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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사함이 없는 사람 (요 1: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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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은 나주 봉황에 심방을 가서 교우가 살고 있는 옆집을 들어가본적이 있습니다. 그 집은 어떤 집이였느냐 하면, 살던 사람들이 집을 비워두고 도시로 떠나가버린 집이였습니다. 폐가의 문은 떨어저 누워있고 창문은 떨어져 벽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무로된 기둥은 삭아서 기울여져 있고, 천장을 가로지른 대들보도 내려 앉고, 지붕도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집 전체를 두루고 있는 거미줄을 볼 수 있입니다. 마당은 대나무가 먹어들어오고, 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장독과 그릇들이 깨어져 있고 농기구들은 녹이 슬대로 슬어서 버려져 있습니다. 꼭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입니다.
  그와 반대로 그 집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집사님이 살고 있는 집은 전혀 다릅니다. 집은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모든 것은 제대로 정돈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지만 사람 사는 냄세가 납니다. 잠시 쉬어가고 싶은 그런 집입니다.

  이 두 집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똑같은 집인데 왜 저렇게 다른 것입니까? 왜 하나는 섬뜻해서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은데, 왜 다른 하나는 들어가 쉬고 싶은 것입니까?
  왜 한쪽 집만 거미줄이 쳐져 있고, 왜 한쪽 집만 대들보며 기둥이며 지붕이 내려앉고 삭았고 기울어 쓸어져가는데 왜 한 쪽 집은 여전히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습니다. 똑 같은 집 두채 중에 하나는 사람이 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는 사람의 집이고 하나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흉가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야 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 집이고 귀신이 살면 흉가이고 소가 살면 외양간이고 개가 살면 개집이고 닭이 살면 닭장이며 돼지가 살면 돼지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집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지으실 때 먼저 흙으로 육체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 몸에 영혼을 집어넣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영혼이 살면 사람이 되지만 도깨비가 살면 도깨비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영혼이 살지 않으면 삶의 기둥이 삭고, 대들보가 기울어지고, 천정이 내려 앉고, 거미가 들어와 거미줄을 치게 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흉가가 되듯이 영혼이 살지 않는 인생도 추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영혼이 살지 않으면 지나가던 귀신이 들어와 살게 됩니다.
  남자들의 마음에 늑대가 살고 있으면 늑대인간이 됩니다. 여자의 마음에 여우가 살면 여우인간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지금 누가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에는 지금 무엇이 살고 있습니까? 혹시 마음에 밤낮 울부짖는 사자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배고픈 하이에나 한 마리 키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란 사람을 보시자 마자 "이 사람은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인었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마음에 늑대가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난 사자도 배고픈 하이에나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간사'라는 말은 간교하고 사악하여 남을 속이는 재주를 말하는데 곧 낚시꾼이 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달아 흔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간사함이라는 것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나다나엘은 그런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교활하거나 속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위선도 없고 간사함도 없기 때문에 성품은 맑은 물처럼 투명했습니다. 그는 어떤 말에 대하여 심리적으로 분석하지도 않고 숨겨진 동기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교활함과 위선에 진노하고 꾸짖은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의 성격을 속이지 않고 숨겨진 동기가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나다나엘은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거짓과 악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간사함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사는 지혜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꿰뚫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간사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좋아하시는 자는 간사함이 없어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시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하셨습니다.

  사람이 간사함을 마음에 품고 살면 간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마음에 품고 살면 욕심꾸러기가 됩니다. 더러운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살면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간사함이 없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속임을 당하고 어리석다고 비난을 받고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를 알아주십니다(시32:2, 마5:8). 그리고 처음에는 아닐지 모르지만, 몇번은 아닐지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사람들도 그 진가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마음에 변화를 받아 간사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저 사람 참으로 진실하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께서 주심' 즉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간사함이 없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반대로 간사함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충만한 사람은 간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간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주님을 의뢰하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살려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진실한 자를 하나님이 알아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진실할 수 있고 손해도 감수하며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신앙인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여러분은 정직하고 진실하고자 애쓰며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분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사하게 하는 사단을 내 마음 속에서 살지 못하게 하고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간사한 사람과 동행하는 것을 삼가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그 간사함에 의해서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 26: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했습니다.
  세상에는 간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여 나를 간사한 사람들의 혀와 손과 그 눈에서 건저주시옶소서 여러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하나님! 종에게 간사함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 한광의 모든 식구들에게 간사함이 없게 하여주시옵서
태중에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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