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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여호와께 감사하라(2) (시 13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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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려보는 주일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말하기를, “가장 어려운 수학문제는 감사를 세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는 26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존경스런 분입니다.

10절-11절입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으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해방시켜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나라도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931번의 침략을 당해야 했습니다. 대륙세와 대양세 사이에 껴서 한 때도 평안할 날이 없을 정도로 수난의 역사를 살아야 했습니다. 임진왜란과 같은 큼직큼직한 외침도 10번 이상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과 불평보다는 이렇게 감사절을 지키는 나라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사람”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아마도 사람을 중요시 하는 유교문화의 특색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 2인칭에 대한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라는 제2인칭은 자기 아내나 기분 나쁠 때에 상대방에게 사용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교해서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감사합니다(thank you)"와 “미안합니다(excuse)"라고 합니다. "Thank you"라는 말은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습득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복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뱅그라데시는 ”감사”라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본에 36년간 통치를 당하면서 ‘정신대’, ‘731부대’, ‘징용‘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출애굽이란 정치적인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구속사건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서 재앙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흐리심으로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죄와 죽음은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 원수로부터 해방되었으니 당연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금년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더욱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도 받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얻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상속권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국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음식을 사먹을 돈이 없어서 갑판위에 올라가서 비스킷에 치즈를 발라 먹었습니다. 두 주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느 신사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식사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배를 탈 때에 이미 배 값에 식사비가 다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하루 후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비싼 비행기를 타고가면 밥도 나오고 음료수도 줍니다. 이미 비행기 값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16절입니다.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의 광야생활에서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광야는 이전처럼 여전히 불모의 땅이었으나 결국 그들은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에도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 해일”, 미국에서 일어난 “”카트리나 태풍“,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조류독감입니다. 가까운 중국에서 환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조류독감의 위협 앞에서 인류가 떨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이 죽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독감으로 인하여 평균수명이 13년이나 감소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독감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미국 부시대통령은 조류독감 예방책으로 71억불의 예산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광야와 같은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던 워터폰 목사님이 목회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장로님이, “목사님,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교회를 오는 길에 마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마차가 박살이 났는데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다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이 말을 듣던 목사님은, “저는 장로님보다 더 갑절이나 감사해야합니다”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눈이 번쩍하여, “무슨 큰 사고 중에 보호를 받으셨나요?”  “저는 그 비탈길을 일년이면 수백 번 마차를 타고 그 길을  다녔는데도 한 번 사고도 없이 무사히 다녔으니 장로님보다 더 갑절로 감사해야지요”라고 목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것만 기적으로 알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고 없이 지켜주신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주석가 매튜 헨리 목사님이 어느 날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놀랬습니다. 목사님은 태연하게 기도실로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세 가지로 감사했다고 합니다. 첫째, 돈만 빼앗기고 상처만 입었을 뿐 생명을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둘째, 남을 해치는 강도와 같은 사람으로 살지 않고 목사로 남을 도우며 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셋째, 이 골목길을 수없이 많이 지나다녔건만 그동안 한번도 사고 나지 않도록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 식구들을 지켜주시고 건강한 몸으로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23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념할 만한 삶으로 인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천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유케 됨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과거를 뒤돌아보면 비천한 삶을 살았습니다. 육이오전쟁 후에 우리는 외국에서 들어온 구제품을 받아먹고 살았습니다. 옥수수와 밀가루, 그리고 가루우유를 받아먹었습니다. 요즘 조류독감으로 인하여 날계란을 먹지 말고 삶은 계란을 먹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전에 삶은 계란을 먹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전에는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할 때에야 삶은 계란을 먹었습니다. 어쩌다 알사탕 하나라도 생기면 입에 물고 뱅뱅 돌리면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입안이 당분으로 절어서 오돌토돌해집니다. 이렇게 입안이 헐어 아려오면 반대쪽으로 사탕을 옮깁니다.  누가 껌이라도 하나 줘서 얻게 되면 하루 종일 씹다가 저녁이 되어 잘려면 그것을 책상에 붙여두었다가 아침에 다시 떼어 씹었습니다. 가끔 누나의 것과 바뀌어져서 씹었으나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과거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 12위에 드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념할만한 삶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80년대 초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 김 장로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집이 엄청나게 큰  저택에서 사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 10년이 넘게 목회를 하다보니 교포의 수준이 높아져 보통 40대 나이의 교인들이 궁궐과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미국 돈으로 100만 불 가까운 집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한국에 와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은 100만 불도 더 되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100만 불이면 우리 돈으로 10억 원 정도입니다. 우리 교인들 절반 이상이 그런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놀라지도 않고 삽니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백만장자가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우리들 모두 비천한 자리에서 기념할 만큼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시합시다.

