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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이 이끄는 삶 (사 4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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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입> 지난주에 우리는 말씀대잔치를 통해서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배목사님들이 말씀하시기를 “부흥회는 보약 먹는것과 같다”라고 하신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주식으로 밥을먹고 삽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때나 환절기등에 몸이 허해지거나 다리가 후들거리면 몸을 위해 보약한재정도는 먹습니다. 그런데, 보약이 몸에 받는다고 주식인 밥처럼 먹어서는 어떻게습니까? (진짜 미련한 사람들은 부흥회/기도원 전전긍긍하다가 귀한세월 다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말씀은 은혜받고 실천하라고 주신것이지, 그냥 앉아서 은혜만 받고, 여기가 좋사오니??? 라는 식은 믿음은 안됩니다)

밥을 주식으로 먹을때보다 보약을 주식삼아 먹는 육신이 더욱 나빠진다는것을 우리는 압니다. (잘먹기만하고 뛰지를 않으면, 말짱 헛것입니다. 우유먹는 사람보다 우유배달원이 더욱 건강하다는 말이있습니다.이제 보약을 잘 먹었으면, 주식인 밥을 잘 먹을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용호강단에서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영육간에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본 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70년 포로기를 경험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체주제는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과거의 구원과 또 미래에 베푸실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지금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권면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포로기를 경험하고 있기에 “왜 하나님께서 내게(우리에게) 이런 포로기의 고난과 역경을 주시는것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불신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구원의 역사들, 본문 15-17절에서처럼 출애굽사건과 홍해도하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시면서, 그 옛적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장차 미래에는 바벨론 포로기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속/회복하실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구원)하리라)
이런 예언적 선포가 14절에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임박할 미래적 사건) 할렐루야!!!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리라”는 선포를 하십니다. 19절이하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구속/해방의 때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씀은 마지막 21절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이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기로부터 구속/해방시키시고, 복권시키시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 땅에 존재케하셨던 목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21절) - 하나님의 영광

저는 이 본문을 말씀을 화두(火頭)로 삼아,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님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의 중심주제들을 열거하면서, 함께 신앙생활의 기초적인 터다지기 작업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의 저서에 의하면, “인간의 존재목적을 5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시간관계상 2가지만 먼저 나눕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성경은 다음 다섯 가지의 인간 존재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1> 첫번째로 예배입니다. - 롬12:1 (그러므로 ....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고, 이것은 예배를 통하여 가장 구체적이고 근본적으로 이루어 드릴 수 있다.
모든 개신교신학의 신학의 근간이 된다는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1조 1항에보면 “인간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히 즐거이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말씀이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이하는것은 예배자의 삶을 말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나 “그분을 즐거이하는 삶” 모두가 바로 “예배”입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 땅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 때, 믿음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존재목적 또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날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경배와 찬양이 있어야합니다. 그런 심령들위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에 있어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첫번째는 예배에 대한 사모함의 결여입니다, 두 번째는 드림은 없고, 받기만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엄청난 대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제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너무 많은 교인들이 자신의 사적인 일/취미들로 인해 예배를(주일성수) 때우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먼저 하나님앞에서 진정한 드림의 예배자로 서지 못한채, 은혜와 감동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유형들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왜 설교전에 찬양을 많이 드리는줄 아십니까? 우리가 주님께 드릴만한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물질로서, 재능과 지식으로 드린다한들 얼마나 드릴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나의 입술의 찬양과 고백”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찬양드릴때 대충 드리지 말고, 내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을 드릴때에, 그 입술의 찬양/고백속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할렐루야!!!
<다함께 찬양을 - 주께와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주계신곳에 기쁨 가득, 누구와도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예배드림이 기쁨됩니다. /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것....>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예배받으시기 원하셨습니다. 창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가 나옵니다. 창 8장에 노아의 제사를 받으셨고, 창 12장이후 아브라함이 드린 제사의 기록들이 나오며, 이후 얍복강에서 야곱의 제사를 받으셨고, 애굽에 내려간 요셉을 통해서도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을까요? 이유는 자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찬양과 예배받으시기를 원하시는데, 바로와 애굽사람들이 제한을 하니까, 그들을 출애굽시키셔서, 광야에서도, 시내산에서 예배받으신 것입니다.

