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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깊이 있는 감사 (고후 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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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매주일이 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감사주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그 중에서도 일년 동안의 우리의 감사를 상징적으로 모아서 표현하는 감사주일입니다. 즐겁고 복된 감사절 아침에 예배드리는 여러분 위에 우리 하나님의 예비하신 놀라우신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달 교회에서 철야기도 중 뇌졸중으로 소천한 충주 추평감리교회 전생수 목사님이 남긴 유언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며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에 관한 미세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주오. 내 삶은 아름다웠고 감사할 뿐이었으니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주기를 바라오.”

전 목사님의 생은 감사와 행복뿐이었습니다. 가난도 행복이었고, 척박한 목회지도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그의 유언장을 보면 하늘에 둔 소망이 무지개 되어 펼쳐 있었습니다. 이 땅의 버거운 삶일지라도 감격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듯이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놓은 재산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산 것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아무런 배경 하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고 적힌 유언장은 행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생은 감사의 순간이었고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떠나는 게 나의 행복입니다.”라는 그의 유언입니다. 결국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맡겨진 소명을 불태웠던 전생수 목사는 유언대로 장기는 기증되었고, 시신은 화장 돼 고향 산야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주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깊이 있는 최고의 감사가 표현되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로, 자기 자신을 드리는 감사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한 리빙스턴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데 그 날 예배의 헌금을 모아서 아프리카에 선교헌금을 드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리빙스턴은 헌금 바구니가 자기 앞에 오니까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자 헌금위원 집사님께서 왜 이러느냐고 물으니 리빙스턴은 자기는 어려서 돈이 없기에 돈 대신에 자기 몸을 감사예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신앙의 씨앗이 되어 아프리카를 선교하는데 귀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산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산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제물의 원형이요, 참모습입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한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구원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우리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죄에 사로잡혀서 사단에 종노릇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속이고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자 진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는 순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완전히 해방 받는 근원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만이 아니라 1년 내내 그리고 우리의 평생을 바쳐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과는 다르게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머리를 쓰고 잔머리를 굴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믿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두 가지 입니다. 승리하는 인생은 첫 번째 두 번째 것만 붙드는 인생입니다. 스티븐 마터번이 쓴 “누가 변화를 꿈꾸는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남자와 바위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당에 있는 덩치 큰 바윗덩어리를 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남자는 몇 주 동안 바위와 씨름 하였습니다. 끙끙거리면서 열심히 밀었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남자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주여, 도대체 무슨 일로 이 일을 시켰습니까? 밀라고 하셔서 몇 주 동안 밀고 있었는데 손톱만큼도 움직이질 않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는 천둥소리 같은 큰 소리가 그 남자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로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에게 돌을 밀라고 했지 움직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 돌을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나 밖에 없다. 네가 준비되었을 때 내가 움직이마. 이제 네 손을 봐라” 양손 모두가 굳은살이 박혀있었습니다. 팔에는 근육이 생겼습니다. 그 동안 헛수고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는 강해졌습니다. 게다가 지혜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는 줄 믿습니다. 쓸모없이 보이던 자가 유익한 자로 몰라보게 새로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되어 하나님이 받으시고, 사용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낮아진 모습으로 순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적을 잃어버린 체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 골프 치러 다니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골프 치러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해놓으면 일주일 전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가 된다고 합니다. 좀 비싸긴 하지만 아주 행복하게 즐긴다고 합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어느 순간에 내기 골프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목적이 망가집니다. 돈 벌기 위해, 또 내기하다 보니깐 지면 기분이 바쁘고, 이기야 되겠는데 이걸 이기려고 하면 욕심에 늪에 빠지고...일본에서는 한 해 골프장에서 130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골프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골프를 통해서 그 무언가 또 다른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 버는 마음으로 도박하는 마음으로 명예를 찾는 마음으로, 허영심으로 목적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신앙생활,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는 목적성에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목적,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 교회에 다니는 목적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하십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깊이 있는 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순종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끝이 있는 감사는 마음을 다한 순종의 제사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자 권사님들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이쁘실 거야!  