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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는 영화표가 아닙니다 (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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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제주도 모슬포에 국군 91 대대가 있었습니다. 최후방인 이곳에서 50 여만 명의 신병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전술 훈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기본 훈련만 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꼭 필요한 것들만 빠른 시일 안에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곧장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 국군들은 어떤 정예부대 못지않게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훈련 받은 해병 3-4 기는 귀신 잡는 해병의 신화를 낳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서, 서울탄환작전, 원산상륙작전 등 전사에 빛날 금자탑을 쌓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어떻게 짧은 훈련을 통해서 어떻게 이런 정예군이 될 수 있었을까요? 보통 군사 훈련 때는 요령을 피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달랐습니다. 이 91 대대의 훈련생들은 한 눈 파는 일이 없었습니다. 모든 훈련에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전쟁터에서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라는 긴박감은 맹훈련의 효과를 크게 올려주었습니다.

시험을 며칠 앞두면 공부가 잘됩니다. 공부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합니다. 시험보기 10 분에는 집중력이 최고입니다. 이 때 공부하는 것이 시험 문제에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긴박함이 감돌면 집중하게 됩니다. 집중력이 있을 때는 무얼 해도 효과가 큽니다. 이 원리는 예수님이 제자를 뽑고 파송하면서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12 명의 제자를 뽑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12 명의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본문 2 절에 12 명의 제자 명단이 발표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고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2 명을 뽑기 위해서 철야 기도를 하셨습니다. 누가 가장 적합한 제자인지 뽑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1 절을 주의 깊게 보면 아주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제자를 뽑았으면 일정한 기간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본 훈련이라도 시킨 후에 파송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12 제자를 뽑으신 후 바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훈련이고 뭐고 없습니다. 바로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가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3 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3 년의 기간도 제자들이 훈련을 받기에는 길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야 제대로 각처에 파송되어 사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12 명의 제자를 뽑으신 바로 그 순간이 파송되는 때입니다. 본문 뒤에 5 절부터는 가서 전도할 때의 요령이 나옵니다. 전도할 때의 주의사항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할 때 주의점만 말씀하시고 바로 제자들을 파송하신 것입니다.

제자는 선택, 훈련, 파송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중간 훈련의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훈련을 무시하셨을까요? 훈련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목회에서도 중요점은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제자라는 말에는 반드시 훈련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파송을 서두르셨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전도가 긴박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9 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일꾼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7-38>

추수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칩니다. 곡식은 거둬야 할 적기가 있습니다. 만약 추수 때를 놓치면 어떻게 됩니까? 익은 곡식이 썩거나 말라버립니다.

여기서 추수란 전도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지금 바로 가서 전도를 해야 하는데 전도훈련을 한 다음 가면 이미 때를 놓칩니다. 그래서 바로 현장에 가서 바로 전도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도는 믿음 생활을 오래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믿음이 좋은 성숙한 신앙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전도는 누구나 해야 합니다. 특히 부족한 사람도 전도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누굴 설득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선포입니다. 그냥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 됩니다. 천국 가는 길을 안내하면 됩니다.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언제 훈련을 받았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 곧 훈련 장소입니다. 바로 실전에 투입되면서 현장에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임상훈련이라고 합니다.

이론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론을 배워도 실상 써먹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실전에 부딪치면서 배우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의사도 수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턴은 의사면허를 받고 각 과목을 현장에서 실습하는 것입니다. 레지던트는 인턴 과정을 겪고 나서 전문 과목을 실습하는 것입니다.

운전면허도 현장 실습이 중요합니다. 이론을 공부하고 필기시험을 봅니다. 필기시험이 통과되면 코스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통과되면 도로주행시험이 있습니다. 합격하면 면허증이 나옵니다. 그러나 면허증을 받아도 차를 몰고 도로에 나오면 떨립니다. 그래서 또 도로 연수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배울 때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도는 이론보다 실전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현장에 파송하셨습니다. 결국 실전에 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부딪쳐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전도를 배워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연습도 아닙니다. 언제나 실전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본능으로 엄마젖을 뭅니다. 예수를 믿으면 자동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먼저 경험해 보니 이 길이 생명이 길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구원을 받는 길인데 어떻게 이웃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좋은 상품을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자연스럽게 그 상품을 추천하게 됩니다.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다시 찾게 됩니다.

