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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홀로 걸은 70리 길 (행 2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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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2월 첫 주일입니다. 마지막 잎새처럼 한 장만 달려 있는 카렌다를 보면서 새삼스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또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혹시 새 봄에 결혼 날짜 잡아놓고 손꼽아 기다리는 청춘 남녀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해가 지나가는 게 마냥 아쉬울 겁니다. 특히 학년이 바뀌는 분들, 30대에서 40대, 40대에서 50대, 50대에서 60대로 연령대가 바뀌는 분들은 더욱 그러실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간다고 단순히 아쉬워만 할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한 해가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카렌다를 보면서, 또 계절의 변화를 통해 세월이 흘러감을 느끼기에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때는 우리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문득 내 나이도 계산해 보면서 다시 한번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지혜와 삶의 에너지를 충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운동 경기에 있는 하프 타임(Half Time)과 같은 겁니다. 선수들이 정신없이 뛰다가 전반전을 끝내고 하프 타임을 가집니다. 이 시간에 잠시 휴식도 취하면서 새 힘을 충전하고, 후반전에 어떻게 뛸 것인지 지혜를 짜 봅니다. 이 시간은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후반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반전에서 이겼다면 계속 그 승리를 지켜 나갈 수 있고, 전반전에 혹시 졌다고 해도 하프 타임을 가진 후 후반전에서 얼마든지 역전승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한 해가 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위한 하프 타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시기 바라고, 우리의 남은 생애가 더욱 복되고 아름다워지기를 축원합니다.

[1] 바울이 홀로 걸은 이유 : 인생의 하프 타임(중간 결산)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4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차, 2차, 3차 선교여행, 그리고 마지막 로마 선교여행입니다. 로마여행은 결과적으로 선교여행이었지만, 바울이 복음을 전한 죄 아닌 죄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간 사건입니다. 본문은 바로 3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이방인 교회들이 드린  구제헌금을 갖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당시 모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갈수록 들려오는 소문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이 오기를 벼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구역 성경을 알았어도 정작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구세주 되심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니 눈에 가시 같이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기만 하면 즉시 체포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런 위험 앞에 바울도 사람이었기에 마음이 착잡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바울이 취한 한 가지 행동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의 생애 가운데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13절을 다 함께 읽어봅시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사도행전을 보면 자주 ‘우리는’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저자인 누가의 시각에서 기록한 것으로, 누가와 바울을 비롯한 선교팀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우리는’이란 말에서 바울이 제외됩니다. 바울이 일행으로부터 따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제외한 일행이 따로 배를 타고 앗소로 갑니다. 그러면 어디서 따로 떨어졌나요? 20:5절~6절을 보면 ‘드로아’라는 항구 도시입니다. 드로아는 유명한 유두고(바울의 설교 중 창문턱에서 졸다가 죽었다가 살아난 청년)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의 터어키 북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합니다. 거기서 바울은 일행과 잠시 헤어져 혼자 걸어서 육로로 갑니다. 어디까지인가요? ‘앗소’라는 항구 도시까지입니다. 앗소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바울이 왜 그랬을까요? 항상 함께 다니던 일행인데 굳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신학자들이 이런 저런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므로 육로로 가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이라는 둥, 혹은 육로로 가서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는 둥 ... 그런데 이런 해석은 당시 상황과 동떨어진 감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일행과 동행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더 좋았을 겁니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당시 그 지역으로 육로로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은 마치 자살행위와 같이 위험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짧은 거리도 아닙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거리가 70리가 훨씬 넘어 80리 가까이 됩니다. 더욱이 전날에는 드로아에서 늦은 밤까지 설교를 하고 육체적으로 아주 피곤한 상황입니다. 배를 타고 일행과 함께 여행하는 게 어떤 면으로 보나 유익하고 편하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굳이 혼자서 도보로 여행을 했다는 것은 필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일행들이 만류하는데도 그것을 뿌리치고 고집을 부리다시피 하면서 혼자 여행한 데는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예루살렘은 성큼성큼 가까워지는데, 바울이 그곳에 도착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죽음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혼자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걸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길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신앙도 점검해 보면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대비하고, 남은 인생에 대해 마음을 다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져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생의 중간 결산’을 해 본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자동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중간에 잠시 정차합니다. 그때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가 조이고 기름 치고 정비한 후 다시 출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은 여정을 잘 달려가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이런 시간을 갖고 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14절~16절을 잘 읽어 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앗소에서 다시 만나 일행과 합류한 바울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죠. 앗소에서 미둘레네, 기오, 사모, 그 다음에 밀레도에 도착합니다. 밀레도는 에베소에서 약 45km 떨어진 항구도시인데, 바울에게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그는 순회 전도자로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는 이례적으로 무려 3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하며 지냈습니다. 사실 지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못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천국에 가서나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정리를 생각하면 아무리 바빠도 잠시 들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16절 보십시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지체하지 않고 급히 가려고 밀레도에 들르지 않고 지나치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구제헌금도 전달해야 되겠고, 오순절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기 때문에 빨리 기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모습 가운데 두려움이나 걱정, 망설임 등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의 열정으로 충만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홀로 걸은 70리 길’에서 새롭게 영적으로 무장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2] 홀로 걸은 70리 길 : 신앙과 인생 재점검(Reconfirmation)

