면 더욱 소유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락을 꿈꾸면 더욱 감각적이고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낮에도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밤중에도 대낮 같은 밝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니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체의 자족하는 비결을 알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예수를 믿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노아 시대보다 더 죄악이 차득한 이 시대에 나와 내 가정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전심으로 믿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온 백성이, 온 교회가, 온 성도들이 하늘의 거룩한 것에 취하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옥수수 밭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온 백성이 거룩한 하늘의 능력에 취해서 흔들거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령의 능력에 취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성령의 능력에 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불같은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거룩한 성령의 새술에 취하여 이 땅을 진동시켜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단의 견고한 진을 깨뜨려버리십시오.  "주여, 이 땅에 생기의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옵소서.  주여, 나와 내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거룩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 주옵소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도 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음부의 세력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믿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황홀경에 빠져 보십시오.  관념적이고 이론적으로 믿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듬뿍 빠져 보십시오.  사랑의 최고의 기쁨은 황홀경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떠한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인생 여정을 살아가면서 낙심되는 일들로 인생의 밤을 맞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칠 때에 우리의 인생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먼저 무너졌던 심령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독수리 같이 솟아오르는 힘과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여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강한 기름 부으심이 지금 이곳에 크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불로 성령의 불로 임하소서 임하소서
성령의 불로 성령의 불로 기름 부으소서 기름 부으소서"♬

오늘 이 시간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불었던 생기의 바람이 지금 이곳에 강하게 불어오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들의 심령마다에 강력한 영적 대부흥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모하는 만큼만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크게 사모하십시오.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더 뜨겁게 사모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고뇌와 고통과 슬픔과 뼈저린 고독과 낙심과 불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오해와 비난과 공격과 좌절감으로 허탈감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 주님이 당하신 슬픔, 주님이 당하신 공격, 주님이 당하신 비난이 내 고난과 슬픔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파도처럼 밀려오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무기만 있다고 하면 어떠한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고난과 슬픔과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위대한 사명자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안겨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최대의 능력입니다.  최고의 성결입니다.  최고의 평강입니다.  최고의 자유입니다.  최고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내가, 우리가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극복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적인 일을 저지르십시오.  우리 인생의 남은 때를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아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생애에 공급하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면 두려워집니다.  어려워하는 것이 임하면 어려워집니다.  문제를 자꾸 따라 다니는 사람은 문제에 얽매이고 맙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면 문제가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 이 시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모든 방황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십시오.  모든 고난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강력한 지지와 협력과 인정을 얻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믿음으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시야를 넓히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동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은혜를 따라 사는 것이지 기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은 반도기질이 있어서 굉장히 기분적이고 즉흥적입니다.  너무 쉽게 화를 냅니다.  자기 감정에 너무 충실합니다.  자기 성질대로 살아갑니다.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환경을 뜯어고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잠언 16장 32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노를 자꾸 발하는 사람은 고난이 파리떼 같이 따라 다닙니다.  노함은 애정과는 다릅니다.  노함은 충동적이고 조급합니다.  기분적이고 돌발적입니다.  노를 발하는 사람에게는 원칙이 없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자기 억제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시간마다 굴복시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 통제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통제이고 선택이고 분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심령 안에 충만하여서 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늘 건강한 인격으로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은 그 사람의 환경을 고치기 전에 삶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쁜 태도가 불행을 만들고 좋은 태도가 행복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파괴적인 문제 의식을 제거하십시오.  내 감정이 상했다고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내 기분이 나쁘다고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나쁘게 하지 마십시오.  제발,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포로가 되십시오.  마음의 평화를 탐내십시오.  삶에 대한 선입관이나 옹고집, 독선을 뽑아버리십시오.  이런 것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흐르지 않습니다.  강은 고사하고 그 심령에 은혜의 물줄기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하나님의 성령의 체질화를 옷 입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여러분의 심령에 철철 흘러 넘치게 하십시오.  성령께서 불러일으키시는 생기의 바람이 시간마다 때마다 여러분의 심령에 회오리바람처럼 불어오게 하십시오.  우리는 에스겔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들에게는 희망도 없습니다.  생기의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미래도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경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하고 무서운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교만에 대해서 아주 강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여기에서 '교만'은 그 의미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 위에 올려놓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이 땅에 자신을 높이 올려놓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자신을 더 높이 올려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는 다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은 교만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교만을 아주 경계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고 씨앗이 된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천사도 교만에 빠지니까 하나님을 대적했고,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여기에서 패망은 히브리어로 '신체를 절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갈기갈기 조각 내어 멸망하도록 만드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 교만이 들어오면 공동체도 분열되고 깨어지고 맙니다.  교만은 자신도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입니다.  교만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듭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가 겸손하여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여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는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해서만 되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언제나 무시하고 경멸합니다.  다른 사람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리만 내세웁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에 대해서 심리학적으로 좀더 살펴보면 이 교만은 열등감이 가져다주는 병적인 현상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하다보니까 교만의 가면을 쓰게 됩니다.  내 안에 열등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교만은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전부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나서기를 좋아합니다.  별로 된 것이 없으면서도 모두가 된 것처럼 거만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무례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정죄 의식이 강하고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을 보면 그 마음이 완악합니다.  그 마음이 딱딱하고 고집스럽고 파괴적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을 보면 그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교만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고도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한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여서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교만하면 그의 마음이 인색하게 됩니다.  남에게 베풀기 보다 남에게서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교만하면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무뎌지고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교만하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면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교만하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까지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 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서 있다고 확신합니다.  자신은 이미 다 고쳤기 때문에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경의 근거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죄와 허물 투성이의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향하여 아주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마음에 교만의 뿌리를 제거하십시오.  교만한 마음을 다 내어버리고 겸손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사람에게만 임하십니다.

주 앞에서 나를 겸손하게 낮추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는 일밖에 없습니다.  높이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높여주셔야 그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결코 교만할 수 없는 것은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겸손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겸손을 배우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하게 높여주실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이 교만의 장애물을 제거하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무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이 가득 찬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겸손은 나 자신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안에 있는 티끌만큼의 교만이라도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겸손을 살려내십시오.  겸손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고집합니다.  겸손하면 만사가 행복합니다.  겸손하면 모든 일이 감사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만사가 불평과 불만입니다.  교만하면 싸움과 다툼만 일어납니다.  아십니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교만하면 결국에는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는 "개인이나 국가가 욕망과 교만에 날뛰면 결국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만한 사람은 결국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십시오.  겸손히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오늘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잠언 22장 4절에서 말씀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재물의 축복이 끝까지 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하여 존귀히 여김을 받으십시오.  겸손은 내가 가져야 할 자세이고, 존귀는 하나님과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면 안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존귀는 내가 가져야 할 자세이고, 겸손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할 때에 가져야 할 자세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수치를 당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낮아지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다시 발견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발견되어져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내가 누구냐?' 하는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실 것이냐?' 하는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젊었을 때의 모세는 아주 당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히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패를 하고 광야로 쫓겨와서 40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40년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백성을 구합니까?"  그는 지금 철저하게 낮아지고 깨어졌습니다.  이런 모세를 가리켜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구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여호와가 너를 다시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의지하고 가라.  누구 묻거든 나는 이제 하나님께 발견된 사람이라고 일러주어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힘이 드십니까?  하나님께 발견되십시오.  직장과 사업이 어렵습니까?  하나님께 발견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자세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내버리고 겸손히 주님 앞에 서십시오.  그러면 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서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때 쓰임을 받다가 버림받았던 사울왕과 같은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교만이 씨앗이 사라지고 겸손이 기둥처럼 솟아나게 하옵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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