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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지개, 영원한 언약! (창 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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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태평양 한 복판에 <투발루(Tuvalu)>라는 이름의 섬나라가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1만 명 조금 넘는 아주 작은 나라, 섬의 최고 해발이 4.5m, 평균 해발이 3m 밖에 안 되는 바다 위의 작은 섬나라, 적도 부근에 있으면서도 그리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던 복 받은 날, 그런데 이 나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아 모든 바다의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면서, 나라 전체가 바다 아래에 잠길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웃 섬나라의 섬 두 개가 얼마 전 바다 속으로 잠기는 것을 목격한 후로는 전 국민이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이에 투발루 공화국의 총리는 주변 여러 나라에 자기 나라 전 국민을 이주민으로 받아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마침 뉴질랜드에서 그 요청을 수락하여, 지난 2002년 이후, 순차적인 이민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많은 환경학자들은 투발루 공화국이 지구 온난화의 첫 번째 희생 국이 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는데요, 아마 무지개가 사라진 지구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합니다.

# 2

언제부턴가 서울 하늘에서 무지개가 실종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산지 30년이 넘도록 무지개를 본 기억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무지개가 없는 서울 하늘,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지는데요, 이유인즉, 서울 하늘의 공기가 너무 오염된 데다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에 미세 먼지까지 겹겹이 쌓여, 두꺼운 스모그 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문제는 비가 오지 않아 무지개가 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일이 잦아진 오늘인데도, 어인 일인지 비 갠 후 무지개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특히, 무지개는,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기에, 무지개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겐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잃어간다는 뜻이요, 다시 심판이 임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서울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기 힘들어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 3

노아는, 평생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의 후손입니다.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로서, 그의 열조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라고 전하고 있습니다(창 6:9). 해서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던 인물입니다(창 6:8). 문제는 노아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의 마음엔 항상 악한 생각뿐이요(창 6:5), 저들의 행위는 패괴하여 강포한 일뿐이었습니다(창 6:11). 결국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신 하나님, 마음에 근심하시다가, 노아를 불러 최후통첩을 하십니다(창 6:6-7).

창세기 6장 13절 이하, 하나님의 탄식을 함께 들어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들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코로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더 이상은 두고 보지 못하시겠다는 겁니다. 생명 주신 것을 후회하신다는 겁니다. 해서 다 죽이시겠다는 겁니다.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저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120년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기간 동안 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했어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받고서도 회개할 줄 모르던 당시 사람들, 결국 홍수의 심판을 받아 다 죽고 맙니다.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 허락하신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게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가장 안 되고, 가장 불쌍한 인생들이지요.

감사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노아만은 살려 주셨다는 점입니다.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두신 건데요, 6장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방주에 들어가라!> 20절 맨 뒤,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의 응답인데요, 6장 22절, 함께 읽으며 노아의 아름다운 순종, 함께 배우고 싶습니다. / 창 6:22 / (읽기)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거든, 즉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그리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다 준행하시기 바랍니다. 즉시 순종, 명령하신대로 준행, 홍수까지도 이기게 해 주는 영적 힘입니다. 부디 다시 오시는 주님, 영접하시고, 그 주님의 음성 들으시고, 그대로 준행하여, 노아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 준행하여 큰 복 누리시기 바랍니다.>

# 4

그런데요,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노아 가족들에겐 정작 비가 그친 다음이 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긴 했는데, 방주에서 나온 저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 비를 경험본 적 없던 저들에게, 40일을 밤낮으로 쏟아지던 엄청난 비 자체가 큰 충격이었습니다. 평생 새벽에 내리는 이슬만 의지하고 살던 저들이었기에, 비가 그친 후의 이 엄청난 물을 어찌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쳤지만, 저들 마음엔 여전히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난생 처음 체험한 엄청난 홍수로 인해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요?

