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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에 실패가 왔을 때 (출 5: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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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 일이 모세에게 발생했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의 바로 앞에 섰습니다. 모세가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그 일을 하나님이 하도록 하셨으면, 단 번에 성공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로 앞에서 서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게 하라”고 말하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큰 노동을 강요했습니다. 벽돌을 쉽게 만들 수 있었던 지푸라기조차 그들에게서 빼앗아 버렸습니다. 반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를 더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은 더 높아지고, 모세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픔이 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모세가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힘은 비록 들겠지만 그래도 벽돌을 만드는 일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에서 비록 자신의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40년 동안 장인의 양을 치며 목동으로서 큰 변화는 없겠지만 평안한 삶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하자 그의 평안한 인생이 완전히 깨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바로와 싸워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는 욕을 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에게 사명을 주실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으니 이제 형통하고 잘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모세는 그래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으니 바로의 마음이 단번에 움직일 것이라고 믿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가 그 일을 하기 싫다고 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지팡이를 가지고 기적과 이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시고, 다시 모세가 그 꼬리를 잡자 지팡이가 되는 기적을 보여 주셨으며, 손을 가슴에 넣으라고 하시고 문둥병이 발하게 하신 후에 다시 치료하시는 기적과 이적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모세에게 주시고, 하나님께서 모세의 응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실전에 맞부딪친 모세는 크게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배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순간 완전히 한 방에 K.O. 당하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습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면 성공하고 잘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처럼 강적을 만나 오히려 고난이 몰아닥치고 실패로 인해 주위의 원성을 사게 되고, 함께 한 사람들은 더 큰 고난을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본인으로서는 얼마나 쑥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는데 그 일이 꼬이고 실패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이 기분을 누가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처참한 상황을 어떻게 속을 드러내어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이 속이 썩어가는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리더가 되면 이런 일을 종종 맛보게 됩니다. 분명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과감하게 소신껏 밀어붙였는데 그 일이 실패하면 얼마나 면목이 안서겠습니까? 그것도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처럼 난감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리더인 모세 자신도 난처한 입장이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정말 보내셨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이 순간에 백성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였도다.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게 하는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모세 이 사기꾼아 너희가 우리를 속였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와 그 신하들로부터 더욱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속였기에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셨으면 좋겠노라”는 말입니다. 실패한 리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지 못한 리더가 무슨 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마음의 큰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이 좌절과 낙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큰 절망감에 붙들려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는 그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가 아니라는 거짓 지도자로서 낙인찍힌 상태입니다. 지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자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통과 낙심과 절망을 준 거짓된 리더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순간에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 자리에서 영원히 머물러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처럼 죽음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바른 뼈로서 죽어 가든지 아니면 다시 일어나서 그 골짜기를 걸어 나오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22절 말씀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말했지만 바로는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함으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더 학대하고 괴롭히고 학대할 기회를 잡게 되었나이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이 기도의 핵심은 한마디로 “하나님은 왜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무능한 하나님입니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무능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 실패감,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는 패배감 속에 상처 난 가슴을 쥐고 아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는 좌절감과 실망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적인 감정을 순기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있습니다. 만일 모세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좌절과 절망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죽음의 에스겔 골짜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기도입니다. 다윗도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후 자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한 그 모습을 가지고 그대로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 역시 갈멜 산의 영적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 뒤에 찾아온 이세벨의 변하지 않는 악한 세력으로 인해 마음에 큰 좌절과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하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갈 때에 모세처럼 실패할 수 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 일은 실패한 것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가 더 어렵게 되었다. 우리가 더 고생하게 되었다라고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에 흑암의 그림자가 엄습하여 큰 절망감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여러분은 다른 것을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 상실한 그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큰 위로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큰 치료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실패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그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또다시 모세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또다시 도전하라고 했습니다. 실패했지만 다시 시도하라고 했습니다.

  전도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어떤 일을 해도 계속해서 다시 그 일을 해야 일어 설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그 아니는 평생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전거를 배워도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스케이트를 배워도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수영을 해도 물을 먹으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물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평생 수영을 배울 수없습니다. 우리 중에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깨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평생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없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다가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다시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시 도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인지 부딪쳐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또 다시 일어나 부딪치라고 명령하십니다. 6:6-9절 말씀을 교독하여 보겠습니다. 특히, 9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이와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적인 마음의 상함과 외적인 바로의 핍박으로 인해 모세 보다 더 큰 절망감과 마음의 상처와 좌절감이 그들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모세가 말할 때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실패하자 그에 대한 신뢰감은 배신감으로 바뀌고 절망감으로 바뀌고, 외적인 고난으로 인해 그에 대한 불신감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믿고 계속해서 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계속해서 걸어가라 계속해서 도전하라 계속해서 말하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라 Keep going, keep going 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복음의 일에 도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낙망하지 말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앞으로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무려 10번이나 도전해서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도전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좌절과 낙망으로 있겠습니까? 이 답은 여러분들이 내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한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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