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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용한 사람도 쓰신다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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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는 베드로의 동생이다. 형처럼 고기 잡는 어부였다. 하지만 형과는 매우 대조적인 성격이다. 베드로는 마치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터지다가, 금방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성격이라면, 안드레는,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말씀 듣는 일을 즐겨했고,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들었다.

드레는 고기 잡는 일보다는, 영적인 일에 더 깊이 몰두했다. 그래서 침례요한의 제자가 되었다. 또한 본문을 보면,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하자, 듣고 예수님을 좇는다. 아주 냉정하다고 여겨지지만, 이 결단이 안드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안드레는 기독교 역사에서, 제일 첫 번째 신자요, 첫 번째 제자요, 첫 번째 전도자, 첫 번째 선교사가 되어서, 초대교회는 안드레에게 ‘프로토클레토스’(처음 제자)라고 영광스럽게 불렀다. ‘안드레’는 “남자답다”는 뜻으로,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은 남자답다고 하면, 허세를 부리면서, 큰 소리 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남자답다고 하는 말은,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자가 남자답다는 말이다(고전16:13).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뛰어들려면, 큰 용기와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안드레는 용기 있는 자다.

이제까지는 요한을 떠났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면,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큰 결단력이 필요하다. 또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 그의 직업, 재산, 부모를 모두 두고 예수님을 따른다(마4:18~). 이렇게 올바른 용기와 도전정신이 남자다움이다.

안드레는 자기 형의 그늘에 늘 가리어 있었으나, 불평하지 않고 뒤에서 힘써 일했다. 그는 조용히 일했지만, 큰일을 했다. 안드레가 전도한 시몬 베드로는 후에, 하루에 수천 명을 회개시키는 놀라운 전도자가 되었다. 만일 안드레가 없었다면, 베드로도 없었다.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한 사람은, 바로 안드레이기 때문이다(42). 목소리 큰 사람만 쓰임 받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사람도 쓰임 받을 수 있다. 뒤에서 다른 사람을 세워주면서,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은 위대하게 쓰신다.

교회를 잘 안 나오는 무디를 찾아간 주일학교 선생님이 계셨다. 그는 무디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무디는 그날 회심했다. 그 후에 무디는 미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전도자 무디는, 한 사람의 숨은 공로자, 킴볼 선생님 때문에 위대한 일꾼이 되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의 큰 일꾼이 나올 수 있다. 기대를 갖고 전도하자. 자신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다. 강철 왕 카네기의 비문에는 “여기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을, 주변에 불러 모았던 사람이 누워 있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남을 고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 이상의 부자가 될 수 없다. 세종대왕은 직접 측우기를 만들지 않았다. 장영실로 하여금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기에 위대하다. 안드레의 능력은 연결시키는 능력이기에, 귀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도 연결시키는 능력을 키우자.

1. 자기 형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35절을 보면, 안드레는 침례요한에게 침례 받은 그의 제자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자 침례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36)이라고 외친다. 안드레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좇았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38)고 물으셨다. 그때 안드레는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였다. 동문서답처럼 여겨지지만,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과 사귀면서, 배우고 싶어서, 주님 계신 곳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와 보라”하셨고, 안드레는 다른 제자(요한)과 예수님을 따른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룻밤을 보냈다. 예수님과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 안드레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예수님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확신이 생겼다.

확신이 들자 아침에 곧장 뛰어가서, 자기 형 시몬에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복음을 전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감격이 있기에 전도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에 대한 감격이 있다면,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예수님에 대한 감격이 있다면, 누구나 다 전도할 수 있다.

안드레는 전도를 위해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학교에 가본 적도 없고, 전도에 관한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단지 예수님을 만났기에, 그의 가족도, 예수님을 알기 원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 전도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어렵다고 말하게 한다.

전도를 어렵게 생각하도록 하니까 전도를 못한다. 설교를 어렵게 만드니까, 설교를 통해서 영혼을 얻지 못한다. 마귀가 교회의 능력을 빼앗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말씀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중세 교회는 라틴이로 설교를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교회 와서 졸다가 갔다.

만약 한국에서 히브리어로 설교를 한다면,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부 다 귀머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이 중세의 모습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니까, 미신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성상을 숭배하게 되고, 성물을 숭배하게 된다.

사람이 만든 떡을 예수님의 몸, 성체라고 하고, 절하며 숭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나타나서 자국어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설교는 들려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나님은 들리는 설교를 원하시고, 마귀는 들리지 않는 설교를 원한다.

안드레는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제자가 된 다음, 가족을 전도했다. 진정한 전도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족을 전도하기 어려운 이유는, 말이 아니라 생활로 전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평소에 생활을 통해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가족 전도는 어렵다.

안드레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도하는 본을 보여주었다. 성격 거칠고 기고만장한 그의 형 베드로를 세워주었다. 자신이 먼저 주님을 만났다고, 음에, 베드로가 설교하면 한 번에 3천 명씩 회개시키는 설교자가 되었다. 안드레 없이는 베드로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안드레처럼, 형제를 찾아나가는 정신이 필요하다.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친교하고 봉사해도, 나가서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나가기 위해서 이다. 나가서 누군가를 데리고 와야 한다.

