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리셋(reset) 증후군 (히 9:27)

  • 잡초 잡초
  • 296
  • 0

첨부 1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는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대입 수능고사를 포함하여 실력을 평가하고, 직위나 직장을 얻기 위한 모든 시험이나 직장의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 등 수 많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때 마다 결단을 위한 순간의 선택이 참으로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동기나 계속되어 온 노력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시험 한 번 잘못보아서 당락이 결정된 것 같지만 사실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하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왔느냐가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간혹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래서 소망이나 희망이나 도전이나 노력이나 결단이나 지나간 추억이라는 단어는 세월 속에 오히려 인격을 성숙하게 하거나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계기로 만들어 주기에 참으로 때로는 유익하게 해줍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는 죽음과 심판과 내세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인생의 살아온 과정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또 다시 기회가 있는 것처럼 허랑방탕하거나 대충 대충 그까이꺼 뭐~ 이렇게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은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사정이 없이 찾아와 그 호흡을 끊어버립니다. 죽음은 애굽의 장자를 왕뿐만 아니라 짐승의 첫 것이라면 모두 생명을 거두어간 것처럼 무자비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오래 동안 살아온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도 어린이도 죽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또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고민과 비극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으로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생을 살아온 행위에 대해서 살아온 삶의 과정에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컴퓨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리셋 버튼이 있습니다. 출생과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는 오직 한 번만 주어지는 소중한 기회인데 이것을 컴퓨터 게임하듯 또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자살, 살인, 총기난사 사건 이런 것은 심리적 압박감에 따른 리셋 증후군의 일종입니다.

신앙인들이 범하기 쉬운 영적 리셋증후군은 더욱 심각합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순종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거나,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을 버리고 섬기던 교회에서 기분이나 감정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도망치거나, 헌금에 인색하여,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에 진보가 없고, 전도하지 않고, 기도생활에 전력하지 않는 것은 무서운 영적 리셋증후군 때문입니다.

본문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중요한 단어가 둘이 나옵니다.

그 하나의 단어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확실한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며,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며, 최종적인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죽음의 손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역사소게서 한사람도 생명의 연장은 가능했을지 모르나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가지고도 죽음의 때가 올 때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선행이나 착함도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다윗은 『죽음과 나 사이는 한 발자국 거리밖에 안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한 단어는 심판이라는 단어입니다.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전쟁터에서 고참 병사가 총탄에 쓰러지자 군목이 달려와서 “병사,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가?”라고 묻자 병사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불쾌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수없이 싸우면서 죽음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두렵다니요. 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필 죽어 가는 시간에 나의 감정을 건드리십니까?”라고 항의합니다.

군목은 그 청년을 향해 물어봅니다. “하지만 병사, 죽음 후의 일은 준비되었나?” 병사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목사님! 바로 그것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병사는 죽음 후에 올 일을 두려워하기에 예수님을 영접시켜 구주로 믿게 하고, 기도해 주었더니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더랍니다.

