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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려움을 극복하라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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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기록되어 있는 거룩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활동하신 사건 가운데 첫 번째 나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첫째 활동하신 내용이 본문에 나옵니다. ‘가나’ 라고 하는 마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갈릴리 바다 옆에 있는 마을에 혼인잔치가 있어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초청을 받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떨어지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결혼식에 손님이 많이 왔을 때 음식이 떨어지는 것은 아주 큰 실례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방에서도 오고 친척들이 왔는데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냥 우리가 먹는 음식이 떨어져도 대단한데 결혼식에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이 잔치를 훌륭하게 끝내게 되었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가정의 혼인잔치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야 되고, 오셔야 되고, 계셔야 되고 우리의 길 어디를 가든지 주님이 인도해 주시고  동행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셨습니까? 주님이 여러분 결혼 생활에 같이 해야 합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십니까? 주님이 동행하셔야 합니다. 큰 사업을 시작했습니까? 정치를 하십니까?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다가 포도주가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이 떨어지고 사랑도 떨어집니다. 잘 되던 사업도 떨어집니다. 좋은 환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떨어집니다. 혈압이 떨어지듯이 이 세상은 국가나 개인, 가정이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생각지도 않던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위기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큰 부끄러움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인간은 그 때에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지만 길이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대학교 총장을 하신 분이 또 자살했습니다. 총장까지 하면서 왜 자살 하냐고 말하지만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길이 없습니다.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어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일이 안 되고 어려워서 자기가 12층 위에 올라가서 흔들었답니다. 혹시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많이 흔들다가 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이 때 누가 와서 밀어 주었으면 좋겠다하고 몇 번이나 올라갔답니다. 모든 일에 잘 나가던 분입니다. 이 세상으로 보면 최고로 올라가던 분이 사람이 떨어지니까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 늘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비행기가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가다가 폭발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뭐 그러겠냐 하지만 이 사람이 지성과 인격을 모두 가지고 있어도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이렇게 훌륭한 분도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이 정도까지 고민을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별 사람 없습니다. 모두 떨어질 때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떨어질 때 떨어지지 않게, 떨어진 자리에서 일으키시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으키시고, 모든 마지막에 우리가 포기한 자리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시지만 우리 모두가 할 수 없는 일을 넉넉히 하
고도 남으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하시고 살리십니다. 분명히 우리를 일으켜주십니다.

  오늘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는 길에서 얼마든지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가는 길에서 무엇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양식이 떨어지고, 물이 떨어지고, 모든 환경이 변화되어 낭떠러지에 떨어질 때가 우리에게도 많이 있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늘 그때마다 도우시는 주님,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일어나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라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넘어진 데서 그대로 두는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항상 넘어지지만 일어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 같은 것,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쓸모 있게 만드십니다. 주님의 나라는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있어도 이것을 가지고 모두 먹이고도 남음이 있게 하시고,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사람을 가치 있게, 버림받은 사람을 가치 있게,
