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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로로 인도하는 마음 (잠 23: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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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 수능시험>이 막 끝났습니다. 작년에 하도 시끄러웠던 터라 올해는 시험장에 휴대폰을 가지고 입장하면 퇴실시킨다고 그렇게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을 소지하고 입실했다가 시험도 못보고 집으로 돌아간 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생각이 문제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면 되는 것을 굳이 고집을 부리다가 장래를 망치는 경우를 보면 참 희한하게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됩니다. 예로부터“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모든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은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마음과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도 늘 만나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이 궁금합니다.‘정말 날 사랑하는 걸까?’,‘얼마나 사랑하는 걸까?’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한 것입니다. 아리송하고 알기가 어렵지만 그리도 궁금한 것은 그 마음의 생각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곧 생각이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기도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마음의 생각을 따라 각각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육체에만 머물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생각하며 눈만 뜨면 종일 이 고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머리로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세상 살아가는 방식은 언제나 계산적입니다.‘내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게 유익이 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만 골똘히 생각하고 연구하며 삽니다.‘이래야만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가더라도 나의 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찾아보자’합니다. 이 세상에 이런 두 종류의 사람들만 있다면 아마 세상사는 것이 얼마나 살벌하고 피차가 피곤하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각박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소망을 줍니다. 그 소망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하늘을 품고 가슴으로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생각해보세요. 내 인물이 남습니까? 아무리 잘 생긴 사람도 죽으면 끝입니다. 아니면 죽은 후에 비석을 세워놓는 것이 영원히 남는 것입니까? 내 육체는 썩어서 이미 흙이 되었는데 그깟 돌덩이 하나가 무엇이 대숩니까? 결국 그 사람의 사상, 그 사람의 생각 즉 그 사람의 마음이 세월이 흘러도 길이 남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또한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그 미래가 결정되어 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형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불평이나 원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사고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생각>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늘 우울합니다. 어둡습니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입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테러리스트들이 되고 맙니다.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잘못 된 생각은 빨리 버려야합니다.

잘못 된 것을 부여잡고 버리지 못하는 고집, 이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현대는 얼마나 자기생각이 분명한 시대인지 모릅니다. 자기생각이 한 군데로 굳어지면 끝까지 우겨댑니다. 그래서 가끔씩 대책 없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남들이 어린아이의 엉덩이에 있는 퍼런 점을 보고<몽고반점>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것은 중국 음식점 이름이라고 우기는 사람, 이걸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L.A와 Los Angeles가 다른 도시라고 우기는 사람,<으악 새>가 새의 이름이라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 사전에 찾아보면<억새>의 방언이라고 되어있지요? 그런데“으악 새는 새 이름”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 이 사람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또 컴퓨터 바이러스가 몸에도 전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참으로 대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헛 똑똑이 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기는 싫은 겁니다. 현대인의모습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본능대로만 살지 아니하고 본능을 제어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 짐승은 본능을<제어>하거나<조종>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생각이 없이 본능대로만 살면 짐승에 지나지 않습니다. 까치는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이 집을 짓습니다. 까치집이 달라지는 것 봤습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생각하고 연구해서 짓는 집이 아니라 본능대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짓는 집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집들이 지어져갑니까? 생각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특권 중 하나가 생각하는 지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하는 데 따라서 그 사람이 달라집니다. 잠언23:7에 뭐라고 합니까?“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그랬습니다. 그 마음에 따라서 사람됨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하면 선한 사람이요, 마음이 악하면 악한 사람입니다. 시편 39편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다시 말하면 깊이 생각할 때에 불이 붙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오랫동안 깊이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불이 붙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니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좋은 생각도 그렇고 나쁜 생각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십니까? 생각은 알과 같습니다. 비둘기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귀여운 비둘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독사의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지막에는 독사 새끼가 나옵니다.

[클레멘트 스톤]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습니다.<마음의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와서 이른바<양심혁명, 혹은 의식혁명(Revolution of Consciousness)>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어디로 향하여야하겠습니까? 우리 마음과 생각에는 어떤 혁명이 필요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숱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만 그 많은 생각들을 신앙적인 측면으로 정리해보면 결국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아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특성입니다. 땅에 속한 생각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분한 생각과 남을 미워하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과 파괴하는 생각, 그리고 시기하는 생각, 이런 것들이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특히 예부터 우리민족들에게 남달랐던 그래서“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까지 만들어 냈던 남을 시기하는 마음은 땅에 속한 대표적인 생각입니다.“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감정”을 한자어로는<승기자염(勝己者厭)>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교만, 이기주의, 열등감 같은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꾸 그 생각에 머물러 있어 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속성이 하나 있습니다. 먼 사람이 잘 되면 시기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잘 되면 배가 아픕니다. 십촌 이 십촌이 밭을 사는 건 괜찮아요. 사든 말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파요. 이것이 땅에 속한 나쁜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인들에게도 묘한 심리가 작용합니다. 다른 교회 교인이 잘되었다 하더라 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같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잘 되었다 하면 괜히 시비 걸고 못마땅해 하고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거 요상한 심보거든요. 이런 마음은 오늘 성경에 보니까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땅의 생각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이 머물러야 할 곳도 아울러 말해 줍니다. 17절이 그 말씀인데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이 머물러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항상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로 모든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불가입성의 원리(不加入性의 原理)>라는 것이 있습니다.“한 공간에 두 물체가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를 말합니다. 빈 병 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내보내려면 맑은 물을 병 안에 가득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기는 밀려나가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더러운 생각, 깨끗하지 못한 마음은 자연히 밀려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히 땅엣 것은 밀려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한 공간에 두 가지가 존재할 수 없는”<신앙적 불가입성의 원리(信仰的 不加入性의 原理)>입니다.

오늘 성경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마음의 생각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의 생각이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도 보시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을 보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생각의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까지 살피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생각이 올바르고 마음이 온전해서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생각이 잘못된 데 머무르고 마음이 악한 곳에 있어서 망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후회하는 일들 속에는 언제나 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내가 생각이 부족했다.”혹은“내 생각이 짧았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이처럼 잘못 된 마음과 온전치 못한 생각은 평생의 후회를 남기기도 합니다. 시작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극단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 마음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며 사십니까? 진정 우리의 생각이 거듭났습니까? 혹시 그 동안 너무 세상 것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잠언23:19절의 말씀처럼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를 얻어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이 정로(正路)로 인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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