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늘 은총을 기다리는 사람들 (단 10:10~12, 행 7:9~10)

  • 잡초 잡초
  • 535
  • 0

첨부 1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인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라고 하고,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잘 기다려야 오신 기쁨이 배나 더합니다. 아무 의미 없이, 생각 없이, 맞이하게 되는 성탄절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 때가 되면 흥청망청 쓰게 되고, 연말연시 기분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 성탄의 계절의 의미를 분명히 알기를 바랍니다.

  잘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할 때도 하나님은 느긋하게 기다리셨습니다. 모세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을 곧장 하늘에 데려 가지 않고 타인을 구원하게 이 땅에 구원받은 자로 두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은 ‘탕자의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비유에 나타난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헤매지 않고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다림입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하늘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오심이야말로 가장 큰 하늘 은총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늘 은총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조건 없는 선물 또는 거듭남과 성화(聖化)를 위해 인간에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영향력을 은총이라고 합니다. 은총은 영어로는 ‘grace’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는 ‘charis’인데 신약성경에 약 150번 나오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중에 약 3분의 2는 바울이 쓴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서 나온 자발적 선택 사랑(election-love)에다 언약사랑(covenant-love)을 합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과 인간과의 약속을 합하여 은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은총을 맛보고,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늘 은총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중에 가장 큰 것은 그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대망하는 기다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성탄도 기다릴 때 좋은 것이지 지나고 나면 아주 분위기도 가라앉습니다. 기다림의 즐거움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늘 은총은 세상의 통치자로 세웁니다.

  사도행전 7:10은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은총을 주셔서 통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통치자가 된 것은 하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늘의 은총은 요셉으로 하여금 팔려가게 하고, 종살이하게 하고, 옥살이하게 하고, 애굽에 기근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요셉이 해몽하게 하십니다. 이런 모든 것이 통치자가 되게 하는 하늘의 은총입니다. 팔려가는 것도, 종살이하는 것도 다 은총입니다.

  로마서 13:1에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통치자는 하늘이 냅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하늘의 뜻에 따라 통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치자가 자기의 뜻대로 통치하면 그 뒤가 항상 좋지 않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던 천수답 농사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진평왕 때에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기우제는 농경사회에 흔하던 통치자들의 제사였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부족은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의 탕왕이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탕왕은 기우제를 지내면서 제문을 읽습니다. “하늘이여, 노여움을 푸시고 비를 내리소서. 임금인 내가 부덕합니까? 국가의 관리들이 뇌물을 받습니까?”. 이것이 당시의 제문의 내용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비가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치자는 하늘의 소리, 하늘의 뜻, 하늘의 은총에 민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하늘의 은총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의 정윤재교수라는 분이 전현직 대통령 6인을 비교한 것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카리스마적 권위주의자입니다. 장면총리는 긍정적이면서 소극적인 지도자입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변혁적 지도자입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대세주도형 인물입니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대세편승형 지도자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계몽군주형 지도자입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실패한 도덕적 리더십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도적인 화법을 쓰는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이 의도적인 화법으로 지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대언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코드에 사람을 맞추지 말고, 하늘의 소리, 하늘의 코드에 자신을 맞추는 지도자가 되어야 국민이 평안하고 자신의 이름도 빛날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추어주기를 원하는 것은 유아기적인 심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청년기적인 심리입니다. 하나님께 맞추는 것은 성숙한 성인의 심리입니다.

