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까? (습 3:14-17)

  • 잡초 잡초
  • 390
  • 0

첨부 1


여러분 오래된 유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사람을 한 자로 줄이면?
"나.....
*세상에서 가장 이쁜 사람을 두 자로 줄이면?
"또 나.....
*그럼 세 자로 줄이면?
"역쉬 나.....
*이번에는 네 자로 줄이면?
"그래도 나.....
*그럼 다섯 자로 줄이면?
"다시 봐도 나.....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요즘 세대들은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는 예쁜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하나님이 나를 가장 예뻐하실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앙생활도 사랑 받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예쁜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 할 수 있습니까?

어는 장로님의 자녀들이 다 잘 됐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잘 되다니요. 잘 컸지요."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자식을 그렇게 잘 키우셨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께서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자식들이 하나님이라 생각을 하고 자식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나를 안보실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 허물을 감춰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을 때에 그 권력으로 큰 집 하나를 소유할 수 있었는데 과감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내가 아들이 넷을 두었는데 눈 8개가 나를 보고 있어서 그랬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내가 그 큰 집을 받아서 나중에 자녀들에게 나누어 줄 때 상속받으면서 이렇게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 권력 있을 때 그거 뺏어서 우리에게 준거다'라고 할 것 아닙니까? 이건 얘기를 듣는 나에게도 불행이고 이런 말을 하는 자녀들에게도 불행입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기 전에 자식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축복받은 비결이라고 하면 이것이 비결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적 겸손으로 우리가 이런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요시아왕 때의 일입니다.

므낫세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별을 숭배하고, 바알과 아세라 신당을 세웠으며, 더 나아가서, 사술과 강신 술 등 온갖 미신적 행위들이, 판을 치는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이런 세월이 55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각한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늪으로 몰아넣어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여덟 살 밖에 안 된 암몬의 아들 요시아를 왕으로 세우십니다. 요시아는 나이는 어렸지만, 주변에 있는 신하들의 조언을 잘 받아들여서, 종교개혁과 국민의식 개혁을 일으키기 위해, 애를 썼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요시야 왕이 통치하던 무렵에 스바냐 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민족의 죄악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멸망시켜 버리겠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유대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많이 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아왕의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시도하는데 사람들이 잘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스바냐 선지자를 보내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이 나라가 망할 것이다." 그러자 유다 백성들은, 극심한 절망 가운데 넋을 잃은 채, 슬피 울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절대절망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 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찌어다 예수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쫒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 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눌어 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시온의 딸아 노래할 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찌어다 예수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찌어다"라고 이렇게 얘기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온의 딸이고 누가 이스라엘이고 누가 기쁘게 즐겁게 노래할 사람입니까? 누가 이 말을 듣습니까?
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2절을 보게 되면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많은 악이 행하는 풍조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소수의 무리들, “남은 자”들만이 이 말씀을 듣습니다.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열왕기하19장에 바알 선지 450인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선지자 엘리야가 왕후 이세벨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도망가던 중 너무 힘들어 탈진해서 하는 말이 “하나님, 나를 죽여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만 남겨 둔 것이 아니고 내가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바고 그 사람들이 남은 자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비록 어렵고 힘든 죄악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할지라도, 자신의 신앙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남은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이어져 가시는 겁니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보호하시고 한님이 지키시고 구원 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이들인 족장들은 물론 모세,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과 같은 나라와 민족의 어려움 앞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지도자.... 이런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간에,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 돈이나 세상 풍조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남은 자입니다.

