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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씨가 되는 인생 (막 6: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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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씨가 되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의 일대기를 통해서 그가 어떤 일을 감당했었고 세례 요한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을 한마디로 얘기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길잡이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닦고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가치 있는 일에 봉사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살며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짧은 인생 가운데서 우리가 주를 위해서 얼마나 의미하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했는가,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렇게 오래 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무게로 따질 때는 정말 무게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주실지 모르지만 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도 길이가 아니라 무게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그런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불씨가 되는 인생을 삽시다.

  세례 요한의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종합적으로 살펴보는데
  첫째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큰 기적을 이루기 이전에 작은 기적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탄생했습니다. 그의 출생도 예수님의 출생과 같은 기적이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기적이었습니다. 그 어머니 엘리사벳은 잉태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사실은 세례 요한, 여기에서 딴 John이라는 이름도 서양에서 굉장히 많이 쓰이지 않습니까. 여자 이름 가운데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이 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영국의 여왕 이름도 엘리자베스잖아요. 그 정도로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었던 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 속에서 세례 요한이 탄생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느냐, 세례 요한도 기적적인 탄생이 가능했듯이 이제 장차 오실 메시아도 기적적인 탄생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생조차도 예비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 같은 데를 보면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리아가 믿지 않고 불안해 할 때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36)” 세례 요한의 탄생을 통해서 마리아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확신을 줍니다.

  우리도 이런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신앙과 행동들을 통해서 주변에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격려해 주고 길을 닦는, 이 길을 따라 오라고 만드는 그런 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처음 하는 것이 어렵지 그 다음에 두 번째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처음 하는 지극히 작은 기적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불씨가 되어서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그런 것들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중에서 새벽기도의 불을 당긴 운동들, 경배와 찬양의 붐을 일으켰던 움직임들등등 많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세례 요한 같은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속한 캠퍼스, 여러분이 속한 직장, 여러분의 가정에서 불 붙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 동시에 오순절과 같이 동시에 성령 충만을 주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먼저 한 사람에게 불을 붙이시고 불이 퍼져나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불씨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역에 응답을 하는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씨 된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고 더 축복된 말은 없습니다. 성령의 불씨가 되는 부흥의 불씨가 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씨뿌리는 자가 됩시다.

  두 번째로 세례 요한의 사역에 있어서 우리가 그 다음에 살필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는 사역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일을 닦고 씨를 뿌렸습니다. 세례 요한의 첫 번째 메시는 복음서 앞부분에 보면 다 나오지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한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세례를 증거할 때 세례요한이 강조했던 세례는 물세례였습니다. 그러면서 얘기합니다. 장차 오실 이가 있는데 그는 물과 성령 또는 성령 세례를 준다, 불세례를 준다. 세례 요한의 모든 사역은 예수님의 오실 것을 예표하고 미리 씨 뿌리는 그런 사역들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때에 씨 뿌리는 사람이 있고 또 물 주는 사람이 있고 김 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역할분담이 다 틀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사역의 초기에 씨 뿌리는 일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농사에 과정들이 있다고 하면 씨 뿌리는 사람이 있고 김 매주는 사람이 있고 또 나중에 추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일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따진다고 하면 추수할 때가 제일 재미있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에 얻는 것이 있고 손에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뿌린 것이 없어 가지고 김 맬 것도 없고 뿌린 것이 없어 가지고 거둘 것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가치로 볼 때는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는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씨를 뿌리는 사람에 대한 영광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돕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교회에서 장년들보다 교회학교 어린이가 더 많았습니다. 너무 많아서 지금까지도 그러한 전통이 이어지는데 보통 교회 교세통계를 낼때 장년수만 칩니다. 어린이들은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어린 영혼들을 아직 미숙한 영혼으로 보는 잘못된 신학의 문제도 있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뿌린 씨앗들을 지금 많은 부분 거두고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보면 어릴때 교회 다녔던 사람들이 대부분 다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후배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장년들이 예를 들어서 1000명 정도 모인다고 하면 주일학교 100명도 안되는 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래도 조금 나은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정말 믿음 없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추세로만 따진다고 하면 미래에 교회에 올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미래에 사실 이 추세대로 나간고 하면 반은 실업자입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중심 가지고 뛰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틴에이저에 집중합니다.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더 밑으로 내려가서 우리가 주일학교 학생들……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감당해야 합니다.
  참으로 기대가 되기도 하고 또 감사한 일은 우리교회도 이제 교육에 많은 부분을 집중하고 또 어린 영혼들을 위한 사역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부터 힘을 기울여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저는 사실 이 교회가 이 자리가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유치원 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투자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됩니다.
  어린 영혼들을 향해 많은 관심을 가진 교회가 부흥하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그시절에 잘 훈련받은 영혼들이 지금시대 크게 쓰임받는 모습들을 우리는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나 그런 분은 청년중심으로 대학부부터 시작해 가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
  저는 이제 미래의 우리교회도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 교회학교에 어린 영혼들을 세우고 양설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씨를 뿌리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눈이 떠지고 집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는 씨 뿌리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장은 우리가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어디 멀리 나가서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고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사사기의 암흑시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어린 심령들에게 씨 뿌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교육에 있어서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든 인정을 하지 않든 피곤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씨뿌리는 일에 집중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거두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항상 오늘 뿌리십시오. 오늘도 기도의 씨앗을 뿌리고 전도의 씨앗도 뿌리고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우리가 미래에 대한 준비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뿌리면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세례요한의 지혜를 배우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자기의 자리를 지킵시다.

  또 한 가지 살핀다고 하면 세례 요한은 전반적인 인생에 있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해서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리고 자기 사역을 다 끝내고 난 다음에 거룩한 순교의 자리로 죽지 않습니까? 자기자리를 철저히 지킨 사람입니다.

  저는 세례요한을 바라보면서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기의 위치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있어야 될 데를 아는 사람입니다.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네가 누구냐!’ 할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자기에 대한 identity가 확실하잖아요.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알잖아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될 때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서 있어야 될 때 자리에 안 서 있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안 서있고 간사가 서 있어야 될 자리에 안 서 있고 교역자가 서 있어야 될 자리에 안 서 있고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3류 인생입니다.

  대단한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서있어야 될 자리에 철저히 서 있기만 해도 그것이 능력입니다. 군인은 군인이 서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어야 되고 학생은 학생이 서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80년대에 많이 했던 이야기인데 나라가 제대로 되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목사는 목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있으면 됩니다. 기도의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가 서 있어야 될 자리에 철저히 서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서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종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영성을 이어 받아서 충성 다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겸손한 종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또 하나, 씨 뿌리는 사역이 되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도 불씨가 될 수 있도록, 확산시키는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되게 해 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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