  ① 구원의 재확신 :
  사람이 죽음 앞에 서면 두려운 게 인지상정입니다. 바울도 어쩌면 죽음의 위협 앞에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앞의 현실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두려움에 갇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십자가를 보면 혼란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확신이 넘치게 됩니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조차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홀로 걸으면서 주님 앞에 자신의 구원 문제를 점검해 보았을 겁니다. 자신의 고백처럼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기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도 기억했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면 확신이 생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 “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 믿는 성도들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어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주님이 예비해 주신 새 집에서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나가 보십시오. 대합실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저마다 총총 걸음으로 갑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떠납니다. 모여 있을 때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았지만 각각 행선지가 다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 각처에서 모여 살아가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행선지가 다릅니다. 영원한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행선지는 과연 어디입니까? 천국이 맞습니까? 이것을 확신한다면 그 어떤 위험도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이런 확신으로 충만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당당히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② 임재의 재확신 :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는 서로 의지가 되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홀로 떨어져 있으면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를 체험하면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일행과 함께 있어도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심란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홀로 70리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합니다. 아무리 길이 험해도, 외로워도 여전히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결국 바울은 새 힘을 얻고 용기백배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담대한 모습을 사도행전 27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갔고, 예상대로 거기서 체포됩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져 로마로 압송됩니다. 그런데 그가 탄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납니다. 배가 난파지경입니다. 그때 선장도, 선원들도, 승객들도, 로마 군인들도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벌벌 떱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선 바울의 모습은 당당합니다. 행27: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바울이기에 광풍의 와중에서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닥쳐오는 위기 앞에 벌벌 떱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당당해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얻은 축복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약속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막 들어가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2~3백만 명의 백성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는 원주민이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도 인간인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용기를 얻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결국은 승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약속을 기억합시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정말 주님은 이 약속대로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겁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오 신실하신 주) 가사를 음미해 봅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③ 사명의 재확신 :

  바울은 홀로 걸으면 성큼 앞으로 닥쳐온 죽음을 의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겁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대로, 사명을 위해 사는 게 가장 지혜롭고 복된 인생입니다. 바울은 외칩니다.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바울은 사명감을 재확인하고 사람을 보내 초치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합니다. 그때 한 말 중에서 하이라이트와 같은 부분이 바로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행 20:23~25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런 사명감 때문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갔고, 로마에서 퉁ㄱ된 후에도 줄곧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그가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마지막으로 보낸 유언적 서신입니다. 그 끝 부분에 기록한 그의 고백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딤후4:7~8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넘어 천국과 하늘의 면류관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게 세상에 왔다가 언젠가 갑니다. 그 후에 주님 앞에 섭니다. 그때 과연 우리 인생 가운데 어느 것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쌓아놓은 소유? 우리가 성취한 권세와 지위?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오직 사명을 위해 얼마나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산 것만이 영원한 가치입니다.

  성도 여러분! 또 한 해가 갑니다. 어쩌면 우울할 수도, 낙심이 될 수도 있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바울이 ‘홀로 걸은 70리 길’과 같은 시간을 꼭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재점검해 보시고, 이전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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