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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시 119:105~107, 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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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의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씀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아무개야”하고 부르십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것도 다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말씀에는 영광이 보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지금도 말씀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진실된 교회를 표시하는 몇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가르치고 설교합니다. 둘째는 성례전에 대해 올바르게 관리합니다. 셋째는 교회의 치리를 올바르게 행사합니다.

  다음 주일은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또다른 축복입니다. 성경은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교회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압니다. 성경은 온갖 신령한 진리로 충만한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은 그리스도가 누우신 구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탄생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온갖 행적과 기적과 말씀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교회사에서 중요한 시기의 객관적 균형은 두 가지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과 교회입니다. 칼빈이 신령주의자들을 비난한 것은 성경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적 조명을 추구했지만 성경은 무시했습니다. 성령은 결코 성경을 거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형성해온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신조 1조에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고 합니다. 성경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삶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그 삶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2004년 12월말 현재 전 세계에는 2,377개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6,500개의 언어 중 성경전서가 번역된 수는 422개 언어이고, 신약전서는 1,079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단편만 번역된 수는 876개 언어에 이릅니다. 성서주일을 맞이하면서 성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합니다. 이전에 우리가 보던 개역성경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합니다. 살아 있기에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합니다. 변화하고, 깨지고, 성장하고, 감동하는 이런 역사 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살리는 말씀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로고스와 로고(이미지)는 하나가 됩니다. 말씀이 이미지가 됩니다. 말씀대로 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이미지를 남깁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의 숨결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어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듯이 글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이 있는 말씀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먹을까”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 유대인이나 누구나 살기 위해서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육신을 위하여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영혼을 위하여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와 일체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10:9에는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로되 갖다 먹어버리라”고 합니다. 두루마리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먹으라고 합니다. 입에는 쓰지만 배에는 답니다. 쓴 말씀이지만 씹을수록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유대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 무렵이면 성경을 펼치고 거기에 꿀을 떨어뜨립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입을 맞추도록 합니다. 이것은 책이 달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의식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지식을 위해 죽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 공부입니다. 배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하다못해 ‘벼룩시장’이라도 봐야 세상살이를 압니다. 살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설사 몰라도 되지만, 정말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지식이기에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알맹이 없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와 지식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시시한 잡지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전혀 무익하지만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재미가 있어야 하고 민감해야 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에 대한 환상을 보세요. 골짜기에 뼈들이 너부러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뼈들에게 말씀하라고 하셔서 말씀할 때 살아났습니다. 말씀으로 생기를 얻습니다. 이 때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됩니다.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를 불어넣으면 죽은 육체도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살아나게 합니다. 죽은 뼈라도 살게 합니다. 시편 119:107에는 “여호와의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살아나야 합니다.

  브뤼셀의 다닐즈 추기경의 기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예배당에 가서 기도한다. ‘오늘 할 일을 마치겠습니다. 주님, 심각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교구가 저의 것입니까? 당신의 것입니까?’ 하고 주님께 묻는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나는 답한다. ‘그래 맞다. 내 것이다’ 하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주님, 이제 이 교구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일은 당신 차례입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렵니다’하고 말한다”. 기도는 말씀의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기도는 살아 있는 말씀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의 신문에는 기쁜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기업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커피 잔에 내년 봄부터 성경구절을 넣는다고 합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고른 성경구절을 넣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들어갈 구절은 “그 길을 나는 안다”(The Way I see it)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이사야 40:8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시들지 않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활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활력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둘째,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말씀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을 판단하시는 기준이 됩니다.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것이 성경적 삶입니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에 아름다운 그리스 소녀의 상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한 시골 소녀가 매일 이 동상을 바라보고, 대화하고, 머리를 빗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사람들은 동상과 너무 닮은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늘 사모하고 바라보고, 닮기를 원하면 닮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을 성경을 닮습니다. 성경은 마음과 뜻을 판단합니다. 같아진다는 뜻입니다.

  오류가 없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와 한계를 솔직히 고백한 다윗은 오류가 없는 시편의 시들을 지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도 오류가 없는 서신들을 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오류가 없는 책들을 채택하여 정경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확실한 판단력이 있게 합니다.

  부지런한 거지와 게으른 거지가 교회 주변에 살고 있었는데 두 거지는 이따금씩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될 즈음에 부지런한 거지가 구걸하러 갈 채비를 하면서 게으른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같이 가서 동냥하지 않으려나?” “난 안 갈래. 자네나 가서 열심히 동냥해 오게.” 동냥 나가는 게 귀찮았던 게으른 거지는 빈둥빈둥 놀면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있다가 동냥 나갔던 부지런한 거지가 돌아와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는데 그때 게으른 거지가 잠에서 막 깨보니 동냥을 나갔던 거지가 빵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옆에서 빵을 먹는 걸 지켜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배가 더 고프고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는데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냥 나가자고 할 때 같이 갈 걸 괜히 게으름 피우다 굶게 생겼구먼’ 게으른 거지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점잖게 빵을 좀 달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번 목사님 설교가 참 은혜스럽더구만. 그때 자네도 듣지 않았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설교 말일 세. 그러니 자네 몸이라고 생각하고 빵 조금만 주게나.” 그 말을 듣고서 부지런한 거지가 빵을 줬을까요? “그래. 나도 지난 번 목사님 설교를 듣고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다네. 그런데 말이야, 난 목사님이 했던 설교 중에 자네가 들었던 그 다음 말씀이 더 은혜가 되더구만.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는 말씀 말일세” 그러더랍니다. 사실은 부지런한 거지란 어울리지 않아요. 부지런하면 거지가 안 되지요. 성경은 필요한 말씀이 다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자기 판단과 회개의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성경입니다.

  렘브란트,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화가들은 한결같이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화가입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바하, 헨델과 같은 음악가들은 한결같이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가들입니다. 요즘에 모차르트 음악은 태교에 가장 좋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모든 작곡을 다 마쳤을 때에 자신의 이름을 사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란 약자로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음악이 태교에 좋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고 마음의 뜻과 생각을 판단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100명 가운데 90명이 성경을 읽는 사람입니다. 시인 테니슨은 “성경 읽는 자체가 곧 교육이다”고 하였습니다. 칸트는 “성경이 있다는 것이 인류 최대의 축복이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있는 것이 복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디모데후서 3:17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처럼 성경이 사람을 온전케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판단합니다. 성경은 선한 능력을 주십니다.

결론

  어떤 사람이 시골 상점에 들어서자 문 앞에 붙어 있는 표시 보았습니다. ‘위험 개조심’이란 경고문이었습니다.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 늙은 사냥개가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조심해야 하는 개가 저건가요?” “물론입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요. 저 경고문은 왜 붙였나요?” “저 경고문을 붙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꾸 개에 걸려 넘어지거든요”. 많은 경우에 가장 큰 위험은 세상에 의해 물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걸려 넘어지는데서 옵니다. 세상에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굳건히 서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확실하게 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고(receive), 읽고(read), 연구하고(research), 기억하고(remember), 반영하는(reflect)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매일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삶에 반영하여 성경에 따라 지혜를 얻고, 성경에 따라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의 삶의 지혜도 얻고 바른 분별력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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