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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결산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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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 달 12월은 한해를 결산하는 달입니다.
한해를 결산할때가 되면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많은 긴장도 하고 감사도 합니다. 지난 한해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잘한점 잘못한점 모든 것들이 계수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교회들이 결산을 할때에 2가지로 합니다. 하나는 재정이도 다른 하나는 인원입니다.
먼저 우리 교회는 재정결산을 지난 11월 말일까지 재정을 근거로 해서 결산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불경기인 이때에 우리가 올해 세운 예산 목표를 달성하는 결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장도 11월까지 결산을 보고 이제 오늘부터는 새로운 목장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지상의 가견적인 교회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근거를 중심으로 결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재정이 더 들어왓는가? 얼마나 사람들이 더 채워졌는가? 이런 눈에 보이는 근거를 중심으로 결산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외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결산은 결코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근거를 결산할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면서 결산을 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결산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 앞에는 3년동안 주님과 사역을 하였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제자들과 함께 결산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결산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비유하실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나무가 바로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포도나무는 열매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꽃의 아름다움이 용도가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땔감으로 쓰이는 나무도 아니고 좋은 재목으로 쓰이는 용도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그 포도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포도열매를 맺을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오직 열매맺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매맺지 못했습니다. 열매없는 포도나무처럼 열매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신약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포도나무의 본체가 되어주시고 택한 자기 백성들을 가지로  삼아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그리고 우리가 그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 열매를 저와 여러분이 맺어야 합니다. 이것은 맺어도 그만 안맺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맺을 수 있습니까?

1. 예수님의 결산은 인격의 열매로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두종류의 가지가 있다고 하십니다.
2절에 보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가 있고 과실을 맺는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우리 주님께서는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이시고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과실을 위해서 “제해버리시고”“깨끗케하시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에 대해서 “제해버리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하여버린다”는 경고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나무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라고 책망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 이사야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라고 합니다.이스라엘이 열매맺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극상품 열매를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심었는데 들포도를 맺었습니다.하나님이 기대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강하게 화를 내시고 징계하십니다.그렇게 하신 이유는 열매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하여 버리고 더욱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거룩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열매를 바로 맺지 못하는 성도를 향하여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12:6-8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징계하시면서 우리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서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포도나무가지요 주님은 본체입니다. 포도나무가지가 포도열매를 맺듯이 본체이신 우리 주님께 속한 우리는 주님닮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가 어떤 열매입니까?
사랑의 열매입니다.요한복음 13-15장에 이르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합니다.
가장 강조되는 열매가 바로 사랑의 열매입니다. 심지어 요한복음13: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합니다.신앙에 있어서 사랑은 필연적으로 맺어야 할 절대적인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는 열매는 “기쁨”의 열매입니다.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믿고 나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것으로 잃어버리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입니까? “평안”의 열매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결국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인격의 열매입니다.
갈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입니다. 예수님믿고 성품이 바뀌어지고 새사람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런 주님의 참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우리의 기준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격을 항상 주님께 고정시키시기를 바랍니다.내가 세상에서 노동일을 한다고 해도 인격만큼은 주님을 기준으로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서는 초등학문밖에 못하엿지만 말과 지식과 수준은 우리 주님께 두고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수준있는 주님의 사람들로 세워져가기를 바랍니다.
어느마을 산마루에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얼굴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큰 바위에 얽힌 전설이 그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어떤 장군이 나타나서 마을 전체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큰기대를 하고 그 장군을 바라보았지만 얼마되지 않아 그 장군은 실망만 주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정치가도 나타났고 시인도 나타났지만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행복을 가져다 줄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으려나보다며 희망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못습을 오랬동안 보고 자라나던 그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위로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모습이 저녁 노을에 비추이자 마을 사람들중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어네스트를 보세요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의 얼굴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바로 마을 토박이인 어네스트였습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산마루바위의 얼굴을 보고 그 바위를 닮은 사람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자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바위의 얼굴을 닮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청교도 작가인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의 얼굴’입니다. 작자 호돈은 이 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의 꿈이 예수님을 닮은 것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도를 닮은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어떻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산을 맺을 수 있습니까? 순종을 통해서 맺어집니다.