전쟁터에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이 병사는 지금까지 경험한 이 세상의 위험에는 용감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기력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를 숨기고 피하여 다닐 수도 있고,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라는 목사님의 호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죽음 앞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니 두려웠던 것입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 앞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을 대면해 일생의 죄를 다 내놓고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회나 전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리셋(reset)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사람에게 죽음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프랑스의 미술 전문 잡지인 '일뤼지옹'(Illusion)지에 중세의 귀부인이 화장하는 그림이 실렸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채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겉모습과는 달리 흉측한 해골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늙고,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거짓된 삶을 속일 수 없다는 엄숙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사회학자 토니 캄폴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래에 있을 죽음의 순간을 잊고 외형의 업적을 이루는 데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진실을 버린 채 눈앞에 보이는 업적만을 좇아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케네디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려고 선거유세차 달라스 시에 갔을 때 환영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다가 괴한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누가 그 머리로 총탄이 꿰뚫고 나갈 줄 알았겠는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의 달라스 행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저승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 의원도 미국 전역에 선풍을 일으키며, 대통령 예비선거에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나아가다가 켈리포니아의 어느 호텔에서 자기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던 중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통령이 될 꿈에만 부풀어 있었을 뿐 그의 출마가 저승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아무도 모르는 세계입니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게 인생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14절을 보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말씀합니다. 잠언 27장 1절에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선언합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큰 풍년이 드니까 곡식을 다 쌓을 곳이 없어서 곡간을 크게 짓고 곡식을 많이 쌓아두고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양식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는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시고 그 영혼을 그날 밤에 거두어 가셨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집도, 땅도 저금통장도 다 두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자신의 충직한 종을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그 종은 아침마다 첫 인사를 하면서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말을 하게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야 말로 모든 인간이 꼭 기억해야 될 말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쁜만아니라 심지어 자기는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죽음은 너무나 예상하지 않는 경로를 통해 갑자기 찾아옵니다. 천재지변이라는 태풍이나 홍수나, 치명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전쟁이나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싸움이나 우리 주변에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속에 노출된채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생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여기 저기서 사고나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빈라덴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테러 중 미국 9.11 국제무역센타 테러사건 때,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재 6,000여 명의 사람들도 참사를 당한 그 날 아침 자신들이 죽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며,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깊이있게, 심도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참으로 뜻밖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하고 대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느 순간이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리더쉽과 동기 연구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빈 S. 샤르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의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 라고 하는 책입니다. 아주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그는 백 한 가지 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그 책에 있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기뻐했단다. 그런데 네가 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울겠지만 그때 네 자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 대단히 중요 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지 아니하면 베풀고자 할 때에 기회가 없어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느 신학교교수가 학생들에게 ‘내일 죽는다.’라는 가정을 하고 유서를 써 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오늘 한번 오늘 댁에 가셔서 유서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변호사를 통해 재산 분배에 대해 써 놓는 그런 유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중요하고, 유일한 말이 무엇이냐?’라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어야 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나의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남길 유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과연 성도 여러분들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혹시 죽음 앞에 내 마음대로 살았던 많은 날들이 덧없이 느껴집니까? 후회하고, 회개해도 나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남은 삶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알차게 사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불러 주신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구원받은 감격을 잊지않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때문에 구원받았다면 그사랑의 빚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젊음과 기회가 있을 때, 건강할 때, 움직임이 가능할 때, 물질, 건강, 재능,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 것에 모든 목표와 가치관의 전부를 두고 매달리며 소망을 두고 살지 말아야합니다. 세상의 섞어지는 것에 인생 목표와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필요 없는 것, 어쩌다 필요한 것 같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때로는 정리하고, 모두 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천국에 시민권이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죽을 때 웃으며 아름답게 죽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순교나 위대한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주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것만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눈 이ㅐ 땅에서 천년만년 살 줄 알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심지어 죽음의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도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줄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에게나 조만 간에 죽음이 찾아옵니다. 대통령에게도 찾아오고, 재벌한테도 찾아오고,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한국사에 위대한 인물인 태조 이성계도 죽었고, 고려 태조 왕건도 죽었고, 세종대왕도 죽었으며, 천하를 호령했던 느부갓네살도, 나폴레옹도 죽었으며, 중국의 진시황도 불사약을 구해 영생을 얻으려고 노력를 했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죽음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존재이며, 또 영생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하는 길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란 책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의사의 사형선고 진단을 받고야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있고 지식도 있는 사람인데 죽은 다음에 꽃 한 송이 가져오는 사람이 없고, 울어주는 사람도 없이 고독하게 죽어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의 눈에 피 눈물 나게 하며 부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악하게 굴더니 드디어 죽고 말았구나?” 하고 속 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지혜로운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부디 정직하게 살고, 불쌍한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도 베풀고, 이웃과 나누며 살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교훈해 왔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사람이 죽을 때는, 장갑을 끼었다가 벗을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때에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보며 신비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던 17세 난 소년은 죽기 직전에 “아! 베드로가 보인다.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니까, “큰일 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걱정을 하다가 “엄마, 나는 먼저 천국에 갈 테니 엄마는 나중에 오세요.”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나더랍니다.

김연준 씨란 분은 세 회사를 경영하는 분인데 간암 말기에 접어들면서 온 몸이 굳어져 말을 못했고, 누워서 무릎을 세운 채 와들와들 떠는데,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답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우냐고 했더니, “지옥에 갈 것 같아서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지옥에 안 가는 법을 가르쳐 드렸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온 몸이 풀리면서 화평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는데 숨을 거두기 전에 “빛이 보인다.”고 하면서 “지옥에 안 가는 법을 가르쳐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걸어간 길에 예외는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인생에 후회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2.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른이 된 아들 넷을 둔 한 어머니가 병상에서 임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상에 둘러 서 있는 아들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라고 했으나 막내아들에게만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라 하시고 저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시나요?” “얘야, 너의 형들은 머지않아 저 좋은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그러나 너는 이게 마지막 이란다.”

“왜요?” “엄마는 너를 예수님께 인도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너는 끝내 네 멋대로 살고 있다. 헌데 어떻게 너와 내가 만날 수가 있니? 그래서 네 형들과는 굿나잇이고, 너와는 굿바이란다” 막내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한 말입니다.

“어머니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도 굿나잇 키스를 할래요. 엄마, 굿나잇” 하면서 신앙을 선택했답니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사실은 죽음 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곡식 알갱이가 땅에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배, 수 백 배로 다시 살아나는 것같이 사람이 죽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있고 부활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얻는 사람은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게 되고 심판의 부활을 얻는 사람은 평생 지은 죄를 낱낱이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고 그 지은 죄만큼 고통을 끼며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선한 일”이란 사람 보기에 착한 일, 선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말하는데, 그것은 곧,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며, 하나님이 가장 악하게 보시는 일은 마음이 녹아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악한 일은 없습니다.

