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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을 내밀라 (막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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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한 마을에 세 딸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딸들은 각기 한가지씩의 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딸은 몹시 게으르고 둘째 딸은 도벽이 있었으며 막내딸은 남을 헐뜯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의 결점을 고쳐 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 끝에 랍비인 ‘힐렐’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도저히 제 딸들의 버릇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랍비님께서 저희 딸들을 일년 동안 맡아서 그 버릇을 고쳐 주십시오” 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랍비는 딸들을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세 딸을 맡은 랍비는 그녀들의 단점이자 흠인 버릇을 고치기 위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몹시 게으른 큰딸을 불렀습니다. “너는 내 집에 있는 한, 아무 일도 하지 말도록 하여라. 너를 위해 몸종을 여럿 고용해 놓았으니 너 편한 대로 지내거라” 그리고 도벽이 심한 둘째딸을 불렀습니다. “이 마을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모두들 나를 신뢰한다. 그러니 너는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지 그냥 집어오도록 해라. 네가 물건들을 그냥 집어온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네게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기를 잘하는 막내딸을 불렀습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너는 내 방으로 와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도록 하여라. 아무 이야기도 좋으니 말이다”

  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딸들을 데려오려고 랍비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의 딸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게으른 첫째 딸은 얼른 일어나 다과상을 차려온 뒤,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 있기란 정말 고역이어요.” 그러자 도벽이 심한 둘째딸은 “물건은 돈을 지불하는 맛에 산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라며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막내딸은 아버지의 무릎에 올라앉으며, “아버지 글쎄 랍비의 여자관계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어요” 하며 랍비 ‘힐렐’을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버릇을 고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무서운 병 가운데 하나는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욕하는 병입니다. 이 병은 우리의 인격을 병들게 하고 영혼을 어둡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영적인 공해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을 금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야고보는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약4:11)고 했습니다.

  성서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어떻게든 고발하기 위해 예수께 모여든 무리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보면 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비판하고 비방하며 욕하고 헐뜯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율법의 내용과 의미보다는 형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의 내용과 의미를 주장하는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미워했습니다. 이들은 객관적이고 합리적 원칙에서 예수님을 비판하기보다는 미움과 시기의 감정과 편견으로 예수님을 비판하고 욕하고 헐뜯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해할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것은 안식일 규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관한 외적 규정을 어기는 것을 고소거리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안식일임에도 손이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이 사람은 그의 상태를 표현한 말씀을 살펴볼 때에 그의 신체장애가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근육이 마비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오그라든 손이 오른손임을 말함으로 그의 활동성, 능력이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롬’이라는 사람은 외경 ‘히브리인 복음서’를 참조하여 이 병자가 석공으로서 손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이었음을 밝히고, 손이 말려들어 일할 수 없어 생계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손이 마른 사람은 예수님을 보자 자신이 수치스럽게 구걸하지 않도록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을 호소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실상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헐뜯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며 오늘 우리들 자신들일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시는 치유사역에서 손 마른 자와 같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믿음을 주지 못하며, 사랑을 드리지 못하고, 경외와 희생을 드리지 못하는 오그라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오그라든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해야하는데, 사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랑해야 할 대상을 깍아내리고 헐뜯고 비판하고 정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상처 나고 병든 인격의 오그라든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어두움에 가두어 놓고 기쁨과 평강과 사랑의 즐거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손이 말려서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오늘 오그라든 우리들의 병든 몸과 인격과 영혼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에게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치유 대상으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상의 중심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 어떤 대상으로 살아가십니까? 사랑과 은총의 대상입니까? 손 마른 사람처럼 예수님이 고쳐주시고자 하는 고침 받을 대상입니까? 예수님의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대적으로 예수님이 내게 어떤 대상으로 계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관심의 대상에 서 계십니까? 나의 모든 것의 관심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예수님이 저와 우리의 절대적인 대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의 대상에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대상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오그라든 병든 영혼을 용서받고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중심인 내용과 생명에 있지 못하고 율법의 형식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축복의 대상에 바로 있지 못함으로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오그라든 마음을 펴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오그라든 우리자신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그라든 우리의 모습은 새롭게 고쳐져야 합니다. 그것을 고쳐주실 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쳐주시는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는 축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캄캄한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루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엄마 무서워서 싫어요.” “밖에는 예수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니? 널 지켜주실 거야.” “정말 밖에 예수님이 계셔요?”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시단다. 네가 힘들 때 널 도와주신 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그 틈새로 말했습니다. “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오그라든 손과 같은 무력한 신앙의 삶과 병든 영혼의 모습에서 고침 받으려면, 예수님의 절대적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의 대상에 있어야 합니다.
  죄악과 싸워 실패하여 용기를 읽고 실망으로 오그라든 죄책감의 실패자의 모습에서 고침 받으려면 예수님의 용서와 능력의 대상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대상으로 일어서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오그라든 손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일어서심으로 영혼의 고침과 쉼을 얻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손 마른 모습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깊이 감추고 있는 오그라든 내면의 모습과 그것을 감추는 위선의 모습을 주님 앞에 펼쳐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다루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안식일 규정과 형식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일 내용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잘못된 편견과 감정의 오그라든 마음을 예수님 앞에 펼쳐놓고 용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그라든 영혼의 병든 모습을 진실하게 예수님께 내밀지 못했습니다. 말려서 오그라든 손을 내밀지 못한 그들은 6절의 말씀대로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것을 모의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 나의 오그라든 모습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오그라든 손을 내미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손이 오그라든 상태는 삶의 위축과 불구상태를 나타냅니다. 오그라든 영혼의 모습은 기쁨과 만족을 잃어버린 무력한 믿음입니다. 이 오그라든 손 마른 자의 모습을 고침 받아야 살아있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헐뜯고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계속 그렇게 행한다면 이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미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해야 하는데 건강하지 못하고,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축복을 받지 못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못하다면,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 생각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생각과 꿈을 현실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몸에 해롭고 그 담배의 악영향에 대하여 잘 알고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권투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남을 헐뜯는 거듭되는 말의 실수 때문에 자신의 입을 반창고로 붙이고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의 실수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손이 말려 오그라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어떤 노인이 멈추어 서버린 낙타를 끌어보려고 애썼지만 낙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지나가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가능하다는 의지를 가지고 끌어당기세요” 그 노인은 대답하기를 “내 의지보다 이 낙타의 반대의지가 더 강합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반대의지에서 가능한 의지로 바꾸어 주실 분이 누구이십니까?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이 마음먹은 것을 할 수 없는 불구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셔서 병들어 불구자 된 모습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의 절대적인 대상이 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오그라든 모습을 예수님께 내놓으십시오. 그렇게 하심으로 마른손을 고침 받는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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