노아의 가족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들에 나가 평안히 일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람소리만 들려도 방주를 향해 뛰었습니다. 저 멀리 먹구름만 보여도 하던 일 내려놓고 다시 방주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르는 큰 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저들의 삶이 위축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의 가족을 바라보시던 하나님,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노아를 불러 언약을 세우시며, 그 언약의 징표를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세워 주신 언약의 내용, 직접 들어보실까요? / 9:11-13 / (읽기) /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물로 땅을 침몰치 않을 거야, 이 약속은 영원까지 유효한 약속이야, 약속의 징표로 내가 무지개를 걸어 줄게, 노아야, 걱정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다시는 안 그럴게~!>

홍수 심판 후에 안정을 찾지 못하던 노아의 가족들에겐 참으로 귀하고 복된 언약이었습니다만, 그러나 한번 놀란 노아 가족의 공포와 두려움을 다 지우기엔 무지개 하나로 충분치 않았습니다. <저 무지개가 정말 언약의 징표일까? 정말 저 무지개 믿고 살아도 되나?> 반신반의하는 노아, 그런 마음을 헤아리신 하나님, 바로 이어서 다시한번 그 언약을 확증해 주십니다.

9:14-16 / (읽기) / 13절에 <내 무지개>라는 단어 동그라미, 16절 맨 뒤의 <영원한 언약> 동그라미, 둘을 하나로 붙여 읽으면 오늘의 말씀 제목이 되는군요. <무지개, 영원한 언약!>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십니다.

그러자 이제야 노아의 가족들이 안심합니다. 이젠 바람이 불어도 무지개를 바라보며 그 바람을 이겨냅니다. 먹구름이 몰려와도 무지개를 기억하며 방주로 숨어들지 않습니다. 저 하늘에, 아니 내 가슴 속에 영원한 언약의 징표인 무지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들은 무지개의 언약을 가슴에 새기고 모든 환경을 이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5

그런데 문제는 노아의 후손들이 다시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은 저들인데, 어떻게 건져 놓은 저들인데, 그러면 이젠 무지개 언약 가슴에 안고, 다시는 죄 짓지 말아야 할 저들이, 창세기 11장에 가서, 그만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죄악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 그래도 참고 기다리시며, 무지개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인간의 교만을 보시면서도, 물의 심판 거두시고 언어의 혼란으로 대신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들에게 심판을 유보하다 보니, 저들이 회개하기는커녕 더욱 패괴하고 강포하여, 이번엔 인간의 죄악이 홍수가 되어 밀려오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의 심판을 거두시니, 인간들 스스로 죄를 지어, 죄악의 홍수 속에 스스로 빠져 죽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벨탑에서 시작된 죄악의 악순환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역하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엄청난 재앙의 홍수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을 위시해서 최근 조류 독감에 이르기까지, 그 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희한한 병들이 몰려와 엄청난 생명들을 앗아갑니다.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전쟁이란 홍수도 그칠 날이 없어, 이 또한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갑니다.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자연 생태계의 파괴는 엄청난 자연 재해가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인간이 빚어 만든 음란 귀신들까지 얼마나 범람하는지, 이젠 음란의 홍수가 우리네 안방까지 넘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우린 속수무책입니다. 대책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무지개의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닐진대,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을진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성화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 그 날,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 되어 저 천국에 들어가야 할 터인데, 그만 그리스도인들마저 죄악의 홍수 속에 떠 밀려가는 비참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지개를 상실한 세속 도시의 불쌍한 사람들, 온갖 죄악의 홍수 속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아를 발견하기 힘든 세태를 살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노아가 필요한 시대인데, 노아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믿는 성도들마저 내가 먼저 노아가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적인 방주만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무지개 언약을 구하는 대신 인간의 힘으로 방주를 만들어 이 홍수를 피해 보겠다는 심산이지요.

어떤 때로 국가가 나서서 방주를 만듭니다. 과학자가 나서서 방주를 만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군인들이 나서서 방주를 만들겠다고 장담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만들어 놓은 방주가 영원한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의 홍수 앞에선 그 어떤 국가도 인간을 구원하는 방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선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도, 그 어떤 금융 상품도, 영원한 방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간들이 쌓아올린 과학적 업적이 우리를 구원할 방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방주는 방주일 뿐입니다. 방주 자체가 영원한 피난처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방주는 잠시 홍수를 피하는 방주일 뿐입니다.

# 4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답은 간단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피해 숨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관자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다시 영원한 언약의 징표인 무지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쩌면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왜? 우리 시대의 죄악이 노아 시대의 죄악 보다 훨씬 더 악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죄질이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죄질로만 치자면, 노아 이후 세대가 노아 이전 세대 보다 훨씬 더 사악합니다. 무지개 언약이 없었더라면, 벌써 물이나 불로 다 죽여 마땅한 죄인들인 것을,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 노아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 무지개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멸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겁니다.

