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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의 기적 (행 1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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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이 넘치시길빕니다.

  오늘 새벽, 말씀을 준비하다보니 12월 25일 입당을 앞두고 있는 새 성전 본당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이 들어 잠시 들어가 봤더니 천정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모습 이었습니다. 조명도 다 달고 강단에 대리석을 붙이는 일은 진작에 다 끝났고 내부 벽 인테리어도 거의 끝난 듯 합니다. 바닥 공사가 남아있고, 음향, 전기등의 공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근 1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공사가 잘 진행되어 입당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예배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예배당에 많은 성도들이 들어와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가슴이 벅차고 감격스러울 뿐 입니다.

  엊그제 신년주일 예배를 드린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을 향해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월의 흐름 속에 감사의 계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추수 감사절은 그 기원이 근대적으로는 청교도의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이 몇 개월간의 사투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맹수와 싸웠습니다. 그 가운데 첫 농사를 지어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는 이미 감사절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1년의 모든 농사를 마치고 저장하면서 감사하는 수장절이라는 절기를 보냈습니다. 수장절이란 말은 그것을 저장한다는 말입니다. 또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며 한 주간 장막에 거하기 때문에 그것을 장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어떤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나왔는지 우리 자신에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큰 일을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 되었다든지,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취직, 진급을 했다든지 그렇게 큰 일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매일의 일상 생활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걸어서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것,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아침을 먹었다면 그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먹을 수 있는 힘,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력이 있다는 것, 먹을 음식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도 큰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이름을 가진 한 편집장이, 1995년 12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을 빼고는 꼼짝없이 온 몸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말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 중에도 글을 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오직 왼쪽 눈 하나로 말입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알파벳 활자판을 갖다놓고 막대기로 글자 하나 하나를 짚으면 글자 앞의 것을 연결해서 단어를 만들고, 그것을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고 한 페이지를 채워가는 형식으로 글을 써 나갔습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1년 3개월동안 왼쪽 눈을 20만번 깜박거려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생 끝에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침 삼킬 수 있는 것을 감사해 본 적 있으십니까?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고 행복하지 않을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평과 원망의 삶이 아니라, 작은 일, 작은 축복, 작은 변화에도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인격의 사람만이 이웃과 가족과 부모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숙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남이 가진 것에 대해 부러워하며 불평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 가운데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도 감사가 기적이 되는 사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사도바울 일행은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의 집을 기도처소로 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한 점치는 여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종은 귀신들린 여종입니다. 손님의 신상에 대해서 점을 쳐 주고, 돈은 주인이 벌어들였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벌듯이 말입니다. 수입이 괜찮았던 듯 싶습니다. 귀신도 약간의 능력이 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도 몰랐는데, 귀신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저 분이 '메시아'라고 소리쳤습니다.
  점치는 이 귀신들린 여종이 하나님의 종인 사도바울을 알아보았습니다. 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을 보라고! 자꾸 쫓아와서 소리를 치니 귀찮았습니다. 그는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점을 치는 능력이 사라져버렸고,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여종은 하나의 인격체로 회복되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돈벌이가 없어졌습니다.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났습니다.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은 옳지 못한, 불건전한 풍습을 우리에게 퍼트리고 있다, 유태인이다."라고 고소했습니다. 유태인을 미워하는 재판관이 선입견을 가지고, 자세히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바울의 옷을 벗기게 하고 그에게 몹시 매를 치게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니 ‘많이 친 후에’라고 했습니다. 아마 39대는 맞았을 것입니다. 40대는 법으로 금했습니다. 40대 맞으면 죽으니 말입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정신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밤중에 깨어난 바울과 실라는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할 때에 옥문에 열리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오늘 이 바울의 이 놀라운 찬양과 감사가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 또 바울과 실라의 감사는 어떤 종류의 감사였을지 생각하고, 함께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바울과 실라의 감사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드린 감사입니다.

  함께 23절부터 25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아멘.

