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감사하라 (시 100:1~5)

  • 잡초 잡초
  • 220
  • 0

첨부 1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편 100:4)

  어느 철학자가 “평화와 행복을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 마음의 정원에 감사의 나무를 심으라”고 했습니다. 바로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것입니다. 평화와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 피는 아름다운 꽃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 타입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삶과 불평하는 삶입니다. 환경이 그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 같지마는 그것보다 감사하며 사느냐 불평하며 사느냐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졌음에도 행복해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놀라운 것은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불행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는 삶을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쉐퍼’는 “인류의 첫 번째 범죄는 감사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삶도 감사하는 데서 자라가고 풍성하며 완성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은 아직 미성숙한 신앙이고 불완전한 신앙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신앙의 척도는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인 스펄젼 목사님은“우리에게 별빛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빛을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달빛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햇빛을 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햇빛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햇빛도 소용없는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리니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빛이 밤낮으로 비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신앙의 삶이 우리를 더욱 깊은 은혜의 삶과 완전함으로 이끌어 감을 말한 것이라고 봅니다.
  감사하는 데는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감사는 감사의 대상과 관계성의 역사를 크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더욱 풍성한 삶을 간직하게 합니다. 감사는 깊은 관계성 안에서 풍요한 역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감사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감사해야 할 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시편저자의 감사의 고백이 곧 우리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발견이자 깨달음입니다. 이 것은 기쁨이며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입니다.   
  저는 어린 아이였을 때에 주위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골려주기 위해“너는 다리 밑에서 주어다 기른 아이다”고 하는 말들을 종종 들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말을 들은 이후부터 심각히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들의 모든 즐거움과 기쁨을 빼앗아 갔습니다. 모든 행복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아이들은 때로 부모님이 꾸중하실 때에 나의 부모님이 아니기에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후일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예전의 즐거움과 행복을 회복했습니다. 부모님이 꾸짖어도 그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책망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것처럼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처럼 큰 행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이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형제는 다섯 남매입니다. 저의 위로 형님이 계셨는데 형님의 얼굴과 모습은 다른 네 형제와 달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님은 연령차이가 많았는데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추측하여 저의 어머니가 후처이고 저의 형님은 데리고 들어온 아들이라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형님은 이런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랫니의 고르지 못한 이의 배열이 아버지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지금의 나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저의 형님은 행복하게 자랐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자신 있게 노래했습니다.“여호와는 내 편 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라”(시 118:6-7)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보다 더 감사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본문 가운데서“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감사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이니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저자가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는 그의 것이니”라는 표현입니다. 시편기자의 표현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나는 누구의 소유이냐’는 것은 우리의 인생관을 결정해주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소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사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관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될 때에 세상에 따라 사람들이 만들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가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세계는 정치 분위기가 정치인을 만들어 가는 시대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세계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가르기와 감정의 정치판도가 정치인을 만들어 가기에 더러운 싸움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단의 소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바로 사단의 소유가 되어 사단의 농락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단의 노예가 되어 멸망을 향하여 끌려가며 악을 실현하는, 사단의 일군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더럽고 악합니까? 왜 세상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까? 사단의 노예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당시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유와 사단의 노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세상의 소유입니까? 그럼, 세상의 명령과 세상이 이끌어 가는 대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사단의 소유입니까? 남을 아프게 하고 멸시하며 죽이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단의 노예로 악행을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멸망의 인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며 살게 해 주셨음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베드로는 초대 교인들에게“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은 영원하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또한 대저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5절)고 했습니다.‘그의 백성’이라는 것,‘그의 양’이라는 것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 안에 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심에 선함으로 하시고 인자하심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돌보심과 사랑하심은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성실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은 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깨닫고 시편23편의 시를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망과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나를 안위해 주시고, 내 잔을 넘치게 하시고, 내 평생에 선 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자랑하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유명한 신사 한 분이 믿음이 좋은 농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저녁상을 받고 식사의 감사기도를 드리자는 주인 농부의 말에 신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옛 풍습이고, 오늘날처럼 문명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옛 사람들처럼 식사기도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지요.”이때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매 식사 때마다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풍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농촌에서도 자기들의 음식에 전혀 감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기는 하지요.” ”오 그래요. 참으로 그들은 똑똑하고 개명된 이들이군요. 도대체 그들이 누구인가요?”“예, 우리 집에서 기르는 돼지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가치와 존귀함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을 사는데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못함의 차이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아주 훌륭하게 길렀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세 가지 비결을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①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② 원망하는 사람하고 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불평분자들은 긍정적이 아니기에 되는 일이 없는 것을 어머니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③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세 마디로 훌륭한 유명한 자녀들을 양육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그 이름을 송축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삶을 감사로 더욱 풍성하게 하도록 하십시다. 

‘스트라잇’ 이라는 사람은 “음식에 소금이 맛을 주는 것처럼 감사는 영적 생활의 소금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 되셨음을 감사하십시다. 우리를 영원히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감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삶을 사십시다.. 아멘. 
(김성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