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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을 진 자 (엡 5:1-4, 롬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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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내가 빚을 진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을 하리라고 결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찬송시인은 이것을 생각 할 때마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라고 빚진 자의 자세를 표현하였습니다.

1. 빚을 진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닮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모습을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세월은 많이 지나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은 망하고 자기를 그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던 요나단도 세상을 떠났고, 자기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지나간 날에 입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요나단이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무비보셋이라는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하여 자기 궁으로 데려다가 왕자와 같이 대우해 주었습니다.

최근에 대한민국을 울렸던 두 분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의 어머니와 세계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김진호군의 어머니입니다. 전 국민이 그들을 보면서 왜 가슴을 울먹거리며 감동했겠습니까? 그것은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자페아인 아들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눈 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였습니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 사랑은 어떤 의미입니까? 시인 릴케는 루살로메에게 한 눈에 반하여 “내 눈을 감기세요.”라고 하는 시를 씁니다.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연인들의 에로스적인 사랑조차도 이처럼 뜨겁게 타오르는데 주님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그리고 그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만에 하나 자기를 높이려고 하고,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사랑은 눈을 감겨도 볼 수 있고, 발이 없어도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을 탓하고 부족한 시간을 탓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웃으로부터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정말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아량이나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빚 진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빚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사랑 충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감사의 말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전5: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에는 감사의 말과 찬양도 포함됩니다. 자기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은 자신의 빚을 탕감해준 그 사랑 많은 분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당 못할 빚이 전부 다 없어졌음을 자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진정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주신 은혜와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주신 은혜를 감사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깊이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감사주일을 지나면서 다음 추수감사주일이 돌아올 때까지 매일 하루에 한두 가지씩 감사 일지를 한 번 같이 써 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살기가 힘들지만 속상한 일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으로 그날그날 감사를 개발하여 감사의 일지를 쓰는 마음이 얼마나 복되고 풍요롭고 넉넉해지겠습니까? 노트나 다이어리를 사서 감사의 일지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게 될 줄 믿습니다. 나에게 이토록 감사한 제목들이 있었던가 하면서 말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말씀한대로 “우리에게 별빛을 주신 것을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 달빛을 주시고, 달빛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햇빛을 주시고, 햇빛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햇빛보다 더 좋은 천국을 주셨다.”고 하였는데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체험하시게 될 줄 믿습니다. 부디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빚진 자들의 삶인 줄 믿습니다.

2. 우리는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14절에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진 빚은 복음의 빚입니다. 그러므로 이 빚을 갚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전도하여 주어서 지금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 빚을 내가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까지 가면서라도 복을 전하려고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말하기를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복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 것이다. 종교는 허다하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복음전파는 하나님의 자랑입니다. 2)복음전파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복음전파는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지금의 유대인은 여러분의 가족과 친지들이요 친구들입니다. 지금의 헬라인은 여러분의 이웃과 세상입니다. {“주여, 내게 태신자를 주옵소서.”} 우리에게 영적인 자녀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살기가 어려워 자녀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풍조가 만연해 지고, 낳아도 하나씩만 낳겠다고 하는데, 사랑하는 여러분 그 대신에 영적인 자녀라도 많이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해산의 수고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자녀를 얻은 기쁨을 맛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여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전도를 하여 제법 결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남편을 전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수 믿으라는 이야기만 하면 “그만, 그만”하고 말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많이 했고 기회도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생각한 끝에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여러 날 기도하고 여러 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구원진리에 대한 것과 이 편지를 쓰게 된 것과, 자기가 그동안 겪은 쓰라린 가슴을 다 기록한 것입니다. 출근하려는 남편의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오늘 직장에 가서 읽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뭐야”하면서 가만히 꺼내 보다가 방바닥에 내 던지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어이가 없어 낙심하고 있는데 현관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남편이 다시 들어 왔습니다. 아마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성령님이 역사하셨는지, 하여간 그 편지를 집어 가지고 다시 나갔습니다.

그 여 집사님은 하루 종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녁에 일찍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이야기를 할 것이지”하면서 모처럼 부부사이에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정이 넘도록 대화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부터 예배당에 남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말로 전하기 힘든 경우에, 이처럼 편지로 전한 복음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렸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빚지고 살다가 죽는 존재이다󰡓그렇습니다. 한 평생 빚을 짊어지고 살다가 죽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빚이라 하면 여러 가지 빚을 말할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빚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진 빚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종류의 빚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빚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이 의식이 나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줄 믿습니다. 날 위하여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 주셨으니 우리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오늘 여기교회까지 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신세를 입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평안히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시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배운 사람들은 지식을 가지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헌신하고 봉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겠고, 사업을 하는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에 대해 빚지고 있다는 생각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가 아니면 나는 이 사업을 경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노동자들은 무조건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데모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왕성한 기업 활동을 통해서 고용이 창출되어지고, 그렇게 창출되어지는 고용을 통해 우리에게 일자리가 주어지고, 우리가 생계를 꾸려나가고 건전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유익을 주는 존재라는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서로가 빚 진자 의식을 가지게 될 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자는 뒤에서 힘들게 쫓아오는 자에 대해, 뒤 서 있는 자는 앞서 가는 자에 대해, 선진국은 후진국에 대해, 또 후진국은 선진국에 대해󰡒빚 진자󰡓라는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에서 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한 유명한 신학자로 또 음악가로서 성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를 바라볼 때 항상 빚 진자 의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슈바이처가 살았던 그 시대에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통체로 삼키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던 때를 슈바이처 박사는 살았습니다. 아프리카를 유럽에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나 경제인들이 잡아먹어야 될 하나의 대상으로 봐라봤던 것을 슈바이처 박사는󰡒아프리카는 유럽이라는 부잣집 문 앞에 구걸하고 굶주려 쓰러져있는 나사로와 같은 그런 불쌍한 존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지금까지 신학박사와 음악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포기하고 다시 의학을 공부하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한 평생 의사로서 그들을 도우면서 그들에게 빚 갚는 생애를 보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가톨릭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긴 합니다만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에 가보시면 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정말 이 시대의 빚 진자의식을 가지고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해 자기 자신을 아끼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보다 더 못한 사람,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 병들고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 대해 빚 진자 의식을 가지고, 나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살기보다 주는 삶을 사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삶을 회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온전한 배려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리라 믿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한 평생 빚 갚는 일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 주었던 언더우드 선교사나 아펜젤러 선교사 같은 사람들은 미국에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고 가난한 한국 땅에 와서 자기 생을 한국 사람들을 위해,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내어놓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미엔 이라는 한 선교사는 모로코에 문둥병자들이 있는 섬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도 직접 문둥병에 걸려서 문둥병 환자로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내가 빚을 졌다는 마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의 사명으로 삼아야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빚 갚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빚 갚는 일을 위해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빚을 진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까지 가서라도 이 빚을 갚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시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애쓰고 힘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우리의 여생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내가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셔서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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