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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꾼모집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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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36 세란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천재성을 발휘해 6 살 때부터 오르간과 바이올린 연주에 탁월했고 미뉴에트까지 작곡했습니다. 8 살부터 교향곡을, 11 살에는 오리토리오, 12 살에는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두 626 곡이나 남길 수 있었습니다.

대제국을 이룬 알렉산더 대왕도 33 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정복한 영토는 지금의 그리스, 터어키,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의 일부,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입니다. 그가 인도 정복에 나설 때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짧은 생애에 이런 일을 한 것은 그가 20 세에 일찍이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13 년이란 정복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일을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도 33 세란 젊은 나이에 사역을 끝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실제 일하신 기간은 3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공생애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삼중직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 이 세 가지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 것은 교육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선교입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것은 치유입니다. 예수님은 교육, 선교, 치유 이 세 가지 일을 주로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소개해 놓고 일꾼을 모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짧은 세월 동안 하셨기 때문에 이 일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아직 예수님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가지고도 너무 모자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추수한다는 것은 종말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추수는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종말이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일이 시작됩니다. 추수란 쭉정이를 버리고 알곡을 모으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제자를 모아서 이 천국의 사역을 맡기십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약한 자를 고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는 이런 일을 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이일에 자원하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치시는 일을 가장 집중적으로 하셨습니다. 기적이나 능력을 베푸시기보다 이 가르치시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인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저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땅의 진리가 아니라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을 자세히 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권세란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류동에 가면 유명한 이단이 있습니다. 성전의 규모가 어찌나 큰지 모릅니다. 그런데 강단에 온갖 장치를 해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주가 등단을 하면 조명과 음향을 조정해서 마치 신이 강림하는 듯 연출을 한다고 합니다. 유니폼을 입혀놓은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해서 허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면 구경하는 이들도 저절로 조아려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교주의 말 한마디면 사람들이 꺼뻑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를 위해서 그런 쇼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가르치시기 위해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습니다. 대개 권위 있는 사람은 가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와서 배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와 때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단 한 명이 있어도 천 명이 있어도 한 결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삼 년의 공생애는 거의 여행이었습니다. 복음 전파와 가르침을 위해서 사람을 찾아 마을 마을을 다니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신지를 보여줍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주력합니다. 그 이유는 우선 진리를 알아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선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생깁니다.

세상에는 왜곡된 비진리가 많습니다. 바르게 진리를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말씀을 배우지 못하면 신앙이 병이 들고 맙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가르치는 자가 필요합니다.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진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남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능통하신 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구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을까요?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12 살에 성전에서 성경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듣기도 하며 묻기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렸을 때부터 성경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미 상당한 성경 지식과 해석이 가능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신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알수록 겸손해집니다. 그런데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꼭 교만하게 가르칩니다. 자신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교회의 골칫거리가 됩니다.

늘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기를 즐기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진리를 교우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겸손한 교사가 되십시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 전파는 가르치시는 일과 조금 다릅니다. 복음 전파는 선포입니다. 가르침은 뜻을 풀어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선포는 일방적입니다. ‘예수를 믿으시오. 당신은 죄인입니다. 회개하시오.’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선포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 선포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 선포는 엄한 명령입니다.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믿지 못하고 거절하면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전도는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쳐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사이렌과 같습니다. 소리를 듣고 반응하면 삽니다. 무시하면 그대로 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서울 동대문 동문시장에 불이 났습니다. 한 밤중에 일어난 화재라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찍 불을 발견한 한 아주머니가 이웃 주민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55 세 강흠자씨입니다. 그녀의 긴급한 메시지로 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빠져나오다가 딸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흠자씨는 5 층 계단에서 질식하여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구조되긴 했지만 아직 중태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딸은 대피하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전도는 화재 대피령을 내리는 것 같이 긴박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피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피하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피하라고 설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긴박하게 살길을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산삼 전도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산삼을 정하지도 못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을 앞두고 틀림없이 멸망하고 말 불신자를 향해 외쳐야 합니다.

여러분!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순종해야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이 비상 사이렌을 울렸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지금 멋진교회는 이 전도의 일꾼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12월 17일 하루카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눠드린 초청카드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전도는 기도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선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면 성령의 감동이 필요합니다.

전도를 할 때는 우리의 힘을 모아야합니다. 교회가 힘을 내서 전도하려고 할 때 혹 구경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힘을 내려는 사람의 힘을 빼는 일입니다. 왜 내가 전도에 소외되어야 합니까? 전도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회입니다. 전도에 성공하면 그보다 더 큰 상급이 없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치료자이십니다.

복음이란 궁극적으로 치유입니다. 복음은 죄로 병든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절망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7:37-38>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 병을 고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환자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환자는 100%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본문 36 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를 잃은 백성이 불쌍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못 만나면 백성들은 고생하고 유리하고 방황합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 병 고침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는 병 고침입니다.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경제를 살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빵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질병에서 놓여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들을 고칠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아끼지 않고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의 문제와 영혼의 문제도 함께 고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각색 병 고치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병에 걸리면 약이나 병원부터 찾아야합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즘은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도 고치지 못하는 병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 때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교회는 여전히 치료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 중보기도실에서 치유에 대한 응답이 많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 치료의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병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위로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권사님들이 교우들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 사역에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함께 울어주고 기도해 줄 사랑의 중보자들이 가득한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2006 년 교회 일꾼들을 세워 임명합니다. 저마다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다. 교회의 일은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도 주님이 주십니다.

저는 지난해보다 이번에 더 많은 일꾼을 세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일꾼을 세울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전이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해나갈 일을 보셨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푸념하셨습니다.

예수님 혼자서 도저히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남겨놓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자 주님은 일꾼을 찾고 부르고 계십니다.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추수 밭으로 달려 나가십시다. 죽은 영혼들을 살리고 저들을 구원하십시다.(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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