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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처럼 진지하게 전도하자 (요 4: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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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인류의 희망이십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십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4장에서는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희망이 되셨습니다. 그녀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만족함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낮 12시에 물을 길러 우물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일행은 유대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마을에 가고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때 그 여인이 물을 길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가 ‘제6시쯤’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낮 12시를 가리킵니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입니다. 보통 여인들은 그 시간에 물을 길러 오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의 낯을 피하여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러 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살았던 것은 그녀의 행실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는데 그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가 남편이 없다고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 여인은 외톨이가 될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행실을 바르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채워지지 않은 영적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만족함이 없는 여인,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쾌락으로 채워보려고 했지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어 보았지만 그 갈증은 채울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그 어느 것으로도 영적 갈증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체험하고 큰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러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라고 외쳤습니다(28절). 그녀는 분명히 변했습니다. 내적 충만함을 얻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녀는 군중 앞에 나서지 못하던 여인이었으나 확실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희망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한 여인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전도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주님을 배우고 힘써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십시다.

첫째, 예수님은 모든 기회를 전도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여인에게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는 상황에서 전도의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물을 가지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전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7절에서 14절까지 이어지는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보십시오.

예수님 : 물을 좀 달라
여 인 :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나이까?
예수님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여 인 :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니까?
예수님 :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물을 얻어 마시는 순간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전도하셨습니다. 전도할 기회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전도의 기회를 삼으면 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장사하면서 만나는 분들에게 전도하면 됩니다. 직장에 나가시는 분들은 직장에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노방전도, 축도전도도 좋습니다. 그러나 삶의 전 순간을 전도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감리교 성도 중에 덴만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미국 감리교회에서 선교부 총무를 맡아 일을 했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한국에 왔는데 보니 손목에 시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이대 다락방에서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이 돈을 모아 시계를 사서 선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보니 또 시계가 없더랍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시계가 꼭 필요할 텐데 왜 시계를 차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아주 감동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시계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계가 없으면 옆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화를 시도하고 전도할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이런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부정적인 반응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 하셨을 때, 그녀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여인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습니다. 결코 부드러운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깊은 갈등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골이 깊은 갈등입니다. 수백 년이 지났어도 시들지 않는 갈등입니다. 그러니 여인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거절과 부정적인 반응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물러서지 마십시오. 물론 싸울 듯이 불쾌한 반응을 보여도 안 됩니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대문을 열어 놓고 ‘어서 오십시오’ 할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도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빈정거리고, 비판합니다. 친절하게 웃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믿는 사람들이지요, 정말이지 전도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물러서지 마십시오. 예수님처럼 친절하게 밀고 나가십시오.

셋째, 예수님은 사명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것을 알리려고 동리로 달려갔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음식 잡숫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식을 잡수시지 않고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만큼 주어진 사명에 집중하셨습니다. 34절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전도의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전도에 미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체질이 변해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나눔과 섬김은 간접전도로서 구원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영혼 구원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도 전도의 사명에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미국의 전도자 무어는 하루에 한 사람은 전도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그 날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잠을 자려고 했지만 죄책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전도하러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한밤중이라 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골목 저 걸목으로 돌아다니며 전도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무디는 한참을 찾아다니다가 한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무디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다짜고짜 “예수님을 아십니까?”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술에 취한 사람이 벌컥 화를 내며 달려들어 무디는 쫓기듯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무디의 집으로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예수님을 아십니까 라는 말을 듣고 무척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그 말이 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무디의 열심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종말 의식을 갖고 긴급함으로 전도했습니다.

3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말은 밀농사의 추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밀농사의 추수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적 추수에 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문서답 같지만 전도에 열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영적 추수는 결코 미룰 수 없는 긴급한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영적 추수는 늦출 수 없습니다. 미룰 수 없습니다. 오늘 바로 전도해야 합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종말 의식을 갖고 긴급함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하루는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토레이 박사가 영국 브라이튼에서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어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종업원이 음식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데 ‘저 종업원에게 전도를 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전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계속해서 빨리 전도하라고 몰아치셨습니다. 그래서 토레이 박사는 ‘나중에 꼭 전도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전도를 미루었습니다.

그는 전도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성령님은 계속해서 전도하라고 강권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문을 닫고는 그냥 나왔습니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주인은 금방 알아보고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토레이 박사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던 아이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그 아이는 토레이 박사가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가 서성거리고 있는 사이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약을 먹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토레이박사는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죽였구나. 성령님이 그토록 강권하여 전도하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명령을 무시하여 그 아이를 무시하여 그 아이를 죽게 하였구나.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그 아이를 살리려고 성령님께서 나를 그 식당으로 보내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도합시다. 우리 주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다. 지금도 손만 대면 딸 수 있는 곡식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씨 뿌림으로, 누군가가 기도함으로 거둘 수 있는 준비된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37절의 말씀,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잘 익는 과일처럼 잘 삶아진 고구마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준비된 영혼을 거두어야 합니다. 시기를 놓쳐서 잘 익은 곡식이 땅에 떨어져 썩게 만든다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지금 거두러 나갑시다. 이 영적 추수에 온 성도가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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