이 시간 바로 그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남은 자가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남은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새 힘과 위로와 용기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간증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찬송가(542장)에 “세상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내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한 것처럼 언제 죽어도 내 꿈은 믿음 지키다가 주님의 얼굴을 기쁜 얼굴로 뵙는 겁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주님 얼굴을 뵙는 사람이 멋진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그런 좋은 신앙인들, 주님의 얼굴을 다 뵐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선지자 스바냐 시대와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들과 같이,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힘쓰다가 주님을 뵙고 칭찬을 받는 “이 시대의 남은 자” 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14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 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찌어다"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뻐하라! 이고 둘째는 즐거워하라! 입니다.
그것도 전심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즐거워하십니까? 기뻐하십니까? 구원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죽음의 형벌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성도는 기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는 자이기에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같이 봅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쫒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 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왜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뭐가 두려울 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네 형벌을 제하였고, 두 번째는 네 원수를 쫒아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를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니 당연히 우리는 화를 당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다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죄인들이었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들은 경찰관과 마주치면 움찔하지요? 물론 죄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둑질한 사람이라면, 자기 붙들러 왔나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할 겁니다. 그러나 죄 진 일 없는 사람은 경찰관 100명이와도 무섭지 않은데, 죄진 사람들은 경찰복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가슴이 서늘한 법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나타나시면 우리는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합니다. 왜요? 하나님은 죄진 사람을 반드시 벌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보니까 '그 형벌을 제하였고~ ' 라고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형벌이 없다! 심판이 없다! 저주가 없다! 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계신 여러분과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형벌도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 지옥에 대한 형벌, 죽음에 대한 형벌, 하나님께서 다 제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다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천국은 요한 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했습니다. 죽음의 형벌도 없습니다. 그러니 기뻐해야죠!

다음으로 원수를 쫓아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또 너의 원수를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세상도 때로는 우리의 원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제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우리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고 자책감을 갖게 합니다.
바울처럼 위대한 사도도, 롬7장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좀 건져줄 수 없습니까?"라며 절규는 것은 모두가 사탄이 심어 주는 죄의식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명색이 모태 신앙이요, 교회의 직분 자인데도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치는, 나의 신앙수준을 거론하면서 “네가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자녀인가? 직분자인가?” 하면서 죄의식과 패배의식으로 기가 죽어지내게 합니다. 이것은 다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원수를 쫒아 내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지난 한 주간동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했던 죄악의 흔적들과,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엄청난 죄의식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나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꾸만 범죄를 일삼는, 연약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송구스러운 심정으로, 어깨쭉지가 축 늘어진 채, 자학하며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도, 적지 아니 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형벌을 제하여 주리라, 너를 향한 징벌을 그치리라, 너의 죄를 용서하며, 사하여 주리라.”

사1장 18절에서,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요일1장 9절에서는, 주 앞에 회개하는 자들을 향해 사죄의 선언을 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뻐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다 제거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원수를 쫒아주셨습니다. 다시는 마귀 사탄이 죄의식과 자책감으로 우리를 헐뜯는 일에 여러분들의 기가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자녀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의 죄와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고 주님 앞에 나와서 "제가 잘 못했어요"하고 툭툭 털어 버리면 주님이 다 용서하시고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한번 따라합시다. "즐거워하자" 충성하는 자가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불충하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것이 기쁨도 있고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에게 그런 즐거움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7절을 같이 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잘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누가 가운데 있다구요?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면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고 하였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전능자인데, 나를 좀 믿어라. 믿어라!” 그러시는 줄 아시기가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99세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아브라함아 내가 전능자야. 전능자! 너는 이스마엘 하나 얻었다고 잘 될 것 같지? 아니야. 나는 네가 나이 100세가 되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내가 자식을 낳게 할 꺼다. 나는 전능자다."
여러분 창세기 17장1절을 찾아 같이 봅시다.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7장 1절을 바로위에 16장 마지막 절을 보세요.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육세 였더라"
17장 1절에는 아브라함은 99세였습니다. 몇 년 차이가 있습니까? 13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잊고 산 게 13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잊고 살아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능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는 네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실 때에,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실 때에는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스바냐 3장 17절로 넘어가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전능자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에, 나 때문에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에 기쁨이 있는데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다른 무엇이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은 안하지만은 잠잠히 사랑하시고 너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노래 부르십니다.
많은 자식들이 있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자식이 있습니다. 기쁨이 되는 까닭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 같이 사랑을 하지만 특히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보실 때도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하나님의 마음이 기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야곱이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어느 성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 교회 목사님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 파랗습니까? 빨갛습니까?" 그랬더니 이 성도가 하는 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기도할 때는 목사님이 눈을 감으시고, 설교할 때는 제가 눈을 감아서 한 번도 목사님의 눈을 본적이 없는데요!"
이 시간, 여러분은 제 눈을 보시고 제가 드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즉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니라.”고 나 때문에 기뻐하신다!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미국에 능력 있는 부흥사 베니 힌(Benny Hinn)이란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 집회에는 수 만 명, 수 십 만 명씩 모이고 많은 병자가 났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역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선교회를 조직하고 열심히 부흥회를 했지만 그 선교회는 항상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습니다.
장차 장인 될 로이 목사님은 다짜고짜로 "베니, 자네 십일조를 드리고 있나?" 그래서 그때 부흥회로 다니고 있었지만, 십일조에 대한 확신도 없고, 못할 때가 돼서 못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자네는 곧 내 사위가 될 사람이야. 이 그 문제는 자네와 하나님과 나 이 셋의 문제가 될 걸세.