  우리의 통치자가 하늘 은총을 받기를 바랍니다. “통치자가 부덕합니까” 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통치자이기를 바랍니다. ‘유스토’라는 세례명만 가지고 있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고, 유스토라는 이름답게 ‘정의롭게’, ‘의롭게’ 통치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로, 자신의 판단으로 하면 골이 깊어지고 문제가 복잡하게 될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니엘 10:11에는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합니다. 다니엘서에는 이 말이 여러 번 반복되게 나옵니다. 다니엘은 은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참 부러운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가 되고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10대 때 포로로 잡혀가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고생도 은총이었습니다.
  잠언 12:2에는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하늘의 은총은 선인들이 받습니다. 이런 자들이 세상을 통치해야 합니다. 사무엘상서 2:26은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하늘의 은총으로 성장하고 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 은총을 받아야합니다. 세상에서 지식, 물질, 건강, 인물을 자랑하지 말고, 하늘 은총을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 똑똑이, 책 똑똑이가 아니라 하늘 똑똑이, 믿음 똑똑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장차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저에게는 많은 교회를 위한 소망 가운데 이런 바람이 있습니다. 정말 똘똘한 우리 교회의 자녀를 신앙적으로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미래에 한국을 이끌어가고, 세상을 통치할 젊은이를 양육하고 싶습니다. 세상 공부도 잘하고, 신앙도 제대로 된 젊은이를 교회가 뒷바라지 하여 세상을 바르게 이끌고 갈 인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좋은 학생이 있으면 교회에서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하여 세상으로 내어보내고 싶습니다. 하늘 은총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국가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작은 공동체도 괜찮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도 좋습니다. 이런 젊은이를 양육하기 위하여 앞으로 특별한 장학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잘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지만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지만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될 때에 “나는 세상에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빈손이었다. 나사렛 예수여 당신만이 위대한 나라를 세웠습니다. 당신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늘 은총은 세상의 통치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셉은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림자입니다. 팔리고, 배반당한 요셉은 팔리고 배반당하지만 결국 세상의 통치자가 되실 주님의 모형입니다.

둘째, 가장 큰 하늘 은총은 메시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나라와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고 세워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보리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도 사천 명을 먹이시는 베푸셨습니다. 마치 요셉이 기근에서 백성을 구하듯 예수님도 기근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 은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늘 은총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가장 큰 은총은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신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 아는 사람에게 어떤 일을 부탁을 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전화 한번만 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힘들겠지만 같이 가달라고 간절히 매달립니다. 그런데 부탁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요. 내가 혼자 가도 됩니다”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이 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오신 하늘 은총입니다. 더 이상 고마울 데가 없는 일이 예수님이 직접 오신 일입니다.

  하늘 은총은 하늘에서 쉼 없이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사는 동안 만나는 끊임없이 40년을 내렸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창고가 넘치는 축복을 받습니다. 해와 비는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내립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은총도 항상 예수님께로부터 인간을 향하여 끊임없이 내립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독생자와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십니다. 이것이 하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하늘 은총입니다.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이 은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루터의 친구였던 필립 멜랑히톤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은총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은총으로 압니다. 하늘 은총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는 곡식을 많이 수확하여 창고에 가득 차게 채웠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아 창고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영혼아 편히 먹고 쉬자”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내가 네 영혼을 취하면 네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현재에 대한 관심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늘의 은총을 기대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에 현혹되고 만족하는 그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하늘 은총을 기대하는 그 자체가 지혜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림만 있었지 막상 오셨을 때는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30:18에는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기다림은 그 자체가 복입니다. 누가복음 서두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데 시므온이란 할아버지가 나타납니다. 그는 성전 문에서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 안고 찬양합니다. 또한 안나라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남편과 함께 7년을 살고 84년을 과부로 살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고 있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립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가장 유일한 게으름이다”고 하였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릴 줄 알아야 참 은총이며, 참 부지런함입니다. 삶의 참 의미는 기다림 속에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집을 버리고 떠날 때에도 그는 아들이었고, 돼지를 칠 때에도 여전히 아들이었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된 신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은혜만이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 하늘 은총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자녀의 관계를 맺게 합니다. 이런 은총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의 은총, 그리스도의 오심의 은총을 기다리는 것은 복 있는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결론

  ‘마라나타’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며, 인사입니다. ‘마라나타’는 기다림의 극치입니다. 아기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며, 다시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것입니다. 롱펠로우는 “일하고 나서는 기다림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일한 사람만이 기다림의 은총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일한 사람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어스킨 목사님이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스칼렛 부인은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고 깊은 감동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스칼렛 부인은 설교를 들었으나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스칼렛 부인은 목사님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왔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받았지만, 오늘은 나를 보려고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만나러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누구를 기다립니까? 모든 은총은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 은총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십시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아기로 오시는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하늘 은총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풍성한 계절이 되고 오시는 예수님을 꼭 만나는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