26절입니다. “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이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까마귀와 참새를 먹이시는 그분은 지극히 높은 곳의 영화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 천사들은 모든 천상거리에서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을 자신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루터는 “마귀의 세계엔 감사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를 빼면 바로 지옥으로 변한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청교도 목사님이 주일 날 주보에 “가장 무서운 죄”라는 제목의 설교를 기재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추측하기를, “하나님 안 믿는 죄”,“우상 숭배하는 죄”, “성령을 모독한 죄”, “자살”, “살인”, 등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내용은 “감사치 않는 죄”였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은 “감사가 없는 마음은 온갖 죄악과 불행이 자라는 옥토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불행해 지는 것도 감사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주부가 남편을 사가라고 광고를 냈습니다. 왜? 주말이 되면 가족과 함께하지 않고 주말 골프를 치러가고, 사냥을 하러 나갔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사냥도구와 골프채, 그리고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줌.”  광고를 보고 전화가 오는데 주로 충고성 전화였다고 합니다. 어느 과부는,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히 여겨라.” 어느 주부는, “남편이 바람 안 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라.” 어느 주부는, “집에 앉아서 바가지 긁는 것 보다 오히려 나가서 골프치고 사냥하는 편이 낫다.” 어느 주부는, “남편은 말고 개만 살수는 없느냐?”였습니다.

여러분, 있는 대로 감사하시고 처한 형편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자매가 기도만 하면 눈물이요 신세타려이었습니다. 결혼한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남편은 교회는커녕 술만 마시고 통행금지 5분전에 들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날 목사님이 설교하시기를 “감사 기도해야 응답을 받느니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려는데 자꾸 그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감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기를 “감사할 것이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 합니다”하고 기도하니, 감사할 것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도 남편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 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런 남편이라도 옆에 있어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하고 나니 또 감사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셔도 남의 집에 가는 적이 없이 꼭 자기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내 집 찾아오니 감사합니다.”  서울에 교통사고가 많아도 술 먹고 한번도 사고 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남편 교통사고 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꼭 토요일이면 술을 마시고 와서 주일날 12시까지 자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 교회 다녀오는 사이에 집 잘 지켜주어 감사합니다.” 남편이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부인이 기도하는데 이날은 웬일인지 신세타령을 하지 않고 감사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눈을 떠서, “왜 히죽히죽 웃는 거야?”했습니다.  사실은 자는척하면서 다 기도내용을 들었거든요. 부인이, “사실은 당신과 같은 좋은 남편 주어 감사했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한단 말이, “예수 믿어 줄께!”하더랍니다.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10년간 신세타령하면서 기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는데 감사기도 한번 했더니 하나님이 단번에 들어주시더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 워싱턴에 사는 로버트 브라운이 150만 불(약 15억)을 죠지아의 안데르센빌 감리교회에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여름 휴가차 죠지아를 지나다가 주일날이 되어 안데르센빌 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안내하시는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었던지 그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 너무 극진한 대접을 해주어 너누 고마워서 유산을 정리하면서 그 교회에 거금을 헌금한 것입니다. 물론 안데르센빌 교회의 담임목사님인 스탠포드 목사님과 교인들은 전혀 기억을 못하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모든 방문객에게 똑같은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버트 브라운 씨에게는 일생 잊지 못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베푸는 친절과 사랑에도 이렇게 감동을 주거늘 우리가 정성스런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금년 한해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가 26가지를 감사했다면 여러분에게는 30가지, 50가지 100가지의 감사가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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