그래서 결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서 사실은 빛이 많아서 십일조를 못 드리고 그때그때 많이도 드리고 적게도 드린다고 했더니... 큰소리로 "난 자네 같이 젊고 훌륭한 부흥사가 왜 빚을 지고 있는지 아주 의아했네. 자네는 마땅히 은행에 돈을 쌓아 놓아야 될 사람인데 말이야. 그런데 자넨 지금 빚을 지고 있거든. 이제야 뭔가 좀 알 것 같구먼."하시더니 "그건 자네가 감정에 따라 헌금하고 있기 때문 일세"하십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이런 때는 이만큼 헌금하고 다른 때는 또 저만큼 헌금한다는 말이지? 설교에 은혜 받았을 때는 많이 헌금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적게 하지! 아침에 기분이 좋으면 많이 하고 기분이 나쁘면 적게 하는 식이라네. 그게 감정적인 헌금이지 뭔가? 자네가 헌금하는 방식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자네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신다면 어떻겠는가? 이것은 절대로 잊지 말게 베니! 헌금에 대한 율례는 확고부동하다네. 감정적으로 헌금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하네"하십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밥을 하는데 오늘은 물을 꼭대기까지 가득 채우고 내일은 물이 없으니까 물 없이 밥을 하면 밥이 됩니까? 안됩니다. 밥을 하고 요리를 하나 만들어도 규정대로 해야 밥도 밥이 되고 요리도 요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는 것입니다. 베니힌 목사님께 “감정에 따라 헌금하고 감정에 따라 충성하고 감정에 따라서 일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빚부터 갚기 시작하게!" 빚더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빚부터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니힌 목사님은 "저, 로이목사님 저는 지금 제 빚을 갚기에도 돈이 모자랍니다."하고 난색을 표했더니 로이 목사님은 들은 채도 안하고 "베니, 하나님의 빚부터 갚게. 그러면 자네 빚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걸세. 성경에 나온 대로 헌금에 대한 율례는 확고부동하다네. 자네는 그것을 바꿀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감정에 따라 헌금하는 일도 안 될 말이네. 자네는 명령하신 대로 드려야 하네. 그건 하나님의 법일세. 그러니까 만약 자네가 그대로 순종한다면 자네 빚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걸세.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빚을 갚아 나가게나. 그렇게만 하면 자네 빚 문제는 해결 될 테니까"하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베니힌 목사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물으니까 로이 목사님은 "첫째는 지금 당장 헌금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제껏 하나님께 빚진 모든 걸 갚는 걸세."하시더니 "거듭난 뒤부터 십일조 드리지 않은 것을 하되 성경대로 20%에 해당되는 돈을 함께 얹어서 갚아야 되네" 하는 것입니다. 베니힌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그럼 저는 채권자에게 진 빛보다 더 많은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단 말입니까?"하니까 "자네 말이 맞네." 그래서 "저는 이미 수십 만불의 빚이 있는 셈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군요."하니까 "하나님의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하게, 그럼 하나님께서 자네 빚을 갚아 주실 테니까"하고 똑같은 말씀을 힘주어 반복 하셨습니다. "자네가 만약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다면 그분께서 자네의 빚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걸세"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더랍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비서에게 수표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리고, 씨에게 천불, 씨에게 천불, 써내려 가니까 비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지금 대체 뭘 하고 계시죠?" "나는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을 뿐이오." "이게 정말 그분 뜻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분명히 확신합니다."그리고 계속 누구에게 천불, 누구에게 천불 비서, 받아쓰다가 "이분들에게는 빚이 없는데요?" "나도 알아요. 이 돈들이 사실 내가 하나님께 빚진 돈들이요. 그러니까 그분께 순종합시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거듭나 구원받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진 빚을 갚아 나가는데 은행 잔고가 다 바닥이 나게 되니까 이사들도 9명중에 7명이 떨어져 나가고 2명만 남더랍니다. 파산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수표로 은행돈이 몽땅 나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날과 다음날은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채권자들에게 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로이목사님의 말이 맞는다면 그것으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장10절)고 말씀하신 대로 저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제 통장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10센트 남은 것 마저 몽땅 헌금 주머니에 넣고 말았습니다. 십일조만 1센트 드리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하셔서 그것마저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월요일 등기 우편물이 와서 빛 청구서라고 생각하고 뜯어보니까, 뜻 밖에 돈이 들어 있는데 "무조건 하나님이 목사님께 천불을 보내라고 해서 보냅니다." 자기가 천불 보낸 사람인데 그것이 도착하기 전에 그분이 돈을 보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그 주 금요일에 8천불이 들어 왔고 그 믿음가지고 부흥회하고 그 믿음가지고 생활하고 그 믿음가지고 충성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키워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책임져 주시고 결국 그 빚을 다 갚고 지금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구원의 전능자이십니다. 그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잠히 사랑하고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랑할 만한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담대해 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을 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어도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어도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해주시는데 뭐!”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담대한 것도, 다니엘의 3친구가 풀무불 앞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은 것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아니한 담대한 신앙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어느 교회 임직식에 가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분들이 다 이 분같이 됐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교인을 자랑을 합니다. 칼국수 장사를 하시는 집사님인데, 아주 잘 된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술을 팔아야 하느냐? 이고 다른 하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의 영적인 위기를 잘 감당해서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목사님의 설교에 무슨 시험이 들었냐 했더니, 한번은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수입 밀가루에는 방부제가 많아서 먹으면 인체에 독이 된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칼국수 장사 하시는 집사님이 걱정이 되어서 “집사님, 힘내세요.”하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내외는 목사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후로 수입 밀가루를 안 쓰고 비싸지만 국산 밀가루로 칼국수 장사를 하였습니다.
좋은 먹거리로 내 식구를 먹인다는 마음을 갖고 장사를 하는데, 갑자기 웰빙 바람이 불면서 이 집을 TV에서나 신문에서 촬영해가 기사를 실으니까 자연히 홍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이 집 칼국수 먹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겁니다.

