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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하면서 전도하라 (마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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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전도하라고 하셨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며 전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미혹(迷惑)의 영(靈)인 귀신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복음을 거부하게 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또 말씀을 들어도 혼미케 해서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불신자들의 마음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복음을 전해야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한 보름 동안에 그 방법대로 VIP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그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꾸짖는 기도, 쫓아내는 기도를 한번 해 보았습니까? 앞으로 계속 훈련해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마가복음 3장 14절과 15절에 보면 세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고, 보내어 전도 하게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열두 제자를 부르사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지 않았습니까? 또 마가복음 16장 17절을 보면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전도자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전도하기 전에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복음을 전해야만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전도할 때에 속에 있는 귀신을 끄집어내고, 쫓아내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샬롬을 축복하라

오늘 본문에는 전도할 때 또 하나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 까지 거기 머물라>고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도대상자’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VIP를 정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아무나 닥치는 대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꼭 전도해야할 사람, 합당한 자를 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고 기도해야 영혼이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합당한 자를 찾아내라고 하셨는데 내가 전도할 대상자를 찾으라는 말입니다. 이제 '나의 VIP',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 전도대상자를 찾고 명단에 써서 조직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2절에는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할 합당한 자를 찾아내고 전도대상자, VIP를 정하면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5절에는 <평안할 지어다>라고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사용하는 ‘샬롬(sāl&ocirc;m)’을 말합니다. 샬롬의 뜻은 평화입니다. 우리교회 2부 살렘찬양대의 명칭도 ‘샬롬’이란 말에서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도 ‘살렘의 도시’, 즉 ‘평화의 도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샬롬’은 단순히 마음속의 평화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샬롬’은 마음이 평안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화평해져서 영적으로, 마음으로 평안해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번영되고, 또한 정치가 안정된 상태, 다시 말하면 영육간의 모든 축복을 고루고루 갖춘 상태를 ‘샬롬’이라고 하는데 그런 샬롬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너희가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사람을 정하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평안을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빌어주라고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져서 마음에는 평화가 넘치고, 몸에는 건강이 넘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안정된 환경이 되도록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축복을 ‘blessing'이라고 하는데 blessing은 ‘bleed-피를 흘리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제물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그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아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가 믿는 신에게 나아갈 때는 짐승을 잡아서 나가야 된다는 것을 이성적(理性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보아도 다 자기 신에게 나아갈 때는 짐승을 잡아서 나아갑니다. 심지어는 사람을 바치는 종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양이나 소를 잡아서 그 피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상적인 관계가 되는데 그런 상태를 ‘blessing-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이 나를 위한 피 흘림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회복된 상태를 성경에서는 ‘blessing-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따라오는 축복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마음에는 평화가 넘칩니다. 몸에는 건강이 회복됩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합니다. 가정이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말하는 ‘샬롬(sāl&ocirc;m)’이고 이런 샬롬을 너희 전도대상자들에게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이 복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주신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시며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그 복을 그대로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아담과 하와에게,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 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아버지를 통하여서 그 자녀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노아는 자녀들에게 축복하고 저주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함을 저주하고 야벳을 창대케 할 것이라고, 야벳이 샘의 장막에 거할 것이라고 축복했는데 오늘 세계의 역사는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함의 후손인 흑인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유럽인의 조상인 야벳은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셈의 장막에 거할 것이라고 했는데 셈이 어느 족속입니까? 아시아 민족 아닙니까? 아시아로 지금 야벳족속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삭이 별미를 먹고 야곱을 축복했는데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한 것이 창세기 49장 전장에 나와 있는데 어쩌면 그대로 되어지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처럼 족장시대는 부모가 자녀를 축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시대, 율법시대가 되어서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민수기 6장 22절에 보면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축복하라, 그러면 제사장의 축복 그대로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떻게 축복하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제사장이 이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면 여호와인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축복권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합니다.’하고 우리가 인사하는 내용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복을 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싶어서 그 복을 주시겠다고 이렇게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3. 믿는 하나님의 자녀를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열두 사도에게 이 축복권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모든 성도들에게 이런 축복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제자들에게, 목사에게만 이 축복권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인 모든 성도들에게도 이런 축복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성도들을 <왕(王)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구약시대의 제사장에게 “하나님이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와 평강주시기를 원합니다.”그렇게 축복하면 복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대로 복을 주시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던지 평안을 빌라고 하신 말씀은 사도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70명을 전도 보내실 때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에게는 남을 축복할 권세가 있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보다도 더 권세 있고 더 존귀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세상을 축복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축복하는 권세가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면 하나님은 그 축복 그대로 들어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6장 20절에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 보냄 받은 화목하게 하는 대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가서 축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 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엄청난 직분, 위치, 신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존귀한 자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줄 아십니까? 내가 나를 볼 때는 때로 내 능력에 한계가 있고, 내 인격에 결함이 있고, 또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티끌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되면 얼마나 나 자신을 자학(自虐)하게 됩니까?