  바울의 옷을 벗겨놓고 매를 때렸습니다. 지하 감옥 깊은 곳에 가둬두었습니다. 발에는 착고가 채워졌습니다. 착고는 나무판자에 구멍을 내고 양 발을 채우고는 꼼짝 못하게 열쇠로 채워 놓은 것입니다. 맘대로 걷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불편한 자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누가 보기에도 최악의 상황 속에 있습니다. 바울에게 원망의 마음이 없었을까요? “하나님, 내가 여기에 원해서 왔습니까? 드로아에서 성령께서 내 앞 길을 막으셨기 때문에 기도했더니, 성령님이 나를 빌립보로 인도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왔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억울한 맘을 품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분이 끓어오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상황입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떻습니까? 저도 목사지만 억울한 일 당하면 속이 상하고 잠도 안 오고 분이 납니다. 어찌 보면 사도바울도 다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억울해 해야 하고, 원망하고, 저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이 들었을 때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찬미, 감사의 찬양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박국서 3:17에 보면 하박국이 1년 농사를 지었는데 밭에 소출이 없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무성치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밭에 식물도 없고, 감람나무의 소출도 없고, 우리에 양도 없고, 외양간에도 소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줄 수 있는 것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서 그는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감사도 최악의 상황에서 드려진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가 귀합니다. 넉넉해서 건강해서 드리는 감사만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역경 속에서도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 아니겠습니까? 

  지난 번에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최진실씨가 드라마 끝나갈 즈음에 신동아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신동아 11월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자의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는 질문에 최진실씨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자꾸 원망의 기도를 하다보니 나중엔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라구요. ‘이 고통을 남편을 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주셨다면 저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시작한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 다시 손잡아 주시고 최진실에게 희망을 주실꺼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그녀는 감사를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원망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것이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이혼한 남편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청률이 40%에 육박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요즘은 매일매일 하나님이 그의 손을 잡아주시는 것을 늘 체험하며 살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 근처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데 시편과 잠언을 제일 열심히 읽는다고 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찬송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아이들을 재울 때 마다 그 찬송을 불러주니 아이들은 그 노래가 자장가 인줄 안다고 합니다. 전국민이 다 아는 어려움을 겪었던 그녀가 믿음의 생활로 돌아와서 이렇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당하셨을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가 감사로 바뀔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드린 감사가 얼마나 귀한지요.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원망해야 될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울어야 할 때에 기뻐했고, 절망할 시간에 감사의 찬양을 불렀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과 실라의 감사는 어떤 감사였을까요? 기적을 일으킨 감사였습니다.

  26절 말씀을 한번 다시 읽습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아멘
  이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했더니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다 풀어지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놀라운 기적의 조건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감사를 통해서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이 다 풀어지기를, 막혀있는 것들이 다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원인이 됩니다.

  성경에서도 감사는 늘 기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린 5천명의 무리를 앞에 놓고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2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것을 나눠주실 때 5천명의 무리가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축복은 감사로부터 출발합니다.

  다니엘의 감사를 보면,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그를 넘어뜨리고자 사자 굴에 던져 넣으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왕은 거기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다니엘은 집에 돌아와서 왕이 거기에 어인을 찍은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 쪽을 향해서 하루 3번 감사함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그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다 보호받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랑을 왕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재난을 만나서 열 자녀를 다 잃어버리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입술로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고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고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 찌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녀를 축복하셔서 그의 노년에 갑절의 축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릴 때에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침입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싸울 준비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호사밧 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가대를 앞세워서 전쟁에 내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가대를 내보냈습니다. 성가대가 가운을 입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노래하며 나갔더니, 하나님이 숨겨 놓았던 복병을 내보내셔서 모압과 압몬을 한 순간에 궤멸시켜 버리셨습니다.

  감사는 역사 속에서 놀라운 기적의 축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장사가 안 될 때도, 파리만 날릴 때도, 직장에 어려움이 있을 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고난의 원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이 있는 줄로 믿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스펄전목사님이 유명한 말을 하셨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겠어요?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여러분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한 일을 만났을 때 여러분이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되어 집니다. 기적은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감사의 삶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들이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과 실라의 감사는 영혼을 구원한 감사였습니다.

