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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차원 (고전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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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정상에서 만납시다.'라고 하는 책을 쓴 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지그 지글러(Zig Zigler)입니다.  그가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 자서전의 마지막 결론에서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에게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 딸과 그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서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귀한 동반자였다' 
그 다음에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 
감사하고, 감사 외에 다른 말이 없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성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세를 누렸다고?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또 감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느냐,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메타라고 생각합니다.  ‘종은 울리기전까지는 종이 아니며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노래가 아니며 축복은 감사하기 전까지는 축복이 아니라.’ 는 이 말에 여러분은 동의하시나요?
믿는다는 것이 축복인 이유는 감사는 믿음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아무리 믿어 보려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심령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지식적인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됩니다.  설교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와야 합니다.  이것이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빌1:4)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반대로 뒤집어 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감옥밖에 있으면서 생각할 때마다 분하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닌지요?  생각하면 원망하고 분하고 한이 맺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축복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생각할 때마다 기도할 때 마다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일을 생각하고 저런 일을 생각하고 이 분을 생각하고 저 분을 생각하고 그저 다 고마운 일이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심령입니다.

우찌무라 간죠는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감사는 차원적인 문제입니다.

1. 감사는 받은 바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4절

(4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받았다.
주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받은 것인 줄 알아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준 것과 받은 것, 어느 쪽이 많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받을 때 감사합니다.  받은 바에 대한 감사입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받았을 때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받은 바를 알아야 합니다.  감사는 받은 바를 깨달아야 할 수 있습니다.

1) 그렇기 때문에 쟁취한 것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가끔 파업도 하고 데모도 하면서 빨간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 투쟁, 쟁취!' 그럴 때 마다 저렇게 해서 얼마를 얻어내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로 인해서 마음이 황폐해집니다.  그 심정이 망가집니다. 
얻은 데 대해서 고마운 마음은 없습니다.  쟁취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왜?  쟁취한 것이니까.  혁명, 쟁취.  그래서 북쪽에 가서 다니며 보면 모내기 할 때에 다니면서 보면 '모내기 혁명'이라고 했습니다.  모내기가 왜 혁명입니까?  그것도 전투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싸워서 이기고 이렇게 살다보면 감사가 없습니다. 
여러분, 쟁취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2) 자기 의를 내세울 때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율법적 관계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소유란 소유하는 순간 약간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도 소유하자마자 또 다른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성취감이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취되는 순간 또 불안합니다.  지속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로지 감사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하게 합니다.  참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3) 운명으로 생각하는 자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팔자요 운명인데 누구에게 감사를 하겠습니까? 
이래서 감사가 없는 민족이든 나라든 다 망가지고 황폐하고 마는 것입니다.

2.  감사는 깊은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많이 은혜 받았다고 많이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만큼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 가운데 감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가다가 손을 들고
"오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더랍니다.  왜 감사하냐고 물어보니까 이 눈썹이 있어서 비가 이렇게 밑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또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엇이 감사하냐 하니 콧구멍이 밑으로 뚫린 것을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위로 뚫렸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생각하고 깨닫고 보니 감사하더랍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생각의 깊이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때에 깊이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남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지각을 가질 수 있느냐?
그것이 바로 역경입니다. 
사람은 평안하게 되면 둔해집니다.  배부른 사람은 코가 둔해집니다. 
배고픈 사람이 코가 예민합니다.  환난과 핍박과 고난, 남다른 어려움을 치를 때에 그는 은혜에 대해서 민감해집니다.  깊은 생각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 옛날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빌립보 1장 12절에서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는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감옥에서 2년 동안 재판도 없이 처박혀서 고생을 했습니다. 
로마로 가는 동안 배가 파손이 되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3년 동안 했지만 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과정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통해 큰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란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남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과 같은 것은 웃음으로 감사하기보다 눈물로 감사할 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딩굽니다. 가을은 생각의 계절입니다. 1년 동안을 한 번 깊이 생각해봅시다.
깊이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감사절이 되길 바랍니다. 

3.  감사는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여건에서도 미래가 없는 일에는 감사할 수가 없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 감사할 수가 없어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 그 속에는 감사가 없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감사하는 순간, 미래가 열립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현재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그것이 바로 감사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8절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신앙생활을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주님이 견고케 해주실 것을 믿고 있어요. 그런고로 감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향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많은 능력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침내 저주를 받아 광야에 엎드러져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왜 원망했겠습니까?  아니 성경대로 보세요.  물이 없습니까? 농사를 지으랍니까?
하늘에서 주는 떡가루를 가지고 밥 먹고 편안히 지내는데 왜 원망하는 겁니까?  왜 원망하다 죽었습니까?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확신이 없었기에 오늘 조그마한 어려움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만 감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해보십시오.  반드시 모든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깊이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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