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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시 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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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말 

현대교회의 꼴불견소리는  ➀예배 시간 핸드폰 소리, ➁기도시간 발자욱 소리 ➂축도시간 성경책 잠그는 지퍼소리 ➃교회안의 고함소리 ➄주차장의 도난 방지소리들 이라고 합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고 합니다.
반면에 듣고 싶은 소리는 ➀성미 통에 성미 쏟는 소리 ➁엄마품의 아기 울음소리(아이들 떠드는 소리) ➂ 설교시간에 아멘소리 ➃복도에서 서로 인사하는 소리 ➄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점점 줄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믿기에, 본 시편은 모세의 비중 있는 말씀 가운데 하나로서, 신명기에 기록된 그의 영광스런 가르침과 나란히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충만했으며, 하나님에 의해 높임 받고, 이스라엘 집 가운데 가장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시편은 모세의 기도라 불립니다. 마지막 부분의 간구가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편은 모세의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호렙산의 선견자가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갈망하며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해 애원하던 중보 기도의 한 표본입니다.  이 시편은 가장 오래된 시편으로서, 두 권의 시편 사이에 위치하는데, 위엄 있는 문체와 그 오랜 역사로 독특함을 발하고 있습니다. 열려진 무덤가에서 애곡하는 자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시편을 들으며 마음에 위로를 얻곤 하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귀족들과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들과 40년, 시나이 반도와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에서 동족들과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인고의 세월의 흔적이 이 기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모세의 기도는 오늘 우리들의 기도와 신앙고백 내지 인생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1. 우리의 평생은 일식 간에 다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9)라고 말했습니다.

1) 우리의 날은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반역하는 이스라엘 족속의 날 수는 공의로 인해 단축되었습니다. 저들이 잠깐 머무는 곳마다 공동묘지가 되었습니다.  저들은 남겨지는 무덤을 뒤로 하고 앞으로 행진했습니다.  사형 선고로 인하여 저들의 날은 말라 버렸고, 저들의 삶은 헛되이 소진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분노 중에 우리의 인생이 지나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나가게 될 겁니다.

2)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합니다.

우리의 연한이 한편의 드라마같이 지나갑니다. 우리들의 날 뿐 아니라 우리들의  해까지도 하나의 생각처럼 우리들을 스쳐 날아가며, 묵상처럼 빠르게, 잡담처럼 헛되이 달아나 버립니다. 나이 많은 자들에게서 “세월이 빠르다. 한 주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하루가 번개같이 지나간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젊은이들에게서는 “세월이 빠르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은 젊은이들의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갑니다. 공부할 수 있는 세월, 대학 입학할 수 있는 세월, 취직 할 수 있는 세월, 결혼 할 수 있는 세월, 애기 낳을 수 있는 세월, 돈 벌 수 있는 세월은 오히려 나이 많은 이들에게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고 맙니다. 이러고저러고 하다보면 30고개, 40고개 훌쩍 뛰어넘어갑니다. 곁눈질  할 겨를이 없습니다. 폼 잡고 배짱부릴 여가가 없습니다.

2. 우리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라고 말했습니다.

1) 우리의 연수가 칠팔십입니다.

모세 자신은 이보다 훨씬 오래 살았지만, 그의 연수는 보통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수명은 우리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였습니다.  이 수명은 그 이전 사람들의 수명에 비하면 매우 짧은 것이며, 영원과 비교하면 무(無)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수명은 덕과 경건을 쌓기에 충분한 기간이며, 죄악과 참람하게 살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입니다.

2)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70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범한 힘이 인생을 떠밀어 넣는 곳은 피곤과 염려가 가득한 곳입니다. 인간의 힘, 그 자랑과 내세울 만한 것이 수고와 슬픔뿐일진대, 그 약함은 오죽하겠습니까? 숨이 얼마나 가쁘며, 움직이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감각 기능은 떨어지고, 나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악한 날이 임하며, “나는 살아도 전혀 기쁨이 없다”고 외칠 날이 옵니다. 메뚜기도 짐이 되고, 모든 소욕은 끊어집니다. 이것이 노년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체험으로 원숙해지고 불멸의 소망으로 위로를 얻는 신자들의 노년은 결코 가련하지 않습니다. 무섭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해는 지고 낮의 열기가 사라지면, 고요하고 평화롭게 감미로운 황혼이 찾아옵니다. 해맑은 날은 사라졌지만 일몰의 아름다움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킵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차가운 가을이 오면은 산천에는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풍나들이를 떠납니다. 노년이라고 희망과 소망 없는 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광스럽고 고통 없는 영원한 날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필멸의 몸은 사라지고 불멸의 존재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노인은 잠들었다가 영원한 젊음의 장소에서 깨어납니다.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조선 말기를 거쳐 왜정시대를 견뎌 6.25동란의 쓰라림을 뼈저리게 느꼈던 이 땅의 노인들은 멸시와 천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존경과 위로를 받아 마땅합니다.

3. 남은 여생은 즐겁고 기뻐야 합니다.

1) 남은 날을 계수해 보아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2)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우리에게 ➀시간을 귀히 여기는 법을 가르치소서. 우리가 ➁육체의 소욕을 행하며 흘려보낸 과거 시간을 슬퍼하게 하시고, ➂구원을 위해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부지런히 사용하게 하소서. ➃그리고 장래에 놓여 있는 시간의 불확실성을 깨닫지 못하여 은혜의 사역과 기도에 게으름 피우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라는 의미의 기도입니다.