그러나 우리가 내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한번 바라보세요. 자식의 입장에서 자기를 바라보면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면 대단한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세요.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실 만큼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값으로 치면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우리가 백 원을 주고 물건을 사 오면 ‘백 원짜리’입니다. 1억을 주고 집을 사면 ‘1억짜리’ 집입니다. 우리를 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까? 예수님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짜리입니까? ‘예수님짜리’요, ‘하나님짜리’입니다. 이렇게 귀한 우리들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자포자기합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사람은 절대로 자살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나의 신분을 바로 깨닫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위대한 존재임을 깨닫고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닫고 축복하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권세를 주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할 사람에게 평안을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샬롬이라고 총체적인, 모든 것이 갖춰진 축복을 빌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4. 축복의 대상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축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을 축복하십시다. 눈을 감고 내 속에 있는 내 영혼을 바라보고 축복하던지, 아니면 거울을 놓고 거울에 비춰지는 나를 보면서 축복하던지 나 자신을 축복해 보십시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자기 영혼을 깨우면서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아무개야, 너는 복 받을 지어다. 아무개야, 너는 금 그릇으로 사용될지어다. 아무개야, 너는 번성할지어다. 아무개야, 너는 건강할 지어다.” 하고 우리 자신을 축복하게 될 때 그 축복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내가 나를 축복하는 것이나 내가 남을 축복하는 것이나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축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축복하십시다. 부부끼리 축복해 보십시다. 우리 자녀를 축복해 보십시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창세기 27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의 내용입니까? 우리가 우리들에게 이렇게 한번 축복해 보십시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그대로 야곱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했는데 그대로 복을 받게 되어 차자(次子)인 에브라임이 더 번성해서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 대신에 에브라임 이라는 이름으로 대칭되기도 했습니다. 그대로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 가족들을 축복할 뿐만 아니라 나의 전도대상자 VIP를 위해서 평안을 빌고 샬롬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해 주면 다 좋아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기도해 준다고 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기도해 달라고 허락합니다.
어제 아침에도 새벽기도를 마치고 수술하신 권사님이 계셔서 병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자꾸 신경이 쓰여서 기도를 마치고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기도해 드릴까요?”하니까 허락을 해서 축복을 잔뜩 해 주었더니 기도 받고 난 다음에 벌떡 일어나서 합장(合掌)으로 인사를 하는데 아마도 절에 나가는 사람 같아요. 기도하고 나니까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5. 축복의 말들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축복하되 나의 VIP를 만나서 기도할 때에 그 영혼을 위해서 축복을 쏟아 붓듯이 기도해 보세요. 우리가 축복할 때 축복의 말들을 좀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그리스라는 나라는 바울이 전도해서 완전히 기독교화 된 나라아닙니까?
그 지역에 있는 터키도 대단한 소아시아의 나라인데 회교로 넘어가게 되어 참 안타깝지만 그리스는 지금도 정교회가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어제 선박업을 하시는 집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주로 자기 회사의 배들은 그리스에서 주문을 하는데 명명식(命名式)을 할 때는 그리스에서 신부(神父)가 와서 예식을 하면서 명명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의 말들은 전부 사랑을 표현할 때 어떤 수식어를 붙여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자녀를 부를 때 그냥 “아무개야!” 하고 부르지 않고 “내 심장 같은 아무개야! 내 눈동자 같이 사랑하는 아무개야!”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자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부를 때도 그렇게 하는데 집사님을 부른다면 “아무개 집사님!”그렇게 부르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아무개 집사님!”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심장처럼 사랑하는 아무개 집사님!” 그렇게 부르는데 싸우자고 덤벼들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관계가 얼마나 부드러워지는지 거기에는 싸움이란 것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자녀에게도, 부부 사이에도, 믿음의 식구들에게도, 내 VIP에게도 “내 심장처럼 사랑하는 아무개”라고 수식어를 붙여서 이야기 해 보십시다. 그러면 굉장히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 그렇게 칭찬하고 축복해 보십시다.
“내가 집사님 보니까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아요. 집사님을 만나면 힘이 생깁니다. 집사님이 최고입니다.”한다든지 남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말들을 개발해서 우리가 사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공유해서 좋은 축복의 말들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축복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특별히 VIP를 만나면 칭찬하고 축복기도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혼자 기도할 때도 계속해서 그 영혼을 축복해 보세요.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럴 때 그의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서 복음을 던질 때 품고 주님께 돌아와서 구원 얻는 축복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6. 축복의 말들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축복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을 보면 <그 집이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 올 것이다.> 하여튼 평안을 빌고 축복을 빌면 반드시 그 평안과 축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복이 임하든지, 아니면 나에게 돌아오든지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들의 축복의 말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사상 가운데도 언령사상(言靈思想)이 있지 않습니까?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는 자녀들에게 “금년에는 공부 잘 하고, 금년에는 시집가고...” 하며 덕담(德談)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데스바네아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돌아갔으면 좋겠다.”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너희의 말 잘 들었다, 내가 들은 대로 너희에게 그대로 되게 해 주마’ 그래서 그 사람들이 다 죽은 것 아닙니까?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할 때 축복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한 축복의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응답될 줄 믿습니다.