멋진교회를 발견하신 여러분! 좋은 교회를 추천하는데, 좋은 교회를 소개하는데 이론 교육이 필요합니까? 요령을 배워야 전도할 수 있습니까? 전도는 즉각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산삼 전도가 성경적입니다. 산삼 한 뿌리를 발견하면 그 주변에 있는 가족 산삼들을 함께 캘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바로 주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할 때 한 사람만 전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전도 대상자 주변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을 모두 전도하리라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전도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제자로 선택하셨기에 부르십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면 제자가 됩니다. 이 제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4 장에 제자가 되는 조건이 나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6-27>

제자는 주님을 위해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제자는 시시하게 주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는 판단을 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결단한 사람을 제자로 뽑으면 어떻게 됩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반하고 맙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제자로 평생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자를 영화표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자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를 수 있는 표가 아닙니다. 다른 사정이 생겼다고 무르는 표도 아닙니다. 재미없다고 중간에 나와 버리는 영화표가 아닙니다.

한 번 제자는 평생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로 결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를 뽑기 위해 철야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고르셨습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면 교인이 됩니다. 믿음이 있건 없건 교회를 다니면 교인입니다. 교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믿으면 신자가 됩니다. 신자는 믿음이 생긴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시고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신자의 ‘신’자가 믿을 ‘信’자입니다. 믿음을 가져도 모두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믿어도 행함이 따르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자 다음은 성도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란 뜻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살던 지난날들을 청산하고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입으로 시인한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진짜 믿음은 행함이 따라야만 합니다. 입으로는 이것저것을 하겠다고 해놓고 부도를 내는 사람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묘지에 가면 묘마다 비석이 있습니다. 묘비에는 교회 직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직분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교회의 기초 호칭입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성도,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것이 서열은 더더욱 아닙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우선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다음이 제자입니다. 제자는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자 중에서 뽑는 것입니다. 제자는 다른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남을 섬기고 돌보려면 그만한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이 권능은 도저히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이 권능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권능이라야 합니다.

교회 직분을 맡기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에서 나온 것이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 권능이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본문 1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고 바로 권능을 주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철저히 위로부터 오는 힘을 의지해서 사역해야 합니다. 만약 공급받지 못하고 자기 힘을 내면 이내 탈진합니다. 교회 일을 하다가 금방 시험에 들고 맙니다.

베드로전서 4:11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러분! 만약 목사인 제가 기도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목회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내내 우려먹으면서 설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설교를 바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많이 보지만, 다른 목사님들도 많이 보는가봅니다. 참고를 하는 것은 좋지만 베끼는 것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교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누가 보아도 시빗거리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석도 보고, 다른 사람의 설교도 봅니다. 그러나 역시 기도를 통해서 남이 보지 못한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영감을 얻은 설교를 강단에서 외칠 때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언제나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경험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에는 이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특히 제자는 주님의 권능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본문 1 절을 보니까 제자가 권능을 받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권능 없이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발작하는 현장을 권능으로 바로 제압해야 합니다. 병자를 권능으로 낫게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권능을 보면서 저는 주눅이 듭니다. 목회 현장에서 제가 이런 권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사역이 현대 목회에 중요한 사역은 아닙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초기 복음을 전할 당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에게는 여전히 이런 권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사역이 제자의 주된 사역은 아닙니다. 제자의 첫 번째 사역은 복음 전도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 7-8 절 말씀입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먼저 천국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은 전도를 하다가 하는 일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권능이 전도할 때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모든 권능은 복음 전파에 필요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권능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보다 큰 일이 없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은 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제 이 일이 제자로 결단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이 일을 위해서 제자로 부르시면 응답하시겠습니까? 기꺼이 제자로 나서시겠습니까?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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