  27절, 28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아멘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니까 아마 간수가 졸다가 깨어난 것 같습니다. 깨보니까 문이 다 열려 있어 이미 죄수들이 도망갔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죄수들이 도망갑니다. 영등포 구치소의 문이 자동으로 한 시간 동안 열려있었다면 도망 안갈 죄수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내일 출소인 사람은 안나가겠지만 많은 사람이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 또 거기 있는 죄수들은 아무도 안 나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수는 다 나간 줄 알고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간수가 죄수를 지키다가 죄수를 잃어버리면 그 죄수들의 형량만큼 간수가 대신 살아야 됩니다. 그러니 그 많은 형량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 때 바울이 “당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소.”라며 말립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번에는 간수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간수는 분명히 사도 바울을 벗겨놓고 매를 친 간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 앞에 너무 놀라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칩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겠습니까?”
  바울은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온 가족을 불러서 말씀을 듣고 세례를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다 싸매주고 약을 발라주고 음식을 잘 준비해서 대접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바울의 감사는 간수와 그 가족을 다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불평하고 원망했다면 옥문도 열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수의 가족은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도 아마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억울함이 있지만 여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다른 곳을 보면 이유 없이 매를 맞으면 자기 로마 시민권을 내 보였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매를 맞아야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고난 속에 있을 때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섭리와 계획이 있는지를 늘 생각하시고 감사할 수 있으셔야 됩니다.

  6.25전에 황해도 어느 마을에 예수님을 잘 믿는 부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부인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만 갔다 오면 핍박하고 때리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때마다 부인은 건넌방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하며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 미워서 더 때렸습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이 남편이 전쟁 중에 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미군이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 보내서 나중에 전쟁 끝나면 북한으로 돌려보낼 사람과 남한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분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전쟁 중에 들으니 자기의 온 가족이 일사후퇴 때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남한에 남아야 했습니다. 자기를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남을 수 있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사람씩 불러다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어보라고 했습니다. 못 외우면 불합격이었습니다.
  이 분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못 외우지만 찬송은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매번 들었으니까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불러서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부인 덕에 석방되고 부인을 만나서 잘 살게 되었습니다. 부인을 그렇게 학대했는데, 부인 덕에 생명을 건질 수 있다니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부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남편의 구원이 되고, 남편을 위기에서 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한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늘 감사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려면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도 내가 예수 믿고 복 받고 은혜 안에 산다는 감사가 있으셔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더더욱 나가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고난당한 것을 생각한다면 전도하다가 창피당하는 것이나 핍박당하는 것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지요.
여러분 마음속에 영혼이 구원받은 죄가 용서받은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나가서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감사를 가지고 나가서 전도할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간증 테이프를 하나 들었는데, 김광욱이라는 젊은 분의 간증입니다.
  생후 7개월 때 아주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전라도 시골에 살았는데, 연탄을 피웠답니다. 어머니가 연탄불을 갈아 넣느라 위의 살아있는 연탄은 밑에 넣고 밑에 다 탄 것은 밖에 갔다놓느라 연탄아궁이를 열어놓았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장난감이 아궁이에 빠졌습니다. 생후 7개월 된 아이가 장난감을 꺼내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곤두박질했습니다. 붉은 연탄불 위에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어머니가 검은 연탄을 가져왔다가 이 아이를 보고 기절해 버렸습니다. 정신이 깨어나서 이 아이를 꺼내서 동네 병원에 가니 이 화상을 치료할 수 없어 광주까지 나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뭉그러졌습니다.

  이 아이가 5살 때 거울을 보고 ‘나는 밖에 나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친구도 안 만나고, 집안에만 있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뒷방에 가서 혼자 있다 나왔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그 얼굴을 가지고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 중학교 입학할 때가 제일 두렵고 힘들었답니다. 중학생 시절 어느 하교길에서는, 여중학생 둘이 지나오다가 자기를 보고 길에서 한 여학생이 기절해 버렸답니다. 어떻게 얼굴이 그럴 수 있는지 자기도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자기를 위해 새벽부터 기도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서 차마 자살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려고 애썼고 조선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취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이 이런데 어떻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느냐고 교사도 안된다고 하고, 학원 강사도 안 되고,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공사장에 갔더니 얼굴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2년 동안 700번 원서를 냈는데 700번 낙방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어느 성경 공부에 참가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화상당한 것까지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가정교사가 되서 영어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간증을 써서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수필집을 발간해서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고, 교회마다 다니면서 간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처음 간증을 했는데, 몇 달 동안 교회에 안나왔던 젊은이가 그 간증을 듣고는 열심히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 같은 사람도 쓸데가 있구나!’하며 도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자살 하려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와 통화하고난 이후에 그 사람이 자살을 포기하고 살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합니다. ‘아 내가  이유가 있구나! 나같이 못난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은혜를 줄 수 있다니’ 그래서 그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화상 당한 것을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주의 은혜안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조금 부족해도 조금 뭐가 안돼도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가던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서 정말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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