안드레는 성공적인 어부다. 큰 월척을 잡았다. 베드로가 공중 앞에서 대중전도를 했다면, 안드레는 조용하게 개인 전도를 했다. 베드로가 투망 전도라면, 안드레는 낚시 전도를 한 사람이다. 두 가지 다 필요한 방식이다. 안드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형을 구원할 수 있었다.

2. 오병이어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연결시켰다(요6:1-13).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 모여들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길어져서, 음식을 가져 오지 않은 사람들은, 다들 지치고 허기져 있었다. 마을이 너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기에, 음식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5)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심은, 제자들의 믿음과 행동을 보기 원하심이다. 그러자 두뇌 회전이 빠른 빌립이 계산을 해보자, 조금씩 먹여도 2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도 부족하다고 했다. 빌립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기에 머리만 굴렸다.

그러나 안드레는 머리를 쓰지 않고, 많은 군중 속에 끼여 있는 아이들까지 일일이 살폈다. 주위를 살피다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다.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우리는 종종 큰일과 사람에 묻혀서, 어린아이에게 보내야 할 관심과 사랑이, 증발됨을 경험하게 된다. 안드레는 아주 작은 것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계산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계산에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넣어서 계산하였다.

자신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해내실 줄 믿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했다.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안드레만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보였다. 작은 것도 크게 볼 수 있기 바란다.

스코틀랜드의 ‘셀콕’이라는 마을에서 큰 부흥회를 일주일 동안 했다. 전도 부흥회였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집회는 실패라고 많은 사람이 말했다. 마지막 날 헌금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한 소년이 헌금은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너무 가난하여 헌금을 드릴 수 없지만, 헌금 대신 저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겠습니다.” 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헌신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년이, 세계 역사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바로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리빙스턴이다. 바로 이렇게 하나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안드레는 주일학교 성자다. 유세비우스 교회사에 보면, 안드레는 러시아, 그리스, 소아시아, 터키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그리스 아케아의 페크라스에서 “아멘, 주 예수여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라는 말과 함께, X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되어 있다.

화가 머릴로는 ‘성 안드레의 순교’라는 그림에서, 안드레의 십자가 앞에, 한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삽입하여 그렸다. 우리 스스로 어린이를 포기하지 말자. 어린 영혼을 구하자. 또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을지라도, 안드레처럼 연결하는 자가 되면,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다.

안드레는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알았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시대, 인터넷 시대다. 모든 사람에게 정보가 열려 있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어린이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리빙스턴 같은 사람을 키우는 일과 같다. 안드레가 아이 하나를 데려왔을 때, 오병이어가 일어났다.

옛날에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그 해법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노하우’(know-how) 공부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그보다 노웨어(know-where),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빨리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정보는 다 있기에, 빨리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3. 이방인(헬라인)도 예수님께 연결시켰다(요12:20-23).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온 사람 중에, 당시 복음의 문 밖에 있던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헬라인들은, 직접 예수님을 뵙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가운데,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던 빌립을 찾아가서,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빌립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드레에게 먼저 상의하자, 안드레는 즉시 예수님께 데려가서 여쭈었다.

안드레가 헬라 사람을 인도하자, 예수님께서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 또 율법을 모르는 헬라 사람에게,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구원의 도리를 설명한다. 십자가의 도리를 씨 맺는 열매의 이치로 설명하신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유명한 밀알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 예수님 앞에 왔던 헬라인 중 하나가 훗날 누가복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라고 한다.

안 믿는 자들이 어떤 자든, 예수님을 믿고자할 때, 열린 마음으로 따뜻이 영접하고, 그들에게 맞게 복음을 전해주어, 예수님께 인도하고 구원을 받게 해야 한다.

그 후 헬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안드레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혼자 품고 끙끙대지 말고,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 혼자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가, 나중에 감당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안드레는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다. 안드레는 선입견을 버리고, 헬라인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데리고 나갔다. 안드레는 처음에는 가족을 전도하더니, 숫자에 들지 못하던 어린아이까지, 개처럼 취급받던 이방인들까지, 예수님께 소개하였다.

안드레의 모습은 머리 쓰는 신앙이 아니라, 해보는 신앙이다. 머리만 쓰면 역사가 없지만, 해보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전도도 하면 된다. 기도도 하면 된다. 하기 않기 때문에 안 된다. 안드레의 사역은 개인전도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며(마28:19-2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눅15:10),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영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소개하는 안드레와 같은 사역을 해야 한다.

제사장이라는 말은 다리를 놓는 자라는 뜻이다. 안드레의 삶은 파이프와 같다.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그런 파이프다.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파이프다. 파이프는 수원지와 집을 연결해서 흘려보내는 관이다.

파이프 중의 파이프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파이프다. 그 파이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흐른다. 오늘도 저는 예수님을 통해, 흘러내리는 생수를 마신다. 힘과 용기도, 위로와 격려도 예수님을 통해 받는다.

성도는 교회는 파이프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해 가설한 파이프다. 교회의 사명은 흘려보내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들이, 세상에 흘러가길 원하신다. 그리고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계신다.

교회를 통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은혜를 맛보아야 한다. 이렇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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