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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의심하였느냐?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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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두 기적 사건을 말해 줍니다. 밤중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위태롭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돕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신 것이 그 하나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물위로 걸은 사건이 다른 하나입니다. 사람이 물 위로 걷다니,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 가운데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보려는 것은 시몬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요. 그러나 시몬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은 것은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오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에서 내려 바다에 발을 내딛었더니 깊이를 알 수 없으리만치 깊은 물이 그를 떠받들어 땅위를 걷듯이 주님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큰일을 가능케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일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 동안 거대한 방주를 지었고 홍수 심판에서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백세에 독자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팔순의 나이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엘리야가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삼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또 그가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렸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믿음으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소와 물만 먹었으나 그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은 동료들보다 더 윤택했습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내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믿음의 위대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체험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설 것입니다(사 40:6-7).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는 끝까지 주님께 당도하지 못하고 그만 중도에서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에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고 했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한 것이 그의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몸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 때 시몬은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배에 함께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지게 된 원인은 그가 바람을 보고 마음에 의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의 마음에 자신이 바다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왜 그의 마음이 의심에 사로잡힌 것일까요?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던 시선을 돌이켜 문제를 보면 의심하는 일이 생깁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어간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주님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바다 위를 담대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의 재리의 유혹과 시련의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우리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고정하고 나아가면 얼마든지 유혹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육상경주에 비유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는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바라보면서 달음질합니다.

만일 다른 선수들이 어디쯤 왔는지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든가 관중석을 쳐다보면서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선수는 우승은커녕 중도에서 실격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푯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푯대가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신앙자세에 대하여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장에 보니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존재입니다. 성도들은 거룩한 무리 곧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세상에 속해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하나님 없이 살던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도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인지,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의식주의 문제는 가장 큰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활의 필요를 위해 신앙생활을 등한히 한다면 그 때부터는 다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산다면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게 될 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도 부족함이 없이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노라면 문제를 만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 것을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일주일 전에 어느 재벌의 딸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명의로 된 재산만 2천억이 되는 젊고 잘 생기고 재능 있는 처녀가 자기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애석함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육신의 욕구를 충족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서 사망에 처하기도 하고,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도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님을 향하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을 그 때에도 여전히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으며 파도가 넘실댔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거센 물결을 밟고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거센 바람과 물결이 베드로의 걸음을 막지 못했으며, 그는 당당하게 바람을 맞으면서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향했던 눈을 돌려 바람을 보자 그만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의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바다 위를 걸어가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줄을 잡고 배에 오르다가 그만 그 줄을 놓친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두고 온 소돔을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던 롯의 처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고,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믿음의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중첩될수록 문제에서 눈을 떼고 주님을 바라보심으로 의심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끝까지 문제를 발로 밟고 전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의심하는 일이 생깁니다.

베드로가 “오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에서 물 위로 내려 선 것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신뢰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밝은 대낮에 풍랑이 일지 않는 상태라면 갈릴리 어부 출신인 그가 얼마든지 바다에 뛰어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인데다 거센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에 내려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그만큼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는 순간 그의 믿음이 여지없이 흔들렸습니다. 갑자기 자기가 물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습니다. ‘내가 물 위를 걷고 있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잘 믿다가도 의심하고 넘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연약한 단계를 뛰어 넘어서 어떠한 시험의 바람이 불어 닥쳐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올바로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 분이 누구신지 온전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물 위를 걸어가면서도 바람을 보자 의심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때로 베드로처럼 행동할 때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한 동안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다가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낙심해서 뒤로 물러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갖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시련과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문제가 전혀 없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이삭과 같은 사람도 여러 가지 큰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저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을거야” 그러나 그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은 무덤밖에 없습니다.

어느 분이 장기려 박사님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박사님, 저는 왜 이렇게 자주 몸이 아픈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장 박사님이 말씀하기를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지요 산 사람이어서 병에 걸리기도 하는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면 백 퍼센트 건강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의 약점을 알고 그 때 그 때 지혜롭게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문제가 있음으로써 얻는 유익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교만을 꺾어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유익하게 선용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시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보니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말씀”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나 인성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중풍병자,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혈루증 앓는 여인, 손 마른 사람 등을 고치셨습니다. 그 어떤 불치의 환자도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 귀신 들린 자들을 온전케 만들어주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자 즉시로 살아났습니다.

나인 성 가까이 가실 때 사람들이 한 청년을 메고 나왔습니다. 그 청년은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이 울며 따르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관에 손을 대어 행렬을 멈추게 하신 후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자가 살아났습니다.

베다니 마을에 살던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 되었으나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게 하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온 몸을 헝겊으로 감싼 채 걸어 나왔습니다. 또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고도 부스러기를 열 두 광주리 가득 거두었습니다. 풍랑을 명하니 바람과 물결이 잠잠해 졌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서를 부지런히 읽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 분을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의지함으로 인생의 풍랑을 너끈히 밟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자기의 판단을 신뢰하면 의심하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의 감각이나 느낌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은 밤중에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여러 시간 풍랑과 싸우느라 지쳤습니다. 배가 뒤집히면 몰사할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하다니, 우리의 판단은 이처럼 전혀 엉뚱한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큰일 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물 위를 걷는 것이지, 바람에 날려 몸의 균형이라도 잃게 되면 물에 빠져 죽을 텐데, 지금은 캄캄한 밤이어서 내가 물에 빠져도 동료들이 건져내지도 못할 텐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뇌리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스쳐갔을 것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그가 바람과 물결을 바라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의 발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라”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가 주님의 말씀을 놓지 않고 붙잡았다면 너끈히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무슨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까?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지 마시고 성도님들을 향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주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판단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할 때 길을 잃지 않고 정도(正道)를 걷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현실이 암담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누가 보았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이 천국이 있음을 증거하기에 우리는 천국을 믿고 소망합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감각이나 느낌에 의존해서 비행기를 조종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계기가 지시하는 바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렇지 않고 조종사가 자기 느낌을 믿고 조종하다가는 추락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비행기의 계기에 해당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의심이 생길 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심이 생길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을 붙들어 악한 자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물속으로 빠져 가면서 베드로는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베드로가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고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전히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믿음을 회복했다는 증거입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는데도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해 주신 덕분입니다. 우리가 도우심을 간구할 때 주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의 응답이 더뎌서 우리가 낭패를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간 것은 성도들이 시험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드는 원인은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깊이 침체의 늪에 빠져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손짓할 때, 재리의 유혹이 다가올 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때, 베드로처럼 소리 질러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요청을 들으시고 즉시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혼자 기도할 수 없거든 ‘내가 시험에 들었다’는 사실을 믿음의 형제들에게 알리기라도 해야 합니다. 내가 시험 든 것을 알려서 믿음의 형제들의 기도의 후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의 불변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비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생활의 원칙으로 삼고 그 말씀을 순종함으로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베드로가 실패한 원인은 한 마디로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믿음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끊임없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모든 시험에서 우리를 건져내셔서 견고한 토대위에 세워 주십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 만난 제자들을 돕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한 능력과 사랑과 관심을 가지시고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관심과 사랑과 능력이 동일하십니다. 그런즉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함으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듣지 않고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는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아무쪼록 믿음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밟고 밥으로 삼고 나아감으로 기어코 합력성선의 결과를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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