자녀를 향한 축복도, 부모를 향한 축복도, 부부를 향한 축복도, 이웃을 향한 축복도, 특별히 전도대상자를 위한 전도의 말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전도대상자가 그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육 간에 복을 받으면 더 할 수 없는 축복이고,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내게로 돌아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축복받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더 축복하면 그게 더 이익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게 돌아오니까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실제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들,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다른 이단 종파 사람들을 핍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더 좋아합니다. 문 탁 닫아버리고 욕하면 웃고 나갑니다. 아, 오늘도 내가 축복했는데 핍박을 받았으니까 그 축복이 내게 돌아 오겠다하고 더 웃고 갑니다. 그러니 절대로 무반응하세요.
이렇게 좋은 축복을 이제 우리가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이 축복의 권세를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한 구절 찾겠습니다. 시편 35편 13절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도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다윗은 다른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 마치 자기가 병든 것처럼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하나님, 아무개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도다.> 이 기도가 이루어져서 다른 사람의 질병이 나았다는 말입니까, 안 나았다는 말입니까? 이 말씀은 안 나았다는 말입니다. 응답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으니까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겠나 생각되는데 응답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국민일보를 보면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유명한 기도원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어서 거기 한번 가 보았더니 들어가는 입구에다 13절 말씀을 아주 크게 붙여 놓았더라고요. 그 기도원 원장님은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을 했어요. 응답 안 된 기도를 응답 된 기도로 해석을 해서 거기에 붙여 놓은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몇 번했는데 안 받아서 못 고쳐주었는데 지금도 붙여놓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씀은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다윗이 한 기도가 자기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다윗이 한 기도가 자기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그 사람이 질병에서 낫도록 다윗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그 기도를 받을만한 사람이 못 되어서 그 기도를 허락지 않아서 응답되지 아니하고 다윗에게로 돌아 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다윗이 더 건강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축복기도하면 그 사람이 그 복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되면 그 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많이 축복기도하고 평안을 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축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남을 축복할 때 이 복을 다 그 사람이 받으면 어쩌나 아까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세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에서 내가 빈 그 축복대로 받을만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 다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은 내게 돌아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을 저주했을 때 그 저주를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내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남을 저주하지 말고 남을 축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을 축복하되 특별히 나의 VIP를 향해서 평안을 빌고 축복하며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앤서더 벨로이 라는 사람의 이런 글이 있습니다.
식품가게를 하는 주인이 자기 스승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상담을 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지금 가게를 열고 있는 맞은편에 큰 연쇄점이 생겨서 이제 나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10년 동안 이 가게를 잘 운영해 왔는데 큰 연쇄점이 생겨서 사람들이 아마 그리로 갈 것입니다. 나는 지금 다른 기술도 없는데 이제 내 인생은 끝장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스승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하지 말게.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하면 자네가 그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자네가 그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네는 파멸하기 시작하는 것이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매일 아침 자네는 자네 가게 앞에 가서 너의 가게를 위해서 축복하게. 오늘도 내 가게는 잘 될지어다. 내 가게에 많은 손님이 올지어다하고 축복을 하고 딱 돌아서서 그 연쇄점을 향해서도 똑같이 그렇게 축복을 하게.”
“아이구, 선생님, 경쟁자를 축복을 하면 경쟁자가 잘 되면 어떻게 합니까?”
“자네가 그에게 축복하면 그 축복이 좋은 것으로 그대로 자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네. 자네가 만약에 반대로 그를 저주하게 되면 그 저주가 자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네.”
여섯 달 후에 그 식품가게 주인이 다시 스승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걱정과 근심만 했다면 정말 가게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했더니 지금은 그 연쇄점까지 제가 경영하게 되었고 어느 때보다도 경기가 좋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악한 저주의 생각들을 하게 되면 내가 먼저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남을 축복하면 남만 잘 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로 그 축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 말씀대로 합당한 VIP를 정하십시다. 내가 복음을 전할 합당한 사람을 찾으세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 아무개 속에 있는 사탄, 복음을 거부하게 하는 귀신, 복음을 혼미케 하는 귀신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날 지어다!”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축복하십시다. “아무개야!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지어다! 너는 금 그릇처럼 쓰임 받을 지어다! 너는 복 받을지어다!” 자기 자신을 축복합시다.
그리고 가정을 축복합시다. “내 가정은 복 받을 지어다! 내 가정은 평안할 지어다! 내가정은 복이 넘칠 지어다!”
내 사업을 위해 축복합시다! 직장을 위해서 축복합시다. “내 사업장은 번성할 지어다! 오늘도 더 많은 손님이 올 지어다!”
내 자녀를 위해서 축복합시다! “내 자녀는 금 그릇처럼 쓰일 지어다! 하나님께 사랑받을 지어다! 하나님께 복 받을 지어다!” 이렇게 늘 자녀를 위해서, 부부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축복하되 특별히 VIP를 위해서 평안을 빌고 샬롬의 완벽한 축복을 빌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영혼이 구원될 것입니다. 내가 빈 그 평안이 나에게 돌아 올 것입니다. 영혼이 돌아오지요, 내가 축복 받지요, 얼마나 복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할 사명이 있는 줄 믿고 복음을 전할 때 축복하여서 그 영혼을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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