길이 없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마귀는 좋은 것도 가져다가 못 쓰게 만들고 아주 귀한 것도 가져다가 망가뜨립니다. 여러분, 마귀에게 젊음을 바쳐보십시오. 파괴해 버립니다. 건강을 바쳐보십시오. 마귀는 완전히 건강을 망가뜨립니다. 인생을 맡겨보십시오. 저주의 인생을 만듭니다. 마귀는 우리를 모두 못 쓰게 하지만 주님은 쓰는 것도 더 잘 쓰게, 좋은 것도 더 잘 되게, 있는 분은 더 있게 하시지만 아예 없는 분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분을 되게 하시고, 잘 되게 하십니다. 거기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바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능력, 더 좋게 하시는 능력, 그래서 예수 믿으면 앞날이 더 좋아집니다. 지금까지 지내왔지만 앞으로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다가 더 좋은 세상으로 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상여를 매고 장례식을 많이 봤는데 그 상여를 매고 가는데 앞에 서서 종을 울리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주변에 있는 분들이 안 울다가도 그 분의 몇 마디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옵니다. 저도 그냥 구경하다 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멀리 멀리 나를 두고 어디로 가냐’ 그러면 몇 마디만 들어도 눈물이 주르륵 나옵니다. 이 세상은 멀리 멀리 가는 것입니다. 정말 멀리 멀리 가고 안 될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갈수록 더 잘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세대에도 잘 되지만 자손이 더 잘 되고 앞으로도 더 잘 되고 나이가 많으니까 ‘나는 소망이 없다’가 아닙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값어치가 더 나갑니다. 가짜는 오래 되면 못 씁니다. 가짜는 오래되면 본색이 드러나게 됩니다. 진짜는 처음에 값어치가 없습니다. 진짜는 오래될수록 값어치가 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오래 믿을수록 그 집이 더 귀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더 복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노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좋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고 나의 모든 생애를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더욱 더 좋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끊임없이 예수 잘 믿으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면 포도나무와 같이 가지에서 떨어져 더 불쌍하게 됩니다. 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면 더 안 되고 주님을 사랑하면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귀한 분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가정과 함께 하시고,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고,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 집에 오시고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여러분 기업과 함께 하시면 여러분, 인생은 가나 혼인잔치와 같이 혼인잔치의 기쁨이 함께 하고 더 좋은 포도주로 기쁨이 충만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여 은혜로 충만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누가 귀합니까? 예수가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귀합니까? 이 세상 다 해도 비교할 바가 없이 예수님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세상의 가장 귀한 분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된다고 말했습니까? 보물을 구하는 장사꾼같이 주님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자기가 목표하는 그 보화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헤맵니다. 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있는 것을 전부 팔아 그 보화를 샀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계를 찾아 헤매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예수를 찾고, 찾은 다음에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하고 주님을 영접하기에 다른 것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예수님은
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공부하듯이 믿으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듯이 왜 그렇습니까? 그 지식보다 주님은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를 잘 믿으면 전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농사짓듯이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민들이 오늘도 저희 고향 분들이 우리교회에서 다녀갔습니다. 얼마나 많이 고향 분들이 다녀가셨는지 모릅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이른 새벽에 나가서 종일 땀 흘리고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농사를 그렇게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일 년 내내 밤낮으로 정성을 다합니다. 사실 그렇다고 나중에 농사지어 팔자를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고생만 하고 힘만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농사짓듯이 믿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마태복음에 있는 대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떻게 믿으라고 했습니까?  에디오피아의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에 지혜를 얻으려고 수 천 킬로를 왔다는 것입니다. 너도 나를 믿을 때 시바 여왕같이 믿으라는 것입니다. 몇 천 킬로를 사모하며 나오듯이 예수를 그렇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은 너무 헛된 일에 이렇게 밤낮으로 예수님보다 술을 더 귀히 여기고 술에다 시간과  돈, 모든 인생을 다 바칩니다. 술 먹고 나중에 뭐가 남습니까? 범죄에 일생을 바치고 허랑 방탕한 삶에 일생을 바치고 이런 일에 모두 얼마나 바칩니
