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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멘토이신 예수님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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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1200년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 텔레마쿠스를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멘토였습니다. 그 후 오디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멘토는 왕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선생과 아버지가 되어 주면서 그를 키우고, 지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 뒤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10년 만에 돌아와 보니까 자기 아들이 당당하고, 매력적이고, 늠름하고,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역할을 하며 자기 아들을 잘 키웠던 멘토 덕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믿음과 사랑과 꾸준함을 가지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을 멘토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잘 하려고 하면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멘토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한 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아니라도! 다른 교회에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본받을 만한 사람을 두고 있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멘토는 머리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1. 멘토는 사랑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요셉을 통해서 멘토의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의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경은 요셉의 인격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자기와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가 임신을 한 사실을 요셉이 알게 됩니다.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이것은 당시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성품이 의로운 사람이기에 타인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에 대한 의식이 이렇습니다. 불의를 지적하고 비판의식을 가지고 정의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입으로 정의를 외치며 행동으로 정의롭지 못한 방법을 사용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모든 것! 즉 나도 남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진 정의는 나도 남도 세워줍니다.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요셉의 의로움을 통해 멘토의 귀한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헤어지더라도 상대의 파멸을 원치 않기에 조용히 처리하려는 태도를 통해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는 요셉을 볼 수 있습니다.

2. 사랑으로 배려하면 더 좋은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향하여 사랑으로 배려 할 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실상을 알려주고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본문 20절과 21절을 함께 봅니다.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리아를 배려하는 요셉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요셉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려움을 묵묵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더 놀라운 것을 예비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요셉이 경솔해서 이 일을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고, 요셉은 메시아의 탄생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임마누엘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히브리말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와 함께 하셨고, 현재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미래에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결코 홀로 가는 고독한 인생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의 실수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지라도, 징계를 하실지언정 우리를 버리시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내가 실패하고 망하여 거지 신세가 되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그래서 모든 친구들이 다 떠나버렸을 때에도 오히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십니다. 지금 약간의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더 큰 축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사54:7)

1877년 미국의 곡창지대인 미네소타 주에는 3년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가뭄이 드니까 메뚜기 떼가 창궐했습니다. 점차 미국이 경제에 큰 타격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바로 그때 미네소타 주지사인 필스베리(Pillsbury)가 절망과 좌절에 빠진 모든 주민들에게 감사의 날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고 삶에 대해 먼저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농작물은 거의 전멸하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니 감사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주민들이 주변에 있는 밭으로 나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우리에게는 남은 것이 많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바로 그날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3년 동안 들판을 뒤덮었던 메뚜기 떼들이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괴로움과 고통 중에 눈물로 감사하며 기도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실패했어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능력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랑만 받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사랑만 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남을 돕기만 하여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남의 도움만 받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정의하면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받지 않으려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받기만 하는 것은 인색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기만 하는 것도 인색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 사랑도 꽃피고 정도 생기게 됩니다. 사람은 주기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받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주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고받는 복을 많이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4. 끝으로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한 마디로 소망이요, 희망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둠에게 있어서 빛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노래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오신 성탄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지만 역사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이 성탄절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오토다게 히르타다입니다. 지은이는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손과 발이 모두 10센티밖에 되지 않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선천성사지절단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차라리 손과 발이 없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자기의 삶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요새 개성시대인데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개성이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는 어깨와 머리 사이에 연필을 끼워서 글을 씁니다. 그리고 입과 어깨로 가위질을 합니다. 또한 양어깨로 농구공을 드리볼 하면서 농구를 하기도 하고, 겨드랑이 사이로 철봉을 끼고 턱걸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모습을 자기만이 가진 장기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장애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이 말은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의 어렸을 때 별명은 ‘휠체어의 황제’이었습니다. 항상 자신 있게 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서 골목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둔 기색이라곤 없습니다. 그 부모도 팔다리 없는 자식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귀여운 내 자식이라고 하면서 그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자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남들에게 보입니다. 당당합니다. 결국 그는 정상인도 들어가기 힘든 와세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분은 불행하게 태어났다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무엇이 없다고 불행하게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불행은 없습니다. 행복을 포기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행복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우리의 행복이며, 위대한 멘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신 한 우리는 희망을 포기 할 수 없습니다.

모쪼록 희망이 보이지 않고 삶이 우리를 슬프게 할지라도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위로하시고 임마누엘 하실 주님을 생각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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