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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지렁이의 감사 (사 4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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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들은 범사에 감사한다. 세 가지 범주 안에서 감사가 넘친다.

● 구속함을 얻은 감격은 감사를 넘치게 한다.
죄에서 구속, 사건에서의 구원, 위기 상황에서의 구원, 불치병에서의 구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 창조 신앙에서 오는 감격도 감사를 넘치게 한다.
아무 사건이나 위기를 만나지 않았어도 삶의 일상이 지나가는 것, 모든 범사가 자기 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 이것도 감사할 일이다. 아니 위기조차 만나지 않았으니 더 감사할 일이다.

● 섭리를 느끼는데서 오는 감격도 감사를 넘치게 한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성취하심을 느끼는 것, 참 감사할 일이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힘들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앙할 때 슬픔도 기쁨이 되고 절망도 감사의 이유가 된다.
그러고보면 크리스챤이란 만족 의식으로 사는 사람이요 감사 충만으로 사는 사람이다. 감사할 수 없다면 하나님과 무엇인가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감사절을 위해 묵상하다가 화장실에서 은혜를 받았다. 오목천교회에 처음 부임하던 해 오목천교회는 변소가 가마니 변소였다. 땅을 파고 소변통 고무 그릇을 파뭇고 하늘이 보이도록 가마니를 쳐놓은 변소였다. 그런데 새 성전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마니 변소가 타일을 붙히고 양변기를 놓은 변소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가마니 변소를 사용할 때도 즐거웠다. 지금 수세식 변소를 사용하는 것도 즐겁고 감사하다. 더 좋은 예배당이냐, 아니냐 그것 때문에 감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변했구나!' 하는 이 변화의 느낌이 밀고 들어올 때, 바뀌었다는 감정이 민물처럼 밀고 들어올 때 감사했다는 말이다. 감사는 생각남에서 오는 것 같다. Thank나 Think나 비슷하지 않은가?

사41:15 말씀이 생각났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성령께서 금년 추수 감사의 이유를 말씀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오목천교회가 2004년 3월에 시작한 교회 건축은 너무나도 사41:15의 이 말씀의 내용처럼 되었다.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성도들이 새 타작 기계처럼 쓰여졌다. 그러다보니 변화가 일어나고 조경을 위한 나무까지 심게 된 것이다.

첫째, 눈에 보이는 지도 지형이 바뀌었다. (사41:15)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 되게 하고 작은 산들을 쳐서 겨 같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오목천동의 산들이 부스러기가 되고 겨 같이 되었다. 오목천동 314-6번지에서 여기 356번지로 이사오고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보라, 옛날의 지형과 지물 지세가 다 부스러기처럼, 겨처럼 파헤쳐 사라지고 도시의 구획선이 지적도가 바뀌었다. 여기 공장 단지의 어지러움과 타일이 깨어진 조각과 모든 분진들은 다 철거되고 임시 예배당으로 쓰던 스레트 건물만 남아있다. 점점 바뀌어 가는 이 자리는 약속의 땅이 축복의 땅, 예배와 찬송을 부르는 거룩한 땅이 되었다.

옛날 314-6번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완전히 논이 바뀌어 길이 나고 도로 밑으로 내려 앉아있던 전답은 학교가 지어지고 있다. 교회 자리는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가 세워져 입주의 날을 한 달 남겨두고 공사가 마무리 중이다. 이 아파트가 지도를 바꾸는데 대로에서 아파트 건설지까지 소방 도로가 연결되니까 다른 아파트 회사가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조 아파트, 남광 아파트 등 다른 회사들도 건축 처가를 통해 더 큰 지형의 변화를 만들었다.

아파트 회사는 돈 벌기 위해 이곳에 몰려들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는 눈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지렁이 같은 우리들을 사용하시어 지도를 바꾸는 일을 직접 보여주셨다. 교회가 지도를 바꾸고 오목천을 바꾸고 사람 사는 동네로 새롭게 바꾸는 선봉이 되게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야 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만사의 사건을 놓고 사람이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그 뜻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가도록 사람에게 역사했다고 믿는다. 그것이 참 신앙이다.
오목천의 지도가 바뀌는 것은 계속해서 봉담, 와우리, 수영리, 서수원 일대를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가 약한 지렁이들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갈 때 이런 지도가 바뀌는 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약한 지렁이 같은 우리가 지도를 바꾼다.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둘째,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의 지도도 바뀌었다.
교회 건축을 이루시는 하나님, 보이는 사물들의 지도를 바꾸어 놓는 이 역사 앞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신뢰한다. 지렁이같이 약한 우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나약한 사고 방식의 믿음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쓰시든지 그것을 믿는다.
사41:15에 '삼으리니'란 말이 있고 '만들 것이며'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약한 지렁이도 타작 기계로 삼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무능한 사람도 산을 쳐서 부스러기 되게 하는 유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믿는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해서 못할 것 같은 교회 건축, 땅을 사느라고 땅 값 지불도 다 못해서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것과 같은 교회의 사역, 그러나 여기 하나님이 삼으시고 만들어 주셨기에 계란으로 바위를 깨버린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변화와 성취를 가능케 하는 하나님을 믿고 용기를 더 크게 낸다. 우리는 교회 건축을 통해 이 복을 받았다. 건물이 생겨서 좋고 분명하게 보이는 외관상의 환경만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의 지도가 바뀌었다는 점 때문이다.
두려움에서 담대한 신앙으로 바뀌었다.
부정적인데서 긍정적인 신앙의 바뀌었다.
숨고 은닉하는데서 적극적으로 나타나며 참여하는 신앙으로, 계산하고 따지는데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는 신앙으로, 교회에 대한 무관심한 자세에서 관심을 쏟아 붓고 싶은 신앙으로 변화되었다. 신앙의 색깔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이 변화되는 신앙의 향상, 신앙의 충만함이 성도들의 중심에 넘치는 것을 믿는다. 내면의 변화란 보이지 않아서 통계로 측정할 수 없지만 여러분의 언행과 순종과 감사와 교회로 달려오는 걸음을 볼 때 확신한다. 새로 나온 성도가 말하길 발전하는 오목천교회로 달려오면 같이 뜨겁고 성숙해질 것 같아서 왔다고 한다. 교회로 오는 걸음이 다르다.

