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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행을 깨우는 바울의 열정 (행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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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지금 잉글랜드 맨유에서 뛰고 있는 박 지성 선수에 대해
메스컴들이 신형엔진 <박 지성>이란 별명을 붙여놓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 바울의 열정은 바로 신형엔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바울을 신형엔진 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로운 엔진이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에너지 즉 신형엔진이라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빌1:8절에서 바울은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 고 합니다.
그러니 신학자 <위즈비>의 표현대로
바울의 몸속에는 사람의 피가 흐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다 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지마는
그 보다도 우리에게 더 강하게 다가오는 바울의 이미지는
바로 신앙의 열정, 전도의 열정입니다.
바울의 3차 전도의 중심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기 전
마게도냐 지방을 순방하며 전도하는 바울의 열정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제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비전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항구도시 드로아로 갔습니다. -
거기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지경으로 가서 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을 찾아 순방을 하게 됩니다.

바울의 마게도냐 지방 순방이
우리에게 주는 사역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1) 2절에 제자들을 권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제자들을 권했다는 말은 권면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울이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가는 길 멈추고
제자들을 찾아가서 권면했다는 사실은
교회를 세우고 기관을 조직하여 기독교 사회를 만드는 일 보다
사람 세우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 바울의 마게도냐 순방 가운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유능한 일군들을 부쳐준다는 것입니다.
4절 이하 말씀에 보면
이 때 바울과 동행하는 자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 베뢰아 사람-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
이들은 모두 당시 바울 전도특공대의 참모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일군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열정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동역하게끔
자원하는 심령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이것은 열정이란 바로 하나님이 함께 라는 말인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면 땅도, 사람도 부쳐 주듯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신형엔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동역자 일군들을 부쳐 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드자가 열심이면 따르는 자도 열심내기 마련인 것입니다.

2) 그리고 또 한 가지는 2,3절에 마게도냐에서 제자들을 만나 권하고
[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때에 ]
석 달 동안을 헬라에 머무게 되는데
헬라는 바로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를 말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비전을 가고 있는 바울에게
한 곳에 석 달을 머물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달려가는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에 섣달을 머물게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다시 한 번 봅시다.
3절 [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
바울이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게 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방해 때문에 더 진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우리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여기서 로마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도 있어서
바울의 방문 이전에 바른신앙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며
로마교회 성도들의 가슴에 불을 붙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회사에 중심을 잡아 주고 있는 교리가
여기서 탄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유대인의 방해로 복음을 싣고 가는 바울의 폭주 기관차가
고린도라는 역에서 지연된 것같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기독교를 받치고 있는 이신득의의 교리가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 환경이 가로 막혀
실패와 좌절 속에 내 인생이 나락에 떨어진 것 같고, 지연된 것 같지만
그때가 바로 나의 속사람이 눈을 뜨고
나의 신앙생활을 붙들어 주는 신앙의 자기원칙이
여기서 생겨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목회를 붙들어 주는 힘-바로 투병생활에서 생긴 내성)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보내면서 로마서를 썼고
마게도냐 지방 빌립보를 거쳐 배를 타기 위하여 드로아에 도착합니다.
드로아에서 그곳 성도들을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당시 드로아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예배를 조명해 볼 수 있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7절에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우리는 여기서 초대교회가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1) 저들은 안식 후 첫날 모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날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과 예찬,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떡을 땠습니다.
오늘날은 성찬을 일 년에 두 번쯤 합니다만
초대교회는 주일날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떡을 떼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모일 때마다 떡을 뗐다는 것은
모일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나갈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여서 떡만 떼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했습니까?
2) 바울이 설교하고 성도들은 말씀을 들었는데
밤늦게까지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밤중까지 설교하고 듣고 했겠습니까?
이것은 현대교회가 회개해야할 일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주일 낮 설교 기준이 얼마입니까? 30분입니다.
30분 넘어서면 시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고 안 되고 가 문제가 아니라
30분 넘어서면 일류 설교가는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교회는
누가 설교하더라도 2시간 3시간 하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 만큼 중국 가정교회가 초대교회같이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가 한국 교회 선교사님에게 보낸 글 가운데 보면
제발 한국교회 풍토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 7월 말에 중국에 있는 처소(가정)교회에서
일주일동안 성경을 가르치러 갔었던 선교사님의 일정표입니다.
7:00-10:00              성경공부(3시간)
10:00-11:00             식사(아침 겸 점심)
11:00-2:00              성경공부(3시간)
2:00-4:00               낮잠
4:00-6:00               성경공부(2시간)
6:00:-7:00              저녁식사
7:00-9:00               성경공부(2시간)
 점심도 먹지 않고 하루에 10시간씩 성경공부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하루를 강의하고 나니 그 다음날은 일어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자기네들끼리 새벽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분들의 열정에 압도되면서
우리 한국교회도 초창기에는 이런 열정이 있었는데 싶더랍니다.

당시 드로아 성도들의 말씀을 사모하는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중까지 계속되어지는데
예상치 아니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유두고 사건입니다.

