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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벨의 순교 이야기 (창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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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 술람미의 사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 하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라고 말하는 술람미의 사랑의 고백을 들을 때 우리는 가슴이 뭉클 하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벨의 순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순교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도 가슴이 뭉클 하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이야기, 폴리캅의 순교의 이야기,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 우리는 가슴이 뭉클 하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저는 아벨을 최초의 순교자라고 생각합니다. 아벨은 믿음 때문에 그리고 그가 드린 향기로운 제사 때문에 형의 미움을 사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믿음 때문에 그리고 제사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순교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6:9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했는데, 죽임을 당한 수 많은 사람들의 시조가 아벨이라고 생각합니다. 히12:24은 예수님의 피와 아벨의 피를 동격으로 취급하기까지 했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 라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0년 8월 미국 라성 영락교회의 김계용 목사님이 40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고 사랑하며 그리던 사모님과 자녀 손들을 그곳에서 만난 지 얼마 후 그곳에서 별세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김계용 목사님의 별세를 추모하는 추모예배가 그 해 10월 경에 서울에서 있었는데 그 때 한경직 목사님이 김계용 목사님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계용 목사님은 설교로 말씀하셨고 삶으로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죽음으로 말씀하신다고 하시면서, 아벨이 지금도 죽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김계용 목사님도 지금 죽음으로 말하고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아벨의 순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첫째,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우리가 무엇을 하면서 사는 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나 장사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가장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목자라고 말씀했고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면서 양을 먹이고 치는 선한 목자로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처럼 양의 가죽 옷을 입고 다니면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아벨의 삶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창4:4). 양치는 목자의 삶은 하나님을 닮은 삶이고 누군가를 치고 먹이는 봉사의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어야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의 나환자 양들을 치고 먹이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벨의 양치는 삶은 우리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보여줍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봉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신을 희생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보여줍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처럼 양의 가죽 옷을 입고 다니면서, 양을 치는, 하나님 닮은, 봉사적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곡식이나 돈을 드리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양의 첫 새끼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부터 유월절 절기마다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어린양으로 하나님께 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스데반도 야고보도 사도 바울도 손양원 목사님도 모두 어린양으로 피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가장 귀한 제사가 피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피 제사를 드린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벨은 아버지를 따라 양의 가죽 옷을 입고 다니면서 살았고,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고,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피 제사로 드렸습니다. 

  아벨의 피 제사는 우리들이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가르쳐 보여줍니다. 우리들의 예배가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의 기도나 찬송이나 헌물 등 모든 예배의 제사가 우리들의 형식이나 의식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해서 드려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예배가 희생적인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보여줍니다. 본래 제사라는 말은 희생을 의미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롬6:13을 보면 우리의 지체를 죽여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예배에는 희생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죽여서 드리는 희생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남은 것, 찌꺼기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리는 것은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배 중 최고의 예배는 자기 몸을 죽여서 드리는 순교의 예배입니다. 순교에는 생명을 바치는 희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아버지를 따라 양의 가죽 옷을 입고 다니면서 살았고,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고, 나중에 자기 자신을 피 제사로 드릴 것을 준비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아벨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를 했습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피가 하늘을 향해 호소를 했다고 했습니다.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순교자의 피는 한번 흘리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피는 계속해서 흐르고 흐르면서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스데반이 흘린 순교의 피는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려던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사망의 길로 달려가던 사울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흘린 순교의 피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던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한국교회를 살리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아벨이 흘린 아벨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했다고 했습니다. 계6:9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잠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지금도 흐르고 흐르면서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호소한다는 말입니까? “나를 쳐 죽인 형 가인에게 저주를 퍼 부어주시옵소서” 라고 아벨이 호소하는 것일까요?” “나를 돌로 쳐 죽인 사울에게 저주를 퍼 부어주시옵소서” 라고 스데반이 호소하는 것일까요?” “나를 총대로 턱을 부수고 마지막에는 나에게 총을 쏘아 죽인 저 악한 공산당에게 저주를 퍼 부어주시옵소서” 라고 손양원 목사님이 호소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처형당하실 때 하늘을 향해서 호소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늘을 향해서 호소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호소하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나를 처형하는 저 악독한 로마 병정들에게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들을 보내시어 저들을 진멸하시옵소서” 라고 호소하셨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결코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면서 제일 먼저 호소하신 호소는 다음과 같은 호소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저는 어제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제 가슴이 울며 통곡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호소하는 호소 소리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의 호소 소리들도 우리들의 호소 소리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순교자들은 이렇게 호소한다고 생각합니다. “형 가인을 유혹한 사탄을,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를 유혹했던 저 사탄을 깨트려 주시옵소서” 라고 아벨이 호소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을 유혹한 저 사탄을, 아니 예루살렘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저 사탄을 깨트려 주시옵소서” 라고 스데반이 호소한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상에서 처형 당하신 주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 사탄의 세력을 속히 깨트려 주시옵소서. 인간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저 사탄의 세력을 어서 속히 깨트려 주시옵소서” 라고 호소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깨트리는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최초의 순교자인 아벨의 순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마지막에는 자기의 몸을 피 제사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치나 경제가 아닌 순교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복이 아닌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무력이나 정치력이 아닌 약함과 희생과 사랑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약함이나 희생이나 사랑의 죽음보다는 증오와 정복의 기운이 팽배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치나 경제가 아닌 순교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지적하는 대로 우리는 지금 정치와 경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습니다. 주님께서 받아 먹으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을 마시라.”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으면 우리는 사탄의 세력을 이기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순교자들의 선배가 되시는 아벨 선배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순교자들의 최고의 모델이 되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들도 순교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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