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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생명이 보전되었도다 (창 3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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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년 전에 야곱은 에서와 헤어져야 했습니다.  그 때 헤어지게 된 이유는 야곱이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축복에 무관심했던 에서는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내려지는 축복이 야곱에게 빼앗기게 되자 분노한 나머지 야곱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27:41). 이것을 알게 된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가 누그러질 때까지 외삼촌 집에 가 있으라고 하였고 그리하여 급기야 야곱은 에서의 적대감을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치듯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했던 기간이 벌써 20년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종살이로 전전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을 이루었고 또한 거부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에 일이었습니다. 비록 아무도 반겨줄 사람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도 고향으로 귀환하는 야곱의 길을 하나님의 군대인 사자를 보내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2).  그러나 야곱에게 있어서 20년만의 귀향은 그리 감격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20년 전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 야곱 때문에 분노를 해야만 했던 에서의 감정은 아직 풀어지지 않고 여전히 에서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길에는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은 서둘러서 에서와의 화해의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 때 에서는 사해 바다 남쪽 세일 땅에 있었습니다.  에서와의 화해가 급선무였던 야곱은 사람들을 보내어 에서와의 화해를 시도합니다. 본장 4-5절에는 그 사실에 대하여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빨리 갈 수가 없어서 먼저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에서에게 화해를 위해 보냈던 사람들은 도리어 나쁜 소식을 가지고 왔고, 야곱과 에서와의 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돌변합니다. 그 원인은 에서가 야곱을 향하여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상황은 야곱이 가장 염려했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에서가 이끌고 있는 400인 즉 군대는 본장 2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군대와 대조됩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가 거느린 400인은 대조될 수도 없고, 대조를 한다고 할지라도 사실상 비교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하자면, 하나님의 군대는 야곱을 지키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에서가 거느린 400명의 군대는 야곱을 죽이려는 목적을 가진 군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본장에서 야곱과 에서의 긴장관계가 단순히 인간적인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간의 대치상황으로 커졌음을 의미합니다.

2. 그러나 두 군대의 대치 속에서 야곱을 더 두렵게 한 것은 에서의 군대였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창세기 31:3절에서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귀향의 길에는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의 귀향길을 축하해 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자신이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셔서 야곱과 함께 하시고 계심을 야곱이 잊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 것을 야곱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직도 에서와의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야곱의 처음 모습은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야곱은 살기 위하여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의 방법은 너무도 치밀하여 평소의 그의 약삭빠른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수단으로 무엇을 하려하는 간사함이 여실히 나타난 것입니다.  본장 7-8절에는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하였다고 증거 합니다.

물론 그 다음 야곱의 행동 속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본장 9절 이하에 보면,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 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 하는 것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기도는 전형적으로 주님의 언약하심과 그의 성실하심에 근거해서 간구한 것입니다(9-12절). 즉 하나님께서 가라 명령하셨으며,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해 주시리라고 하셨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셔서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이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야곱의 행동이 그런 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취한 야곱의 행동은 결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앞으로 닥치게 될 절박한 위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방법은 너무도 치밀하여 한쪽을 치더라도 한쪽만은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잠시 그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모습에서는 일관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서 그는 확실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 후에 야곱의 행동은 여전히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적인 계획을 더욱더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실제로 야곱이 에서를 맞이하기 위하여 더욱더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사실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야곱이 가족을 두 떼로 나누었는데, 그것도 부족하여 에서의 감정이 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 공세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그 동안 밧단 아람에서 고생하며 얻었던 짐승 중에서 예물을 골라내어 그것을 세 때로 나누어 일정거리를 유지하도록 하게 합니다. 그것은 혹시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오다가 양떼를 보고 그 양떼가 뉘 것이냐고  묻게 되면, 야곱이 형인 에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야곱의 행동의 결과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야곱에게 은혜를 주셨고, 그가 잠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야곱은 야곱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에서의 적대감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인간적인 방법은 사실상 실패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그가 에서의 적대감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밤중에 가족들과 모든 가축들을 먼저 강을 건너게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야곱이 가족들과 가축들을 한 밤중에라도 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이 홀로 남게 된 것은 야곱이 에서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인간적인 방법이 실패했다고 한 것입니다.

3. 그런데 야곱의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20년 전에 밧단 아람으로 떠날 때에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밧단아람에서도 야곱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심으로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야곱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군대를 보내셔서 야곱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이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에서의 군대 앞에서 온갖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곱을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야곱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야곱의 씨름은 날이 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일부에서는 여기서 야곱이 했다는 ‘씨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의 씨름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야곱의 씨름은 곧 기도 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홀로 남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24). 야곱의 씨름을 기도라고 한 것이 옳은 것인지는 성경이 증거 합니다. 호세아 12:3,4절에는 ‘씨름’을 울며 기도하는 것으로 정의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하였습니다.  결국 야곱의 씨름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본다면 야곱은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붙잡고 축복을 줄 때까지 놔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 하기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였고 호세아서는 울며 기도했다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씨름을 한 것 곧 기도한 것을 야곱의 기도의 승리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돋보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천사와의 씨름에서 야곱이 이기었다고 인정을 받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그것은 야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기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지심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심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길 수 있었으나 이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야곱을 이기도록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길 수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환도뼈만 치시고 오히려 야곱을 이기게 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평생 육신에 새기며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인간적인 모습이 남아 있는 야곱에게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오직 구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으로 약속하셨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 후에 야곱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께 크신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붙잡고 놔 주지 아니했던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셨음을 후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는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0)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그러한 고백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내 생명이 보전된 것처럼 적대감으로 가득 찬 에서를 대면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시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4.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직도 말로만 믿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멈춰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보다 인간의 의지를 더 앞세우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우리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되어졌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과거 두려움과 곤경에 처해 있는 야곱을 찾아오심으로 그와 씨름하심으로 야곱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어두움 가운데서 건지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심으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진정으로 매달려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우리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부요함으로 나타납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매달리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매달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날마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갈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위재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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