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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눅 23: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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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죄의 값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알려주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죄의 저주에서 풀려나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실 때 지난 밤의 고난이 너무도 험했기에 몇 번씩이나 쓰러지셨습니다. 이대로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은 나머지 로마 병졸들은 들에서 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서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비록 자기가 원해서 진 것은 아니지만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짐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주님 말씀하셨는데 구레네 시몬은 자기 십자가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던 것이요 이로 인해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듯 자기 십자가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고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짐은 가볍고 지기가 쉬움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 인생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가 하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야곱이 바로 앞에서 험한 나그네 길을 살아왔노라고 고백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험한 길입니다. “너희가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도 말씀하셨거니와 먹고 살기위해서는 땀 흘리며 수고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고라고 하는 것도 온갖 가시덤불이 그 앞을 가로막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가시덤불을 다 거두어내고 옥토발을 만들어야 하니 또한 그 수고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다가 도적이 있습니다. 기껏 가꾸어 놓아도 이를 도적질하는 자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거저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습디까? 아니요 없죠. 기껏 수고하고 잘 쌓은 것 같다가도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던가요? 아니 우리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만 되는 것이 있던가요?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짐을 지려고 하니 더 무겁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처럼 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짊어지워주시는 짐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내 모든 수고와 고달픔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나의 짐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내 짐이 무겁다고요? 그렇기에 주님이 내게 지라고 하는 짐을 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짐을 지게 되면 주께서는 대신 내 짐을 맡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힘들고 지쳐 있다고 해도 지금 우리의 형편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이요 내가 힘들고 낙심되기에 더욱 주님의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맡겨주시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도 내 짐은 가볍고 지기가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또한 함께 동행하시며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어려울수록 더욱 주님의 일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힘들기에 더욱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며 주님께 감사함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이요 주께서 내게 맡겨주시는 일에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대로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일에 나의 온 힘과 정성을 다할 때 주께서는 내 모든 일을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로인해 구원과 영광을 얻었다면 기쁨으로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에 그리고 우리들에게 맡겨지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기쁨으로 섬기시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이심으로 영혼의 구원과 더불어 우리 삶에 모든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는 예수를 따르며 통곡하였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실 때 그 길을 따라 울며 따르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랬기에 자기들에게 어떤 해가 올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통곡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치고 없는데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다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데 이 여인들은 그러나 몸을 드러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울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자들을 돌아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보아라,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와,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보지 못한 가슴이 복되다’ 하고 사람들이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 버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 나무가 푸른 계절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하거든, 하물며 나무가 마른 계절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들 두고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자녀가 없는 사람이 더 복되다고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것 같으나 모든 것이 힘들어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은 평안하다 생각되는 그때가 더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은 여유 있다고 여겨질 때가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 문이 닫혀지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생명이 있을 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주님 전에 엎드려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위해 우리는 울어야 하고 주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고자 하나 내게 힘이 없고 내게 능력이 없고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특히나 복음의 길에서 벗어난 자녀들이 있다면 더욱 간절히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자녀들을 두고 있다면 그 자녀들을 위해 더욱 우리는 울며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길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가시며 인도하여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우리 자신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길을 가로막고 우리로 넘어지게 만드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께만 영광 돌린다고 하는 것이 이만저만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울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울며 통곡할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죄로 죽고 의로 다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건져주시고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그 주님의 은혜 감사해서 주님만을 따르기 원하나 내 힘이 너무 부족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다니고 있습니다. 주님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바로 세워 주세요. 그러나 비록 죄 가운데 있다고 해서, 여전히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해서 주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를 도와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 또한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이 생명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들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찾아가서 사랑의 손길을 내어미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찾아 오셨듯이 나도 그렇게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영혼들을 정말 불쌍히 여기며 눈물로 찾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억울해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지쳐서 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기를 원하나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생각하며 울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나 여전히 실패하고 넘어지는 나를 생각하며 울고 그런 나를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라며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이웃들을 생각하며 울 수 있어야 하고 복음의 진리 안에 함께 하지 못하고 진리를 떠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의 자녀들을 사로잡고 우리의 이웃들을 사로잡으시며 잃어버린바 되었던 영혼들을 사로잡게 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받은 자녀요 구원의 길로 자녀들을 이웃들을 그리고 잃어버렸던 영혼들을 인도함으로 그들을 살려내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 구했던 강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처형장으로 끌려가서 십자가에 매달린 다른 죄수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예수를 모독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여기 당연히 죽을 죄를 저질러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 구원의 기회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줄을 생명의 줄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는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이 주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한 마디 간구가 저로 하여금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도록 만든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무엇이 믿음입니까?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이렇듯 주님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 마디 간구하였다가 낙원을 허락받았다면 오늘 주님의 약속대로 주님을 믿는 우리야 더욱 주님의 나라가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셨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말씀하시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약속의 말씀대로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은 저와 여러분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열려져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나라에 임하기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귀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바로 고백입니다. “너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도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 마디 간구하였다가 구원을 얻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주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우리들이야 더욱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이 믿음의 고백을 주님 앞에 끊임없이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이런 고백의 자리에 나아오도록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복음을 들고 나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은혜에 이르도록 만들어 주신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저주와 멸망의 나락으로 빠져든 안타까운 사람들을 우리는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옷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지면서도 그저 예수를 조롱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로마 병졸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자기나 구원하라지” 하며 비웃기만 했었던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니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까지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라고 하며 예수를 모독하였던 다른 죄인 하나를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의 은혜로 이끌어주는 도구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비웃음거리로밖에는 보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도 코웃음만 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생명을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들을 수가 있겠고 듣지 못하고서야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가 더욱 믿음 안에 있어야 하고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살기가 힘이 듭니까? 내 짐이 무겁게만 느껴집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내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힘들기에 더 힘쓰십시오. 지쳐 있기에 더 주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주님께서 능력으로 우리에게 덧입혀 주십니다. 내 안에 미움만이 가득합니까?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힘들다고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나아가십시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당할 고난을 대신해서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내 능력이 되어주시고 주님이 내 힘이 되어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십시오.”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공급하시는 힘과 능력과 사랑을 힘입어서 오늘을 이기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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