아마 바울이 강론을 했던 집은
2층 집인데 2 층 안에 준3층이라 할 수 있는 중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층 창문 난간에 걸 터 앉아서 말씀을 듣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밤중까지 바울의 설교가 계속되니
졸다가 그만 3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예배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유두고 사건을 두고 많은 설교자들이
봐라 예배 시간에 졸면 유두고 같이 된다 고 경고성 설교를 합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꼭 부정적으로 볼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와서 상습적으로 존다면 그건 좀 생각해야할 문제입니다만
믿음의 청년 유두고가 바울 사도가 온다고 하니 은혜 받으려고
낮에 열심히 일하고 달려왔는데 자리가 없어
그래서 3층 난간에 걸 터 앉아 말씀을 듣다가
너무 피곤해서 졸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바울이 그를 살려낸 후에
[ 하필 거기에 앉아 있었느냐? ] 고 책망하지도 않았고,
[ 왜 졸았느냐? ] 고 꾸중하지도 않았습니다.
살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유두고가 3층 난간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사람이 떨어져 죽었으니 바울도 계속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청년에게로 가서 청년의 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앉고는
[ 떠들지 말라 ] 하고는 [ 생명이 저에게 있다 ] 고 합니다.
그러니 의사 누가가 유두고가 죽었다고 기록한 걸 보아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의 몸을 껴안자 살아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10절에
죽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했다는 것은
마치 왕상17장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그 아이의 위에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바울이 유두고를 안은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했다는 표를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밤새도록 떡을 떼며 철야은혜를 나누었으며
12절에 보니
[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
위로를 받았다는 말은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유두고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유두고 라는 이름은 <다행>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유두고는 큰일 날 뻔 했는데 이름 그대로 바울을 만나 다행이 된 것입니다.
저는 유두고 사건을 통해 이렇게 은혜를 받았으면 합니다.
앞에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이
주위에 유능한 일군들을 세우게 되었고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이
불행한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유두고가
이름 그대로 다행한 사람으로 일어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6>
다행을 일으키는 열정의 사람 바울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행의 길을 가다가
복음의 열정의 사람 나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다행의 사람으로 다시 일어나는 이벤트가 있는
열정의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에는 행운을 가져 오는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비를 몰고 오는 사람 - Rain Maker 란 말이 있고
불을 지펴 주는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비를 몰고 오는 사람같이
불씨가 꺼진 마을에 불을 지펴 주는 사람같이
바울의 열정은
불행 중에 빠진 유두고 같은 인생에게
다행을 일으켜 안겨다 주는 열정의 사람인 것입니다.
다행을 일으키는 열정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유두고의 기적으로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 하고 바울은 드로아를 떠났습니다.

13절에 보니 앗소로 가는데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고
바울은 도보로 걸어갔습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80리 쯤 되는 거리인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왜? 바울이 혼자 도보로 걸어갔다고 생각되어집니까?
물론 지리상으로 해변 길로 가면
육로보다 길이 멀고 여러 항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울이 빠른 길을 택하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바울은 혼자 도보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사역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사역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할 부분입니다.
한 번 드로아의 유두고 사건을 연상해 봅시다.
죽은 자가 살아났으니 바울이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겠습니까?
소문이 꼬리를 물고 내일이면 사람들이 막 몰려올 건데
바울은 먼저 동역자들을 배를 태워 앗소로 보내고
자신을 거기를 떠나 도보로 80리 길을 걸어옵니다.
우리는 바울의 사역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기적을 베푸시고 표적을 베푸신 예수님
인기를 끌 때마다 대중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한 적한 곳에 찾아가 기도합니다.
즉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 이 마음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사역을 감당하고 나면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질 것 같지만
그 정반대입니다. 도리어 텅 비워집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칭찬과 위로로 채우려고 합니다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위로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 것 있지요.
예수님도 바울도 바로 하나님의 위로로 채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주의 일을 하고 나면 사람들의 칭찬이나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구나, 일하기 전에도 기도해야겠지만 일 한 후에도 기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신형엔진 사도바울의 열정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를 원하는 바울이기에
바울의 사역에는 지칠 줄 모르는 남다른 열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해 행선을 합니다.
앗소에서 50Km쯤 떨어진 미들레네라는 섬을 거치고
미들레네에서 80Km쯤 떨어진 기오섬을 거치고
그 다음날 사모섬에 들리고
그 다음날은 에베소 남쪽 45Km쯤에 있는 밀레도라는 항구 도시로 돌아옵니다.
이러한 바울의 전도 여정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만약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곳저곳 들리지 않고 곧장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로마로 직행 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으로
로마로 가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면
사도 바울의 마음이 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에 보면 [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유월절 절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와 고린도의 교인들을 순방하다 보니 늦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변경하여
유월절 후 50일이 지나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가려고 서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계획보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들레네도 들리고 기오도 들리고 사모에도 들리고
밀레도에도 들렸던 것입니다.
바울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만 일 보다 사람을 더 귀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전도 여정을 통해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설교와 바쁜 스케쥴이 아니라
전도와 양육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르느와르>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예도장에서 도자기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손가락에 급성관절염이 생겨서
더 이상 손에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화가가 손에 붓을 잡지 못한다면 완전히 절망입니다.
그러나 르느와르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손에다가 붓을 붙들어 매었습니다.
그 전보다 더 열심히 각고의 노력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손이 건강할 때보다 손을 못 쓰게 된 이후의 작품이
더 명작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후에 <르느와르>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눈과 마음이 가장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합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의 열정이
명작을 만들어 내었다는 말입니다.
고후11:24-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받고 고생을 했지마는
그리고 몸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지마는
바울의 열정이 환경과 처지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신형엔진 복음의 폭주 기관차가 되어
기어코 로마에 까지 복음을 들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의 열정이 많은 동역자를 일으키게 했고
바울의 열정이 불행에 빠진 유두고를 행운아로 일으키게 했다는 것입니다.
열정 메이커 바울 - 신형 엔진 바울
이 바울의 열정 - 오늘 우리의 열정이 되어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하나님의 열정 메이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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