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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약속이 이루어질 그 날 (렘 3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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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금수님의 시 “기다림에 대하여”
“누군가를 지루하게 기다리다보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산만하게 만든다.
혹시 기다려도 오진 않을 것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이 지루함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상대는 알고나 있을까? 뭔가 잘못 알고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등등.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추측과 반성이 생겨나고 그래도 오지 않을 경우 결국 몸과 마음은 차갑게 굳어지고 만다.
물론 늦는 것에는 다들 사정이 있다.
그리고 기대가 큰 기다림일수록 좋지 않은 예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아직 오지 않는 상대에 대한 원망과 걱정이 기다림을 힘들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더 큰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때로 자기 자신에 의한 잔인한 고통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께서 다시 오시리라 믿었습니다. “너희 중에 살아서 나를 볼 자가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오시는 걸까?”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겁니다. “이거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꼭 예수만이 구세주일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들은 그들의 소율ㄹ 다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값의 어마를 떼어놓고 그 나머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그들을 향해 베드로가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요.” 라고 말하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여러분과 저는 지금 여기 이러고 있지도 못 할 겁니다. 하도 감춘 게 많으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들 마음속에 “이게 진짜냐?” 싶었을 겁니다. “만약 내 소유를 다 드렸다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 싶었을 겁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일에 자기의 소유 전부를 드린다는 것이 어쩌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도 그런 분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아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어서……. 그래서 교회는 다니는데, 집사고, 권사고, 장로고, 직분은 있는데……. 여전히 주님께, 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 마치 한심스러운 것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할 거 뭐 있느냐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보다 더한 사람 있을 겁니다.
또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산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금방 오신다던 예수. 그런데 벌써 2000천년이 지나갔는데……. 오시지도 않는 그분을 마냥 기다리는 것 아닌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말 맞는 걸까?”
그러다 보니 말씀에 순종할 수 없어요. 모두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선을 긋고 신앙생활해요. 교회 열심히 다니기만 하면 좋은 신앙인 줄 알아요. 그래서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고…….
그런데 그게 또 신앙의 깊이인 줄 알아요. 집사 되면 직분이 없는 사람보다 신앙이 더 좋은 줄 알아요. 권사 되면 집사보다 신앙이 더 좋은 줄 알아요. 장로 되면 권사보다 신앙이 더 좋은 줄 알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보세요.
신앙은 머릿속이 산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예배 참석, 그냥 하면 됩니다. 생각이 많으면 못 해요. 십일조, 역시 그냥 하면 됩니다. 역시 생각이 많으면 못 해요. 교회 봉사,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으면 못 해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림 역시 믿고 기다리는 겁니다.
신앙이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 아닙니까? 그 내용이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겁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으면 자기 생각이 하나님 말씀보다 먼저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되나?”는 물음입니다. 대개 교회 열심히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말 하는데, 그럼요,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되는 것 아니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세요. 예수 믿기에 그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정말 교회 다니는 게 헛일인지 깨달게 될 겁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한다고 다 되나?” 그럽니다. 이 말하는 사람도 별로 기도해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 안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 적당한 헌신, 적당한 신앙생활 합니다. 그래놓고는 되니 안 되니 그럽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겠어요? 자기 능력의 반의반도 나타나지 않을 텐데요.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곤 7절 이하에,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 예를 든다면, 노아의 방주. 여러분과 같이 생각이 많았다면 가능했을까요? “진짜인가?” “내가 뭐 잘못 들은 거 아닌가?” “어떻게 산에다 배를 지으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았겠어요?
조금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면 또 다시 말씀하시겠지. 억지로라도 일하게 하시든지 하실 거야. 그러니 기다려 보자.” 그래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만 하면, 우리가 순종하는 거지.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까 그렇지.” 그럴 겁니다.
그런가요?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구약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요?
마가복음 21:33 이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주인이 멀리 떠낫습니다. 열매 거두어들일 철에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이 그 종들을 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습니다. 끝내 그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여기 종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여기 아들은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게 들려주고, 심지어 보여주기까지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사람들은 순종하기는커녕 거역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농부들입니다. 소작인들입니다. 당연히 세를 내야지요.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38절, 주인의 아들을 본 농부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들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누구의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 뜻?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더라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들은 말씀에 순종했을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말씀이 들려지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뜻이 먼저이고 언제나 더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 “유다는 멸망한다. 그러나 70년 뒤에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 예언자 하나냐 같은 사람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예레미야 6:16-17,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보고,
  그 길을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너희를 지키려고
  파수꾼을 세워놓고 
  나팔소리가 나거든
  귀담아 들으라고 가르쳐주었으나
  너희는 귀담아 듣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들의 관심은 엉뚱한데 있었고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13-15절,
  힘 있는 자든 힘없는 자든,
  모드가 자시 잇속만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했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그들이 그렇게 역겨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였느냐?
  천만에!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져서 시체더미를 이룰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내릴 때에,
  그들이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남 이야기 입니까?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말씀 아닙니까?

더더욱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시드기야 왕 때,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벨론 왕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끝내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였고, 시드기야는 두 눈을 뺀 다음에 쇠사슬로 묶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은 불타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유다의 멸망, 그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70년 유다의 회복, 그것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29:19,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70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주겠다.”
이제 회복의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게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날이 오고 있다.”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날(선한 말이 성취되는 날), 그날이 분명히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날” “그 때와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귀 70년이 지나자 유다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고, 파괴된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말씀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단지 유다민족과 예루살렘 회복만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다윗에게서 돋아나는 한 의로운 가지” 그 약속은 장자 신약시대에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준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주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니
그래서, 그분이 오시면 6-7절,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명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헤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유다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메시아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시는 날입니다.
이사야 11:4,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5절,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로 삼는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사야 61:1-2,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이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약속하신 마씀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유다가 구원을 얻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하게 되듯이, 또한 그날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430년간 이집트의 종살이 하던 히브리 민족, 이들을 해방시킨 유월절은 이집트 사람의 사건이 아닙니다. 히브리 사람의 사건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된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그 집에는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유월절 때, 그때 흘린 희생의 피같이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은 그냥 옛날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신명기 5: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하셨느냐가 중요한 것 아닙니다. 그 말씀, 그 약속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 때 하셨든, 모세 때 하셨든, 이사야 때 혹은 예레미야 때 하셨든, 오늘 여기서 이루어짐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미래를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날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또한 그날이 이루어져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영원한 멸망 아니면 영원한 생명으로 나누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복이 ‘안전’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지키심이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더욱이 이 하나님의 안전은 순간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에 어느 날 편안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나 보다.” 어느 날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나 보다.”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지켜주십니다.(시편 121편)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의 네 오른 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낮의 해도 너를 해치 못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재앙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세속적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할 때, 선지자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은 고난뿐이라고 말할 때,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끝내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과 안전하게 하심이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세상 끝남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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