수를 헤아리는 일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학입니다. 그러나 날 수를 올바로 헤아리기 위해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남은 날 수를 헤아리기보다 지나온 세월을 헤아리는 데 더 열심입니다. 지나온 날을 계수하여 “몇 살이냐? 몇 년생이냐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목숨을 연명할 날을 세어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인가? 가족과 교회와 이웃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보탬이 될 날이 얼마인가를 계산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이 돌아 오셔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3)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자비로 우리에게 다시 임하소서. 우리를 파멸에 버려두지 마소서. 우리 삶이 짧고도 괴롭게 하지 마소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돌아오라, 너희 인간들아” 하셨사오니, 이제 우리가 주님께 겸손히 부르짖나이다.

“돌아오소서. 인간의 보호자시여. 당신의 임재하심만이 우리를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에서 건지실 수 있나이다. 우리에게 돌이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죄가 하나님을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듯이, 회개의 외침은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돌이키게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징계를 받는 사람은 탄원을 하면서 하나님께 “언제까지니이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범하는 잘못 중 하나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서지 못하고 탄원하는 일을 너무 두려워한다는 점입니다.

3) 하나님 안에서 기뻐 할 수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초대 편집자였던 에든버러의 “로빈슨”교수는 장시간 고통스러운 질환에 시달려 하던 일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손자들에게서 즐거움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제임스 와트”에게 “손자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들이 지닌 타고난 재능들을 지켜보고 있는 재미가 쏠쏠하네. 나는 프랑스 이론가들에게 감사하네. 그들 덕에 신의 거룩한 손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니 말일세. 나는 모든 서투른 동작에서, 그리고 제멋대로인 변덕에서 신의 거룩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네. 그것들이 모두 어린이의 삶과 성장, 재능을 보호하는 보호자라네. 나는 어린이와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진지하게 연구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네.”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14)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 형제들에게 한시 바삐 은총을 내리시도록 간구합니다. 의인들은 지극히 캄캄한 시험을 당할 때 이를 은혜의 보좌 앞에 가지고 나가 논할 줄을 압니다. 기도의 마음만을 가진 사람은 기도할 때 탄원을 빼놓지 않습니다. 주의 백성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음식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마치 아침에 만나를 보내시듯이 곧 만족스런 은총을 보내사 짧은 인생의 날 동안 내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간구합니다. 주님께 기도하오니 “곧 우리를 만족하게 하소서. 우리의 날은 짧고 밤은 가까우니, 주님, 우리 생애의 이른 아침에 주의 은총으로 배부르게 하사 짧은 인생 동안 내내 우리를 행복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할 때,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은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요, 이 기쁨은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심으로써 우리를 기쁘게 하시면, 어느 누구도 그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빠른 죽음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은 괴롭지 않습니다.

밤이 오는 것을 알아도, 저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재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승리하는 가운데 미래를 그의 자애로운 손에 맡기고,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갑니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세대는 광야에서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으므로, 저들은 자연히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위대한 지도자는 무엇보다 저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축복, 곧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4. 우리 손의 행사가 견고해야 합니다.

어떤 음치 여집사가 있었습니다. 열심은 대단하지만 음치인지라 찬양은 항상 엉망이었습니다. 대원들이 당회장을 찾아 도저히 못 참겠으니 조치를 위해 달라는 청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자기들이 못하는 소리는 꼭 대신해 달라는 주문을 자주합니다. 버티다 버티다 큰 맘 먹고 여집사를 불렀습니다. “집사님, 찬양대원 다섯 명이나 그러는데 집사님의 음정이 특이해서 다른 이들과 맞지 않는데~, 집사님이 찬양대에서 빠져 달라는데 어떡하지~~~” 그 여집사가 노발대발하더니 “목사님 그까짓 다섯 명 가지고 뭘 그러세요.  나는 50명 이상에게서 목사님이 설교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꾹 참고 있었는데 목사님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셔서 어떻게 목회를 하시겠어요? 목사님 내 걱정일랑 마시고 설교준비나 많이 하셔서 은혜나 많이 끼치세요, 그 사람들 다 시험 들어서 그래요, 은혜만 받으면 안그럴겁니다.~ ~ ~"

모세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17)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하는 일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일이 되게 하시며, 우리가 무덤에 들어간 뒤에까지 계속 남을 수 있게 하소서. 현재 세대의 사역이 나라를 영원히 견고히 세우는 데 이바지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끝맺는 말

전화수리공이 전화를 수리하고 있는 중 여집사 3분이 앉아서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➀첫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단연 제일 좋지. 그 기도자세가 예수님의 자세요, 전통적인 자세가 아닌가? ➁둘째가 손을 하늘로 들고 선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세가 아닌가? ➂셋째가 이슬람 신도들처럼 얼굴을 바닥에 대고 기도해봐.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그렇게 기도했잖아. 세 여집사가 찌그락 째그락 하고 있었습니다. ➃옆에서 듣고 있던 전화 수리공이 참다못해 고함을 지르면서 “나는 전신주에 거꾸로 매달려 죽지 않으려고 기도할 때가 가장 기도가 잘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전신주에 매달린 심정으로 기도들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 아니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생이 되도록 은총을 내리시리라 확실히 믿습니다.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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