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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리아의 믿음 (눅 1: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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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 인류가 기뻐하고 감격해야 할 대강절(Advent)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대강절(Advent) = adventus(‘옴’ ‘도착’) = 그리스도의 오심
이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합니다.
한때 이 말은 성탄절에만 국한되어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주님의 탄생을 미리 기대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것을 본질로 하는, 성탄절 전 4주일을 포함한 절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오늘부터 12월 3째 주까지가 대강절이 되는 것입니다.
대강절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대림절(待臨節), 강림절(降臨節) 이라고도 합니다.
이 절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이 예수님의 고난을 준비하는 어두운 기간이라면 대강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밝은 기간입니다.
대강절 =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
이 절기는 초대교회 시대에 이미 기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경건하게 준비하며 기쁨과 소망을 크게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강절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내용의 설교를 전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에 차고 넘쳐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11월 24일에 지키는데 대대적인 행사를 벌립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들은 성탄절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산타크로스 복장을 하고 눈썰매를 만들어 타고 다니면서 축제시즌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 어느 시골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한 턱 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 아들은 실의에 빠져서 자취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인생을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골집에서는 잔치를 벌렸습니다.
신문에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에 자기 아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동명이인인 다른 집 아들 이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알고 보면 기뻐할 일이 아닌데 기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뇌물을 받다가 줄줄이 교도소로 가는 고위 관리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뇌물을 받았을 때에는 기뻤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그 때 기쁨은 헛된 기쁨입니다.

요즘 우리는 황우석 교수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생명윤리 지키느라 이 분야에 대하여 깊이 연구를 안했는데 우리나라의 황우석 교수는 그런 것에 대해 아랑곳 하지 않고 연구해 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것인데 이것이 공개되면서 비난거리가 되었고 결국은 세계적인 불법 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성은 한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높아진 것만큼 깊숙이 떨어졌습니다.
하늘의 별이 떨어지듯이 말입니다.
국제 법에 그런 법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사죄하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없이 참으로 멋있는 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의 참신한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시인하고 물러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훌륭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낸 하나의 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이 반대 현상도 있습니다.
기뻐해야 할 일인데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업무로 외국에 가야 하는 사람이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사업상 크게 손해를 보게 되었고 그 손해는 불행과 슬픔을 갖다 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사람을 실상은 기뻐했어야 하는데 슬퍼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비행기 사고가 날 때 마다 꼭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씩 생깁니다.

우리가 불행한 일이라고 애통해 하는 많은 일들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실상은 우리에게 장차 큰 기쁨을 주는 복된 일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우리 일생에 아슬아슬 했던 일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내가 원하는 많은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만일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 결과 나에게 미칠 불행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많습니다.

***** 서울 신촌에서 어느 분이 김밥 집을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참 좋은 일이지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그날 번 돈을 가방에 넣고 가다가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쁨인줄 알았더니 이것이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반대로 당장은 슬픔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후 에 알고 보니 이것이 굉장한 기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큰 불행을 당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사실 엄청난 비극입니다
불법에 의해서 사형에 처해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또 가문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러나 처녀가 혼자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여인은 이미 약혼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약혼한 여자가 외간 남자와 임신을 하게 되면 돌에 맞아 죽거나 오물통에 여자를 넣고 목에 줄을 매어 죽을 때까지 끌고 다녔습니다.
이런 처형 방법이 미쉬나 법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건이 얼마나 슬픈 일이었겠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자기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러 먼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천사가 친척 엘리사벳 아주머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10킬로미터나 된 먼 길을 걸어서 그 집에 갔습니다.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여 6개월이 지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크게 기뻐합니다.
엘리사벳이야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당연히 기뻐해야 겠지만, 처녀의 몸속에 아이를 갔고 있는 마리아의 임신은 기뻐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데 두 사람의 기쁨은 마리아의 태속에 든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자라고 합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면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42)
마리아도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46-47)

왜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 불행한 사건을 두고 이 두 사람이 이렇게 기뻐합니까?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1. 이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인류 역사에 한 번 밖에 없었던 일이 일어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천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이 아무리 불행해 보이고 절망적이어도 그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라면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불행과 실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불행은 행복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눈물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모든 역사가 우리 개인의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사건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약혼자인 요셉에 어떻게 나올지도 모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키울 수 있을 런지 대책도 서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하면 약혼한 처녀가 임신을 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을 위험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면 하나님께서 그일 때문에 발생한 모든 문제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위험이라면 안전하게 벗어날 방법도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픔이라면 위로도 준비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고 여러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불행한 사건 속에 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ㅣ

2. 자기 뱃속에 든 아이가 메시야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천사는 마리아 뱃속에 든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남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엘리사벳은 43절에서 마리아를 보자 “‘내 주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야임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마리아 역시 태 안에 들어계신 분이 메시야이신 것을 믿었기에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내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하고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우리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어떤 형편에 있든지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곤경에 빠져 있어도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큰일을 행하셔서 벗어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배에 물이 차고 배가 가라앉기 직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 안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배 안에 게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깨우자 일어나셔서 성난 바람과 파도를 꾸짖었습니다.
순간, 바람과 물결은 잠잠해졌습니다.
폭풍이 배를 뒤집을 것 같이 포효했지만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날 주님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마리아의 태에만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몸을 성전 삼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곁에 갈 수 없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해 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이상 절대로 망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파도도 여러분을 덮을 수 없고 아무리 큰 고난도 여러분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나는 약해도 예수님은 강하시고 나는 미련해도 예수님은 지혜로우십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행복을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기 때문에 처녀의 뱃속에 아이를 잉태 시킬 수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기 안에 계신 분이 메시야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 믿음은 늘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마리아는 흔들리는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3개월을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6개월 때 엘라세벳을 찾았는데 3개월 후에 떠났으니까 엘리사벳이 임신 9개월이 되도록 같이 지냈습니다.
나이 많은 엘리사벳은 어린 마리아를 위로하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부면에 믿음의 사람들을 많이 두고 살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임한 몸으로 믿음의 사건을 보기 위해서 110km나 되는 긴 여행을 했습니다.
여자 혼자 몸으로 긴 여행을 하기가 쉬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졌다는 천사의 말을 확인하고 그 사건을 통하여 자신에게 말씀한 천사의 말을 더 확실히 믿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어떤 때는 강한 믿음이 옵니다.
그럴 때에 그 강한 믿음의 상태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일을 만났을 때에 믿음 없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 더 힘이 듭니다.
“너 교회를 다니니까 그런가보다 어디 가서 점이라도 한 번 보아라.”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믿음이 약한 사람은 일시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더 큰 복 주시려고 시험하느라 그럴 거야. 조금만 참고 기다려봐”하고 손 꼭 잡고 기도해주면 모든 근심이 일순간에 사라집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나야 합니다.
믿음의 사건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마리아도 3개월 동안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의 현장에 있으면서 때로 흔들리는 그 믿음을 세우고 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3개월 동안 있으면서 기도하고 서로 위로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겼습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불행한 사건을 통하여 서 이루어졌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했습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천사들이 말을 믿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에 가장 불행한 사건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육신의 눈으로만 보면 다 불행해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데도 한 여인에게 일어난 불행해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 뒤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눈물겹고 고통스러운 사건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이 믿음을 갖고 싶지만 우리의 믿음이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건들을 늘 보아야 합니다.
믿음을 키워줄 말씀들을 늘 들어야 합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불행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을 보게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지금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불행은 행복으로, 모든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출세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출세란 것이, 얼마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박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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