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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침묵하시는 하나님 (삿 11: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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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사건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입다]라는 사사에게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뿐 아니라 원근 각처의 이방족속의 온갖 신들을 모두 끌어다 섬길 만큼 우상숭배의 악이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삿10: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 넘기셨고(삿10:7), 이들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치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게 되었습니다(삿10:8).  괴로움이 심해진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하나님께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부르짖자(삿10:9-10) 이스라엘의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던 하나님(삿10:16)께서 또 다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셨는데 이때에 들어 쓰신 사사가 바로 [입다]입니다.

  [입다]는 본래 길르앗 사람으로서 "큰 용사"였으나 그를 낳은 어머니가 기생이었으므로(삿11:1) 정부인에게서 난 이복형제들에 의해 쫓겨나 [돕]이라고 하는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삿11:2-3).  그때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치자 이스라엘 자손도 이에 맞서 미스바에 진을 치기는 했지만(삿10:17) 앞장서서 암몬과의 전투를 이끌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말하기를 "누구든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삿10:18).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삿11:5)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삿11:6).  입다는 그를 찾아온 길르앗 장로들에게 대답하기를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했습니다(삿11:7).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다시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 앞장 설 자가 아무도 없어서 당신을 찾아온 것이니 우리와 함께 싸워주기만 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삿11:8) 했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에게서 정말 그렇게 행하리라는 약속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삿11:9-11).

  입다는 암몬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암몬의 침공과 그들의 영토소유권주장의 부당성을 역사적으로 지적하고 설명하며 호락호락하지 않은 외교전을 폈습니다(삿11:12-27).  그러나 암몬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않자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되었고(본문 28절),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32절) 크게 승리하여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33절).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입다는 돌이킬 수 없는 한 가지 실수를 했고 그 일로 그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나아갈 때에 그는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한 것입니다(30-31절).  그런데 그가 암몬을 물리치고 개선하며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르렀을 때에 자기의 무남독녀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그를 영접한 것이었습니다(34절).  입다는 그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울부짖어 말하기를 "어찌하면 좋으냐 내 딸아.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내가 내 입으로 하나님께 서원하였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했습니다(35절).  이 어이없는 상황을 깨달은 그의 딸은 그러나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입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서원하셨으면 아버지의 그 말씀대로 내게 행하셔요. 그것은 아버지가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서 하신 일이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위하여 허락하신 일 아닙니까?" 했습니다(36절).  그 딸은 단지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하고 처녀로 죽게 된 것이 서러우니 친구들 하고 산에 가서 실컷 울고 오도록 두 달만 기다려 줄 것을 아버지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37-38절).  두 달 만에 그 딸은 아버지에게 돌아왔고 그의 아버지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실행하고야 말았습니다.  그에게 아무 잘못한 것 없는 착한 딸을 제 손으로 번제의 제물로 바쳐야 했던 입다의 비극입니다.

  이 입다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이 비극을 초래했는가 하는 문제를 포함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선 입다는 하지 않아도 될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가 서원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조건 없이 하실 일에 인간적인 반대급부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의 서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떤 대가를 걸어 확보하려 한 인간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제의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30-31절)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암몬에 대한 승리와 안전한 귀환을 요구하며 그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얻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협상을 통해 보장받으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권적 은혜의 하나님을 자기와 같은 협상가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입다에게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없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제사법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는 규례가 없음은 물론이고, 그것은 하나님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증한 일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엄히 금지된 일이었습니다(레18:21, 신12:31).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원하시는 바에 대한 입다의 치명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방족속의 우상숭배관행을 좇는 짓이었습니다.  그것은 극심한 우상숭배 때문에 겪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행을 해결하려는 싸움에 나가면서 다시 우상숭배의 관행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입다는 순수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기보다는 자기가 자기 민족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싸운 것입니다.  기생의 아들이라고 천대 받고 쫓겨났던 자신의 입지에서 출세와 권력장악을 반드시 이루기 위하여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입다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이방족속과 전쟁을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어떤 의지나 노력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 네 번째 사실과 연관하여 주목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다른 사사들의 이야기에서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입다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입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결정하고 혼자 말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혼자 서원하고 혼자 괴로워하며 자기 딸을 번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입다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사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다의 행적을 전하는 기록 속에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는 단지 길르앗 족속의 장로들의 청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입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언급은 두 군데 나옵니다.  먼저 29절에 보면 암몬 왕과의 외교적 협상이 결렬되고 전쟁이 불가피해지자(28절 참조)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다"는 말이 한 번 나오고, 32절에서 입다가 드디어 암몬 자손과 전쟁을 시작하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일시적으로 지도자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암몬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시려는 뜻을 이루셨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한 마디 말씀도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입다는 마음 속 독백이었는지 공적인 기도였는지 모르나 여러 차례 하나님께 말을 건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에 있는 11절을 보면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떤 대답도 하나님 편에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던 입다가 자기 집 앞에 이르러 자기 집에서 자기 딸이 나와 자기를 영접하는 것을 보고는 옷을 찢으며 "어찌할꼬" 하며 괴로워 부르짖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냉담하셨고, 그 딸이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면 그 말씀대로 내게 행하셔요" 하며 애처럽게 말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35-36절).  산에 가서 울고 두 달 만에 돌아온 딸을 입다가 그의 서원대로 번제로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일체의 반응이 없으셨습니다(39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행함으로써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도 얻지 못하는 비극을 스스로 초래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없이 행하며 하나님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는 것은 그가 기뻐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신다는 뜻일 때가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또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무관심 즉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징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는 우리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깨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도 아니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일들을 마구 벌이며 괴로움을 자초하는 어리석고 위험한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 자기 소원, 자기 의지, 자기 욕심만을 큰 소리로 쏟아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을 찾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조용히 기도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가운데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보다 앞서가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는 더더욱 그의 침묵의 의미를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게 유리한 때에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편리한 모습으로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서 뜻하실 때에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곳에 주님께 합당한 모습으로 오시기를 바라며 주님 오시는 그 때 그 자리에 주님 기뻐하실 모양으로 서있는 우리가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대림절에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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