셋째,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할 일이 생겼다. (사41:16)
산과 작은 산은 날아가 버리고 흩어져 버리는 겨와 부스러기같은 인생이 맞붙어 싸워야 할 적과 장애물은 허다하게 많지만 그 모든 장애물이 다 흩어져 버린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이 가로막아서 주저 앉을 일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기뻐한다. 즐거워한다. 하나님 여호와의 그 놀라우신 섭리와 역사 앞에 즐거워한다.
사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그 역사하시는 약속은 세 가지이다.

●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사41:10)

● 종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다. (사41:9)
사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스라엘은 종으로 불리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붙들어주면 강하게 된다. 붙들어주면 잘하게 된다. 장애인들이 연주를 하는데 뇌성장애인들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추는지 놀라움으로 보니까 장애인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손을 붙잡아서 함께 연주를 하였다. 붙잡아 주니까 리듬과 음정을 정확하게 연주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붙들어 주기에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면 두려워할 것, 겁낼 것이 무엇 있겠는가? 약해질 필요가 없다.

● 종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다. (사41:10)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하나님이 도와주면 모자라는 속에서도 채워진다. 지혜가 모자라고 건강이 모자라도 돕는 지원이 있으면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돕는 분이 하나님이다. 도와주는 이가 잘못 도와주면 오히려 문제가 더 많이 생긴다. 골치 아플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시게 그 도움은 완전하다. 두려운 일도, 놀라운 일도 해결되도록 도와주신다.

건축 예산이 없고 -17억에서 시작한 토목 공사이지만 하나님의 도와주심은 우리 교회를 굳건하게 해 주셨다. 지난주 잘 아는 목사님이 오셨는데 돈을 얼마나 비축했느냐고 -에서 -로 시작했다고 하니까 믿지를 않는다. 보면서도 믿지를 않고 집에 가서 전화하더니 꿈같은 이야기라고 한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 더구나 새로운 집이 완성되기 전에 불이 났다. 그러나 5분 안에 소화되도록 소방차가 출동하고 소방 호수를 크레인이 공사하다가 들어서 옥상으로 올려주고 눈 깜짝할 사이에 타오르는 불길을 진압하여 오늘 이렇게 준공을 앞두고 있다. 도와주리라는 약속대로 역사하신 하나님을 본다. 꿈같은 방법으로 도와주셨다. 그러니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증거를 성경 속에서 찾아보았다.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 건축 사역 속에서 보았다.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우리를 붙잡아 주고 도와주지 않겠는가?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 모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다. 새 예배당에서 새 일을 준비하며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 모두 다 하나님의 함께 하신 축복이다. 언제나 함께 하시며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며 큰 산, 작은 산이 겨처럼 날아가는 것들임을 확신하자. 신앙 앞에 장애물은 구름처럼 흩어지는 것임을 확신하자. 이 믿음을 가지면서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약하고 약한 지렁이인데 이렇게 사용해 주시고 삼아주신 것에 어찌 감사를 외면하겠는가? 지렁이는 보잘 것 없다. 지렁이는 뼈가 없다. 지렁이는 흙 속에서 산다. 지렁이는 쳐다보는 이도 없다. 지렁이는 공격만 당한다. 지렁이는 약함과 못남의 상징이다. 지저분해 보인다. 지렁이는 못 생겼다. 그런데 그 지렁이가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붙들고 도와주시는 섭리 때문에 새 타작 기계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도구, 강력한 도구, 자랑스러운 도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산들을 깨버리는 도구, 엄청난 변화의 도구가 되었으니, 천국의 도구, 교회의 도구, 전도의 도구, 건축의 도구가 되었으니 정말 감사할 뿐이다.

그 지렁이가 나의 모습이다. 내 영혼의 모습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렁이보다 결코 잘난 것이 없다. 나을 수가 없다. 아니 지금도 약한 성대로 인해 지렁이같이 꼼지락거리며 겨우 말을 한다. 지렁이도 못된다. 죄의 썩은 물에 살던 영혼, 약한 지렁이가 아니고 사형수, 사망에 놓인 영혼이 아니었던가? 더럽고 냄새나고 해결할 수 없는 벌레 인생이 아니었던가? 그 지렁이가 바로 우리다. 무용한 인생! 그런데 쓰임 받는 도구로 쓰여졌다. 영혼을 구원하라고 사람을 살려내라고 세계 선교하라고 그 타작 기계로 세워진 것이 나와 여러분 오목천교회이다. 할렐루야!
감사절을 맞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7배, 70배, 온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고 마땅하다. 주님 손에 붙잡혀 타작 기계로! 감사와 설레임의 성도가 되자.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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