까? 나중에 얼마나 후회되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거두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나오신 모든 성도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일에 일생을 바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집회를 다니면서 좋은 가정집에 가서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 하시는 어떤 분은 2층에 자기 교회에 오시는 부흥회 강사를 모시기 위해서 아예 따로 집을 지었습니다. 병원 2층에 따로 너무나 집을 잘 지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답게 지었는지 집회가 끝나도 오기 싫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여기에 몇 달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또 어떤 집은 완전히 아래층은 자기가 살고 2층은 강사가 올 때 주무시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 이야기로는 아시아에서 제일 잘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잘 지었겠습니까? 제가 봐도 최고인 것 같습니다. 너무 잘 지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화장실도 그 당시에 몇 천 만원으로 화장실을 꾸몄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국산이 하나도 없고 전 세계에 좋다는 것은 몽땅 가져다 지었습니다.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그것은 잘 하는데 취미가 너무 세상을 좋아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좋은 차타고. 그러니까 주일날 예배를 못 봅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 즐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수억 짜리 요트를 굴렸습니다. 바다에 호화로운 궁궐 같은 요트를 굴립니다. 세상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즐깁니다. 주님이 그렇게 좋아야 하는데 세상이 너무 좋아서 나갑니다. 그런데 한 번은 텔레비전을 보는데 뉴스에 그 유명한 분이 낚시하러 갔다가 주일날 아침에 그만 큰 배에 부딪혀 배도 잃고 거기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은 몰라도 그래도 제가 그 집에 가서 지냈던 것을 생각하니까 이 분이 예수님을 시바의 여왕처럼 좋아했더라면 얼마나 큰 복을 받고 그 부모들이 예수 잘 믿어 복을 물려주었을 텐데 이 분은 그 받은 축복으로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한 것입니다. 좋은 차, 좋은 골프채,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돈 주면 살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되기 바랍니다. 시바의 여왕같이 주님을 사랑하고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보화를 찾는 것처럼 예수님을 찾고 농사를 짓듯이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일생동안 주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문과 같은 이러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양식이 떨어지고 삶의 위기가 왔을 때 많은 사람은 낙심하고 아주 비관합니다. 절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이쪽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인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도 지난번에 있던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안 나가려고 해도 기어이 나가라고 해서 그래서 거기를 떠나 여기를 옮겼는데 나올 때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있잖습니까? 주님께서 내게 더 좋은 길이 있으니까 가라 그러겠지 뭐 내가 안 될 것 같으면 가라 하겠는가? 그래서 나를 그렇게 애먹이던 분에게, 나가라고 하는 분에게 찾아
가서 기도해 주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기도해주니까 이 사람이 너무 당황해 하는 것입니다. 안 봤으면 좋겠는데 와서 기도해 주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막 욕하고 증오하고 달려들어 싸우고 그럴 텐데 저는 이제 명일동 종점으로 갑니다. 갈 데가 없어 종점으로 갑니다. 그래서 여기 나왔습니다. 기쁨으로 나온 것입니다. 나와서 목회 하는데 힘들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쫓겨 나왔지만 쫓겨나온 사람이 이렇게 잘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감옥에 간다고 하면 감옥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죽습니다. 여러분, 감옥도 그렇게 보면 안 됩
니다.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감옥에 다녀왔는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 감옥에 다녀와서 모두 성공합니다. 성경에 요셉도 감옥 가서 국무총리 되었지 뭐, 일부러 갈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하다가 간다 해도 거기서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팔려간다고 해도 가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감옥을 내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었는지 모릅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아, 이것이 아니면 이것은 안 된다. 이길 떠나면 그 다음은 죽는 길이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계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상식이고 여러분의 논리이지 하나님의 논리는 아닙니다. 하룻밤에도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압니까? 나는 내일이면 죽는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일이면 또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의 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물질주의라고 하잖습니까? 물질 만능주의, 우리 모든 논리가 물질에 의해서 형성되는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 있는 곳으로 모두 몰리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서 물질을 다스리고 물질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주의는 물질이 없으면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물질이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도 먹을 것을 주시는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 말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미국은 매일 78초마다 청소년이 자살한다고 말합니다. 1년에 청소년 자살이 만 이천 명까지 올라가고 선진국일수록 자살