D. L. 무디(Moody)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맡고 있던 젊은이들은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유독 한 젊은이만은 고집을 부리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서부로 가야합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온 다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몇 날 후에 이 젊은이가 몹시 아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무디 선생은 병원에 찾아가서 기도해 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더니, “무디 선생님, 나는 이대로 죽지 않습니다. 전에 말한 대로 서부로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온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젊은 사람은 몇 날 후에 건강을 회복해 가지고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무디 선생은 다시 어깨에 손을 얹고 간곡히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젊은 사람은 화를 버럭 내면서 무디 선생의 손을 뿌리치고 “무디 선생님, 내 영혼 구원에 대해서 다시는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돌아와서 결심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젊은이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무디의 마음에 무슨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날 밤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 일어나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았더니, 그 젊은 사람의 부인이 울면서 “무디 선생님, 빨리 좀 저희 집에 가 주세요.”, “내 남편이 몹시 아픕니다. 빨리 좀 가주세요.”, 무디는 “가야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오늘 오후 마지막 거절의 말을 했습니다. 이미 위험 선을 넘어 섰습니다. 내가 가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가 울면서 간청하기 때문에 옷을 입고 따라갔습니다. 그 집 계단에 올라가는데, 그 청년이 침대에 누워서 눈을 번쩍 뜬 채 의식을 잃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Too late! Too late!)”하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꼭 쥐어주며,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따라 하라고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하는 말만 되풀이 하다가, 정신을 못 차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장 2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이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교회의 문도 닫히는 때가옵니다. 전도하는 사람도 없어지는 때가옵니다. 계속 거절하면 성령의 역사도 끝나는 때가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 보면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 생명의 책들이 있고, 첫째 부활이 있고, 둘째 부활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두 가지 책이 있는데, “생명책”과 “행위의 책들”입니다. 생명책은 단수로 되어 있고, 한 권입니다. 이 책은 천국의 호적과 같은 책으로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고,

“행위의 책들”이란 예수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모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인데 각 사람에 하나씩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하게 되는데 그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죄의 심판을 받지 않고 상급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천년 왕국 시대가 지난 후 둘째 부활을 얻게 되는데 영원히 죽지도 않고 고통을 받기에 합당한 몸으로 부활하며, 평생 지은 죄를 다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아 형벌이 결정된 후 둘째 사망 즉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확실히 영접하면 이 순간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아무 때 죽어도 낙원에 갔다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한 몸과 낙원에 있던 영혼이 결합하게 됩니다.

크게 따라 합시다. “주 예수여,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 후에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 생활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지 아니하면, 반드시 둘째 부활을 얻어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전도서 12장 14절에도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셨습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지금 당신의 손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에게 구원이 있고 용서가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밖에는 남을 것이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께로 나오시면 당신은 결코 심판대 앞에 서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언제 준비할까요? 그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많은 나라에 가 본 경험을 갖고 있던 영국군 장교가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서 경험담을 말해달라고 해서 여러 나라에서 본 것들을 얘기 해주고 나서 그의 말에 홀린 청중에게 말하기를,『나는 이것들보다 더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어서 주님 앞에 선후 5분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두 가지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할 이들을 위한 심판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들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은 모두 지옥으로 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믿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는 오직 지상에서 행한 모든 행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형벌을 받느냐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어느 날 심판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될까요? 세상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라. 네 돈을 남에게 주라. 빚을 갚으라. 그러면 천국에 간다.』고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해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크리스천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은 구원이냐? 멸망이냐? 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 사는 동안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 모든 것에 대해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 나의 섬기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느냐? 거룩하게 살고, 나의 뜻에 헌신하며, 밑겨 준 은사를 가지고 오직 나를 위해 우선순위를 첫 번째에 두며, 너보다 나를 위해 살았느냐? 말씀에 순종하고, 맡겨 준 직분을 귀하게 여기며, 십자가 지고 나를 따랐느냐?” 라고 물으실 때 “아멘. 그렇게 했습니다.” 라고 보고하는 자가 가장 행복 자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죽음에 대해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좀 더 바르게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승리하시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은 두 번 살지 못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도 리셋(reset) 이 없습니다. 오늘 충성합시다. 지금 헌신합시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만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젊음과 시간과 물질을 맡겨 주셨는데 이 기회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하며, 헌신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나간 기회는 영원히 두 번 다시 기회로 찾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아니 지금 결단합시다. 지금부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 다하도록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받은 은혜를 소멸하지 말고, 사랑의 빚진 자요. 나를 충성스럽게 여겨 직분을 맡겨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이전보다 더욱 충성합시다. 할렐루야!

* 목회기도 :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영적 리셋증후군에서 벗어나 주어진 사명과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순간순간마다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오늘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다 해도 주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종말 신앙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설 때 착하고 충성된 사명자로 상급 받는 신앙의 헌신 자,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는 성도가 되도록 나는 죽고 내 속에 계신 주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이번 한 주간의 삶과 나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짐을 지고 좁은 길 걸아가신 주님을 따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