요한복음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여기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 본체와 동거할 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잇을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 주님께 연합하는 일 이것이 성도들에게는 순종하는 일입니다. 순종은 주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싸움거리는 포도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므로 그리스도를 더 깊이 깊이 배워나가는 작업이 신자들에게 있어서 일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훈련거리요, 목표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이란? 우리의 선행도 아니요, 우리의 열심도 아니요, 우리가 갖다 바치는 어떤 봉사도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배울 것이냐인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한번 붙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매일 지속적으로 주님게 붙어있는 순종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동거하는 삶은 지속적인 순종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주님께 순종하는 삶은 괴롭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주님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가 마치 주인과 종처럼 수직적인 관계로 나가시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요한복음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종이라는 관계로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관계로 대접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주인이 종에게 어떤 명령을 지키라고 하달하는 정도의 관계가 아닙니다.친구와 같은 밀접한 관계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즉,이 사랑이 요구하는 계명을 지키는 문제는 주인이 종에게 내린 어떤 명령을 지키듯이 지키는 성질의 수준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높은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된 밀접한 친구의 관계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주님에 지속적으로 동거하면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내가 내 안에 주인으로 있으면 주님이 주인 될 수 없고 그러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기까지 내가 내인생의 주인이었습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내 몸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고 내가 주인이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내가 내인생의 주인이 되니까 내이상 수준이 변하지 않고 삶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내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내마음의 집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들아와 중심이 되면서 그때부터 내 인생 속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그분이 내안에 주인이 되시면서 내마음의 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순종은 100% 온전한 순종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순종합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우리 속에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이 지속적인 신앙의 순종이 지금 당신에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경우에 순종의 어려움을 경험하실 것입니다.순종해야 한다는 것 다 압니다.그런데 10% 순종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50% 순종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100%의 순종을 원하십니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께 10퍼 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 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 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우 리에게 불리하거나 손해가  될성싶 으면 순종하지 않고 유리하면 순종 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 다.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늘어놓 으면서 자꾸순종하기를  지체하면  그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이런 멋 진 말이 있습니다.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의 동생이다."우리가 이런  말을 많이 듣지 않습니까? 순종이 라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번역 선교사 타우센트라는 분의 전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타우센트가 남미에서 전도를 하면서 한 원주민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 젊은이가 결국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사역을 하던 이 전도자 청년이 어느날 갑자기 타우센트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사표를 내겠습니다.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수년간 선교 열매였는데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타우센트 선교사님이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는가?”
“전도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어서요.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이제 사람들의 욕설과 고함소리와 비난과 비웃음들을 모든 것을 더 이상 견딜수가 없어요.그리고 사실 제가 아쉬운 것이 뭐가 있어요?”
타투센트 선교나님은 이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자네 예수님을 영접하고나서 얼마후에 나에게 찾아와 ‘주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저를 부르십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표를 받을 수 없네.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라네.자네는 지금 내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사표를 내게”
그러자 이 청년은 선교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주님께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안받으실 것같은데요”
그러자 선교사님이 고함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사표를 받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아직도 자네를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젊은이는 눈빛이 빛나면서 말을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맞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복음 전도의 길을 순종하면서 걸어갔다고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열매가 나타납니다.

고난이 잇다고 멈추면 안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중단하면 안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끝가지 순종하면서 주의 길을 걸어갈 때 주님께서 결국은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지속적으로 순종하여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삶의 결산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 바른 결산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8절에 2가지 결과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과실을 많이 맺으면 먼저 내아버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열매를 맺는 그 사람이 바로 주님의 제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과실을 맺으면 가장 먼저 좋아하는 분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농부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매맺기를 가장 소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매를 맺을 때에 하늘에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길러서 언제 기쁘십니까? 어렸을적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말도 하고 도움도 주고 효도할때에는 얼마나 마음이 좋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키워놓았더니 매일 나가서 사고만 치고 부모 욕만 듣게 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자랑이 됩니다.
그리고 과실을 맺어야 주님의 제자라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주님 앞에 지금 제자들이 있는데 주님을 떠난 제자도 있습니다. 바로 가롯유다입니다. 가롯유다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주님이 발을 씻어준 후에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는 3년동안 주님과 동거동락하면서 제자처럼 행세하였지만 진정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제자 중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가롯유다의 실패와 배신을 대하는 우리 주님의 심정은 어떨까요? 저도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마지막시간까지 다하고 나면 열매를 맺으면서 남아있는 분들에 대한 기쁨과 아울러 떨어져 나간 분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따까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결산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주의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미혹”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가롯유다와 같이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큰 미혹은 욕심일것입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한번 돈에 욕심을 부리고 마음을 빼앗기면 믿음의 결산 주님의 제자로 서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열매를 맺고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세움을 받으시면서 주님의 칭찬의 결산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가는 말 )
한해를 결산하면서 나는 주님의 결산 앞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날마다 주님께 순종하면 주님의 열매가 나를 통해서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닮은 진정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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