이 많고 경제가 발달할수록 자살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물질을 의지하고 물질에 기대어 사니까 물질이 그만 달러가 넘어지니까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대려고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기도해야합니다. 주님에게 기도하면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고 ‘주여 떨어졌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하는 기도가 그것이었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는 있고 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친척 가운데 기댈 사람도, 배경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계셔
도 저를 도와 줄 능력이 없습니다. 저의 친척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내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나는 힘도 없습니다. 병들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하나님, 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누가 저를 도와주겠습니까?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부요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잘 되게 하셔서 더 좋은 포도주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나쁜 것은 뭐 비관하고 낙심하는 것은 자기 하나만 손해이지만 원망ㆍ불평하는 것은 전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 안 되는 것을 자기 뜻대로 안 된다 해서, 포도주가 떨어졌다 해서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고 책임을 전가해서 모두가 얽혀서 마음이 나누어지고 분쟁하고 이런 일이 세상에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 교인들은 안 될 때 믿음으로 기도하고 더 좋은 날을 찾고 낙심하지 않고 ‘주는 나의 능력이고 힘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이것을 남에게 책임전가하지 않습니다. 어느 동물이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고 살지 남에게 전가하는 동물들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받아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서 안 되는 것마다 남에게 책임전가하면 인생의 가치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축복하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 모든 책임은 너 때문이다, 부모 때문이다, 자식 때문이다, 남편 때문이다, 아내 때문이다, 나라 때문이다 뭐 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좋은 세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죄는 나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서 구원받는 줄로 믿습니다. 천국 문에 들어 설 때 너 누구 때문이냐? 저는 제가 잘못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셔서 그래 너의 죄는 내가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지옥 가보면 한 사람도 죄가 없다 그럽니다. 너는 어떻게 여기 왔냐 하면 우리 아버지가 술 먹고 그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래서 제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친구 그 자식이 안 먹으려고 하는데 기어이 먹으려고 해서 그 자식 때문입니다. 지옥 가면 전부 누구 때문에 왔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도 그렇다고 합니다. 너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전부 누구 때문에 라고 한답니다. 그런 곳이 지옥입니다. 그 곳이 감옥인 것입니다. 오늘 나온 우리 모든 성도들은 어떤 일이라도 남에게 책임전가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공산주의가 왜 안 됩니까? 공산주의 혁명 철학의 1호가 뭔지 아십니까? 전부 남 때문입니다. 너 때문입니다. 나 못사는 것은 너 때문인 것입니다. 나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는 것이 전부 서울대학 때문이라고 그럽니다. 서울대, 연, 고대만 없으면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데 이 서울대, 연, 고대가 없어져야 된다고 말합니다. 전부 책임 전가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이 못 사는 것은 절대로 자기들 때문이 아니라 하잖습니까? 남조선, 이 자식들 때문에 못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비를 안 주나, 우리가 무슨 태양을 가로막은 일이 있나, 오히려 농사 잘 지으라고 비료 다 갖다 줘도 우리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자기들이 내 책임이다 해야 길이 열리는데 전부 남 책임이다 고 하니까 아무리 도와주어도 영원히 못 살게 됩니다.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열심히 사는데 전부 남 때문이라고 그럽니다. 요즘 우리나라 보십시오. 전부 남 때문이랍니다. 지성인들도 모두 이 짓을 합니다. 전부 누구 때문이라고 그러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화평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화목한 가정 내 잘못입니다. 