저렇게들 잘 하는데...” 그걸 들은 어떤 권사님께서 “그 중에서도 누가 제일 이쁘냐?”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권사님께서 “다 똑같이 이쁘실거야!”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다 똑같이 이쁘지 않습니다. 그 주에서도 순종 잘하는 사람이 제일 이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실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가장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1878년 윌리엄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는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한 남자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입대하기 위해서 건너왔습니다. 사무엘 로간 브렝글은 구세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훌륭한 목사의 직분을 그만 뒀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부스 사령관은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부스는 그에게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 왔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로간 브렝글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에게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를 닦은 일을 시켰습니다. 이에 실망한 사무엘 로간 브렝클은 “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나의 꿈을 좇아왔단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발을 씻으려고 엎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물 젖은 눈으로 속삭였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저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사무엘 로간 브렝글이 기꺼이 그리고 사랑스럽게 그들의 더러운 군화를 닦으면서 그 일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열심히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이 들지마는 그는 무식한 어부들의 발을 씻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여 더욱 자신을 채찍질 했다고 합니다. 결국 사무엘 브렝글은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묵묵히 겸손히 순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은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마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죄악의 도성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생각에 ‘왜 하필이면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냐?’ 고 하면서 불평하고 있을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왔습니다. 니느웨로 가기를 거역하고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이배에 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그 배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잔잔하던 바다가 점점 흉흉해졌습니다. 모두가 다 죽게 되었을 때 누구 때문인지 제비뽑기를 합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라 너희가 이 폭풍을 만난 것을 나 때문이라” 결국은 하나님의 물고를 보내셔서 뜻대로 요나를 니느웨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계획이 있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평을 하고 불만족을 표현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거역하는 만큼 안 갈려고 버둥거리는 만큼 그 만큼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순종하시기를 원한다면 철저하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적인 생각과 계획들을 제하고 정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소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구 선생이 상해 임시정부에 있을 때 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으로 쫓겨나 있으니 형편이 넉넉할 리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나이든 노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김구 선생이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그 노모가 배추 국을 아주 맛있게 끓여 놓았습니다. 그는 의아해서 노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께 돈을 드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토록 맛있는 국을 끓이셨습니까?”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시장 바닥에 가서 다른 사람이 필요 없다고 내다버린 시래기를 주워다가 국을 끓였단다.” 그 소리를 들은 김구 선생이 마음이 아파 한 마디 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비록 조국에서 쫓겨나 이렇게 피해 있지만 그대로 한 나라의 주석인데, 주석의 어머니가 남들이 시장 바닥에 버린 것을 주우러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어머니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들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갑자기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 일어나 종아리를 걷지 못할까? 건방지구나 언제부터 그렇게 건방졌느냐?” 고 하시면서 사정없이 아들의 종아리를 내리쳤습니다. “내가 시장 바닥에 가서 남들이 필요 없어서 내다버린 것을 주웠기로서니 그것이 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냐?” 김구 선생이 종아리를 맞고 나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놈아, 울긴 왜 울어!”하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 종아리가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때린 어머니의 팔이 예전처럼 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김구 선생은 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이상으로 훌륭한 분은 바로 그의 어머니셨습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믿음이 신실한 권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들을 믿음으로 키웠는데 늘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너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항상 교회 안에서 살도록 해라.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라!” 그렇습니다. 믿음의 어머니에게서 믿음의 아들이 나왔고, 진정한 애국자와 지도자로서 한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을 빗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보쌈정치, 전두환 정권은 깍두기, 노태우 정권은 물김치, 김영삼 정권은 파김치, 김대중 정권은 나박김치, 그럼 노무현 정권은 무슨 김치이겠습니까? 모든 것이 겉도는 정권이라 겉절이라고 합니다. 김구 선생과 같이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그리울 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참 살기가 힘들었고 경제도 어렵고, 많은 고통이 뒤따른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인줄을 믿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 속에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혼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일들 속에 우리를 품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으신 줄 믿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순종의 제사를 통하여 꿈이 있는 감사를 드리므로 여러분의 모든 삶이 날로 더욱 존귀해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김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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