신앙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산 밀가루로 건강에 좋은 웰빙 칼국수라며 더 유명해 졌답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주시던지 그 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하나님이 다스림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나 커서 아름다움 궁정에 있으면서 "하나님 나는 이렇게 좋은 궁전에 있는데 하나님을 이런 텐트 속에 둘 수가 있습니까? 내 성전 건축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이 너무나 기특해서 네 유다 민족을 자손 대대로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전 건축을 안해도 괜찮은데 네가 그 마음만 가져도 복을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랬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은 못 짓더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건축자재를 제가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다윗이 자재를 준비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받는 사람은 복을 받게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잠잠히 사랑하시는 겁니다.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축복이 다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속의 가정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날 속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요15:7에도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이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 때문에 손해 본 것, 없어진 것은 아깝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를 드리는 것도 슬프지 않았고 아깝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가 다 죽었어도 원망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욥기 1장21절)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그 행위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너나 잘해!” 라고 합니다. 요즘 배웠다고 하거나, 좀 있다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마치 자기의 신앙에 옳은 것처럼, 자기의 삶에 잘 사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완전한, 행하여 완전한 그런 성도들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독수리가 노래했다는 얘기 들어봤습니까?
타조가 노래했다는 얘기 들어봤습니까? 커다란 새나, 커다란 짐승은 노래를 안 합니다. 그러나 카나리아 노래하는 것 들어봤습니까? 들어봤지요? 또 종달새가 노래하는 것 들어봤지요? 굴뚝새가, 조그마한 굴뚝새가 노래하는 것 들어봤지요? 작은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명예나 지위가 너무 높아져서 덩치가 크고 재물이 많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은, 비대해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내기를 좋아하지, 조물주 찬양하는 소리 내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늘까지 권력이 뻗친 사람들은 하나님 찬양, 별로 안합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 하나님 찬양 별로 안합니다. 왜? 돈 간수하느라고, 볼일 바빠서 언제 찬양들 합니까? 우리가 높아지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면 하나님 찬양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새도 조그만 새가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진정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사야서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히브리서 13장 5절 6절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읽고 마치겠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 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민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우리가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는 그런 축복된 하나님의 종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창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