문제는 인간의 죄질이 나빠진 이유로, 구름 사이의 무지개만 가지고는 저들을 구원할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무지개 언약이란 것이 쌍방적인 것이어서, 인간은 인간대로 죄를 짓지 말고 의롭게 살아주어야 할 터인데,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데, 인간은 계속 죄를 지었던 까닭입니다.

그래도 인간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의 무지개를 골고다 언덕에 다시 걸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모든 이에게 하나님은 보혈의 무지개를 허락하십니다. 이제 우리 가슴 속엔 십자가 보혈로 빚어진 구원의 무지개가 들어 있습니다.

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그렇습니다. 온간 죄악의 소나기가 쏟아진다 해도, 죄악의 물결이 홍수가 되어 몰려온다 해도,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겨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미 세상을 이겨 승리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보혈로 구원의 무지개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 어떤 죄의 권세도, 사망의 권세도, 우리를 실족케 할 수 없습니다. 우린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주의 제자이며, 우리에겐 보혈의 무지개, 구원의 무지개, 영원한 언약의 무지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 5

간증 / 꼭 1년 전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저는 괌 트레스 디아스 여자 제6회의 영적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동광 제단을 한 주간이나 비워야 하기에, 떠나기 전날까지 무척 바쁘게 일했었습니다.

괌으로 가는 비행기는 자정 12시 넘어 떠나는 것 밖에 없더군요. 하는 수없이 그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요. 그런데 이륙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한이 나고, 떨리고, 그런데도 식은땀이 나고, 스튜어디스가 와서 응급 처방을 해 주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를 순 없어, 이를 물고 참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이더니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꼭 이 길로 천국으로 갈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기도 밖에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해서 비행기 의자의 팔걸이를 꼭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무언가 뜻이 계셔서 부족한 종을 동광에 보내시고, 이제 괌을 다녀오게 하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벌써 저를 데려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아버지 뜻이라면 지금이라도 천국 가겠지만, 아버지, 그래도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참에 말고, 다음에 데려가시지요.>

이렇게 떼를 쓰는 동안, 몸도 마음도,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괌 트레스 디아스 여자 제6회의 영성훈련, 감사한 것은, 괌 트레스 디아스 역사상 가장 큰 은혜를 받은 훈련이었다고, 입을 모으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괌을 떠나오기 전날, 잠시 바닷가를 산책하며, 명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바다 위에 정말 아름답고 큰 무지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동광 트레스 디아스를 열게 해 주신다!>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영성 훈련을 통해 동광 공동체가 할 일이 많다 하셨습니다.

겁부터 났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본부에서 허락할까? 봉사 팀을 모을 수 있을까? 재정은 확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모든 염려와 걱정, 다 내려놓게 하시더니, 마침내 만 1년 만에 동광 트레스 디아스 제1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을 지금은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이 일을 하게 하시는지, 솔직히 다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동광을 사랑하시고,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주신다는 점입니다.

동광 트레스 디아스를 통해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에, 희망의 무지개를 다시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동광 트레스 디아스를 통해 괌 공동체가 살아 날 줄로 믿습니다. 동광 트레스 디아시를 통해 극단 미리암이 새로워질 줄로 믿습니다. 엄청난 큰 역사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 6

사랑하는 여러분, 무지개 언약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다보면 질병의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고, 실패의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죄악의 먹구름이 내 인생을 뒤덮고, 사악한 영의 공격이 나를 실족케 하려고 덤빌 때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갈보리 언덕의 무지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만을 바라보며 두려워 떨곤 합니다. 노아네 식구들처럼 바람만 불어도, 먹구름만 보여도, 빗방울만 떨어져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방주로 뛰어 들어가 숨곤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경을 이겨 승리하게 해 주시는 언약의 무지개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환경 위에 하나님 주신 무지개가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환경 대신 우리 주님 당신의 보혈로 걸어주신 구원의 무지개, 언약의 무지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무지개다리 건너 주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언약의 징표로 다시 오시는 주님과 함께, 구원의 무지개를 가슴에 품고, 대림절기, 모든 환경을 이겨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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