레위기는 무슨책입니까? 제사(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조항들이 기록되어져 있는 책이고, 민수기를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릴 자들이(지파공동체) 누군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후 사사들을 통해서(모세/여호수아/엘리/사무엘...), 왕정시대(다윗/솔로몬...)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시대마다 선포하고 있는 핵심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분을 예배하라”는 것이 주제입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예배 잘 드립시다. 온전한 예배자가 됩시다. 그것이 나의/우리의 축복입니다”

2> 두 번째로, 교제입니다. - 엡1:5, 벧전1:3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가족) 되게 하셨으니”
인간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고, 이것은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존재하면서, 두가지 가족공동체에 속해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 가족공동체이고, 또하나는 영적인 가족공동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두 번째로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안에서 한가족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 예배적 관계 - 를 원하셨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온전한 신앙적 성숙이 아님을 주지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린사람은 반드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적 관계도 열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께서도 강조하시는 바, “진정한 신앙은 관계신앙이다”라는 말씀인 진리입니다.

예 증>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는 도닦는 종교입니다. 혼자서 갖은 고행/수행을 통해서 각성하게되면, 성불을 이룬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도 깨달음을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깨달음과는 다릅니다. 불교는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종교라면, 기독교는 “내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한다는 차원에는 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력구원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타력구원의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나와 너와의 관계를 통해서 신앙이 성장/성숙”함을 강조합니다.
적 용> 실제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교우들과 원만한 관계속에 있는가?” “나는 교우들과의 관계를 기피하고 있지는 않는가?”(귀찮다) “나는 교우들과의 관계를 부담스럽게/두려워하지않는가?”

예수안에서 영적인 가족들의 관계도 육신적인 가족들간의 관계성과 동일합니다. 한 집에 살면서, 한 솥밥먹고 살지만, 대화도 없이, 서로의 삶의 공유도 없이 살아가는, 소위 “법적인 가족”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법적으로는 가족이지만, 그곳에는 참된 행복도/사랑도없는 정말 재미없고, 생명력없는 가족입니다.
한 교회를 다니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서 교우들간에 교제와 나눔이 없다면, 이 또한 법아래 매인 관계이지, 진정한 생명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만 용호교인이고, 실제적으로 남남인 관계???)

적 용>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강조되고.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목장모임”입니다. 전체교인들과 교제를 하는데 있어서는 시간/공간적 한계가 많지만, 한 목장안에서는 충분히 교제와 나눔이 가능한것입니다. 교회성장학에서 말하는 ‘소그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모토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호선교교회 목장(소그룹)모임은 어떠합니까? 저는 이번에 MD사역현황판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또한 매주일 목장보고서 종합을 하면서 한가지 분명한 결론을 도출할수있었습니다. “목장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곳에는 전도의 열매도 많고, 정착률이 현저히 높았다”라는 것입니다. (게시판 참조)
(청년들을 대상으로해도 목장모임에 적극적인 청년들의 신앙의 성장이 현저히 높았다)

그렇다면, 목장모임(소그룹)의 활성화에 가장 큰 저해요인은 바로 “리더(리더십)의 부족/결여”였습니다. 목자가 열정을 가지고 끈질기게 연락하고, 초청하고, 챙기면 결국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영혼에 대한 목자적인 책임감이 사라질때 그 목장은 죽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부장/팀장을 맡는것보다 영혼을 직접 담당하는 목자/교회학교 교사등이 주님보시기에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목자가 되게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목자라는 직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모하는 분위기조성이 중요하다)

결 론> 결국 릭워렌 목사님도 인간의 창조목적의 5가지 중에서 먼저, 예배와 교제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부흥의 2날개인 “예배와 소그룹”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들이 함께 모여서, 아름다운 영적공동체를 이끄는 것이(예수안에 한가족) 하나님의 첫 번째 소원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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