잘 한 것은 모두 당신 덕택입니다. 그러면 그 집은 화목하고 화목한 교회 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은 내게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택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 됩니다. 그 기업이 잘 되고, 그 나라가 잘 되려면 모든 잘못은 내게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온 인류의 잘못도 모두 뒤집어 쓰셨는데 죄 하나 없는데도 모든 짐을 짊어지셨는데 우리는 내 죄까지도 남에게 뒤집어 씌어서 원망ㆍ불평하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승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주님을 믿고 감사하고 주님을 의지하여 ‘주여,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삶처럼 우리도 나아가서 남을 불쌍히 여기고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안 되는 곳은 되게 하고 좋게 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농부는 수박 농사를 짓는데 자꾸 누가 와서 훔쳐가니까 이 훔치는 사람이 못 훔치도록 머리를 썼습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무슨 머리를 썼는가하면 판자에다 종이를 하나 갖다 붙이고 우리 수박밭에는 농약이 들어 있는 수박이 하나 있음. 이것은 주인만 알고 있음. 그러니까 잘못 했다가는 농약이 들어 있는 걸 먹으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적을 그렇게 해서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 도적은 절대로 강해서는 도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며칠 연구하다가 몇 개 훔쳐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집을 다 망쳐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썼습니다. 그 옆에다 똑 같은 것을 갖다 붙였습니다. 이 밭에는 농약이 들어 있는 수박이 두 개 있음. 하나는 주인만 알고 있고 하나는 나만 알고 있음. 그러니까 그 주인이 하나도 못 파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디에 농약이 들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만 둘 다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이 안 되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어떤 원수라도 사랑하고 관용하고 불쌍히 여기고 누구든지 긍휼을 베풀고 주님의 눈으로 살면 주님의 마음으로 살면 모두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깁니다. 제가 책을 한 권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 진사, 박 진사, 이 진사가 있는데 김 진사, 박 진사, 이 진사는 같이 여관에 한양 올라가서 같은 방을 쓰면서 공부해서 모두 과거에 급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진사, 박 진사는 부자인데 김 진사는 늘 가난한 것입니다. 그쪽은 물려받은 재산도 많은데 이쪽은 너무 가난합니다. 너무 가난해서 어머니가 삯바느질해서 먹고삽니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는데 겨우 삯바느질해서 밥 한 상을 차려 놓으니까 아버지가 전부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온 식구가 굶고 밤을 지납니다. 그래서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나 이 진사 댁에 몸종으로 팔아주세요. 그래야 우리 동생들, 우리 어머니, 우리 식구가 먹고 살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느냐? ‘아버지는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이렇게 굶고 사는 걸 아버지가 몰라서 그렇습니다. 부엌에 와 보세요.’ 옛날에는 선비가 부엌에 안 들어갔습니다. 가보니 집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안 된다 그러니까 그러면 나는 죽습니다. 온 식구가 이런데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하는 수 없어서 김 진사는 자기 딸을 그 이 진사 댁에 몸종으로 팔아넘기게 됩니다. 울면서 가는데 여보게 자네가 몸종 하나 구해 달라고 해서 데려왔네. 그리고 넘겼습니다. 몇 년 지났는데 이 진사 댁에 딸이 결혼을 한다고 부르는 것입니다. 딸 때문에 못 갑니다. 그런데 기어이 와 달라고 말합니다. 꼭 와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가서 결혼식에 울면서 이 딸이 어디선가 지금 심부름을 하고 있을 텐데 딸 생각하고 웁니다. 밖에 나와서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서 오려고 하니까 아이고, 박 진사 댁에 오늘 가는데 우리 같이 가자고, 아이 내가 거기를 왜 가냐고 하니까 우리 셋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만나냐고 같이 가자고, 그래서 같이 따라가서 신부가 며느리가 절을 하는데 보니까 세상에 자기 딸이더랍니다. 이 진사가 친구 딸인
걸 알았습니다. 알고 자기 딸처럼 길러 가지고 박 진사 아들과 혼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사람아, 내가 자네를 이렇게 안 도우면 어떻게 돕는가? 그래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기자들을 만납니다. 취재하는 그런 분들이 많은데 제일 많은 질문이 ‘목사님, 앞으로 뭐 하시겠습니까? 목회의 계획이 뭡니까?’ 저는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저의 계획은 어려운 사람 돕고, 불쌍한 사람 돕고,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고 공부 못 하는 사람에게 공부하게 하고, 물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분에게 장학금으로 공부시키고, 우리 같이 사는 것이지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이 혼인잔치에 가서 사랑 베풀고 우리 할 일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되고 우리가 무슨 욕심을 갖겠습니까?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없습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작지만 실천하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우리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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