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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 (벧전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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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여러 가지 조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조직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나라와 민족을 잘 지키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의료인들의 조직은 병든 자들을 잘 고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사들의 조직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정치인들의 조직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의 조직인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오늘 주시는 말씀에 따르면, 교회란 이 땅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소망입니다.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교회는 세상의 소망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소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소망이 없다 아우성을 쳐도, 교회만은 소망이 있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없는 세태라 하여도, 교회에서만은 소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라고 해서 완전할 순 없습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는, 세인들의 지탄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소망을 주기보다 오히려 절망의 원인을 제공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기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 해서 어느 모로 보나 소망일 수 없는 그런 교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이요, 또한 소망이어야 하며, 마침내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교회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백성들의 공동체요, 소망의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요,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

# 2
오늘 주신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교회가 왜, 어떻게, 세상의 소망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여기서 그 말씀, 다시 읽으며 우리 가슴에 새깁니다. / 2:9 / (읽기) / 거기 <족속>, <제사장들>, <나라>, 그리고 <백성>이란 네 개의 단어가 나오는데요, 모두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통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네 가지 단어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의 소망일 수 있는 네 가지 근거와 목적과 이유를 배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 이유 하나씩 풀어가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메시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족속, 곧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입니다. 여기서 택하셨다는 말, 친히 불러내셨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교회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 택하여 불러낸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세상과 구별되는 공동체이군요. 세상과 다른 차별성이 있다는 뜻인데요, 바로 이 차별성이 세상의 소망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지니는 차별성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란 말씀일까? 그 답이 9절 후반부에 나오는데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 분의 기이하고도 놀라운 빛 가운데 거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두움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두움과 짝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린 모든 어둠을 싫어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놀라운 빛, 어두움을 물리치는 기이한 빛, 해서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구원의 빛으로 살기에 교회가 이 세상의 소망인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동광교회 하늘 가족들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 주신 이름 자체가 동쪽의 빛, 곧 동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동광의 존재 이유,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한 소망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동광 교회가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 동광의 가족인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먼저 빛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빛이 될 수 있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인데요, 그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 2:11-12 / (읽기) / 두 가지를 명령하시는군요. 첫째,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둘째, 이방인 가운데서 선한 행실로 빛이 되라!

그렇습니다. 자기 육체의 정욕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 소망의 빛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날마다 육체의 정욕에 매여 절절 매는 사람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발견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빛이 되려면 먼저, 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곤란합니다. 정욕을 컨트롤하는 것, 기본이군요.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12절, <이방인 가운데서 행하는 우리의 선한 일을 보고 저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겁니다.

그렇군요. 육체의 정욕을 모아, 그 에너지로 선한 일에 쓰라는 거지요. 밤을 새워 고 스톱을 외치지 말고, 밤만 되면 홍등가를 배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이방인 가운데 나가 선행으로 빛이 되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정욕에 매인 인생, 평생을 정욕과 씨름하다 세상 떠납니다. 정욕에 매인 인생, 이 한 잔의 술을 더 먹을까 말까를 놓고 평생을 고민합니다.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인생, 오늘은 카지노 바로 갈까, 나이트클럽으로 갈까, 아니면 경마장으로 돌아갈까를 놓고 평생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인생을 하직하고 맙니다. 아니 나에게 허락하신 이 인생이 어떤 인생인데 그러다 죽어요.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그리곤 이방인 가운데로 당당히 나가, 선한 행실로 빛이 되라는 겁니다. 내가 하는 착한 일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만들라는 겁니다. 그렇게 소망이 되라는 겁니다.

물론 나 홀로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나 홀로 세상의 어둠을 물리쳐 승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러 교회로 세우신 겁니다. 그래서 자꾸 모여 함께 기도하라 하신 겁니다. 하나로 두면 작은 불씨일 수 있지만, 모두 모이면 온 세상을 밝히는 기이한 빛, 소망의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당신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2.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들>의 공동체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오직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 왕과 제사장이 만나고 있군요. 그런데 왕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 교회가 왕이 되려고 하지는 말라는 거지요. 왕처럼 존귀한 존재인 것은 맞지만, 그러나 왕은 아니라는 거지요.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오히려 왕이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제사장들이요,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 말씀 무시하고, 아주 먼 옛날, 교회가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는 주님의 가시 면류관 보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이 세상의 왕관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방인 가운데로 나가 선행으로 빛이 되는 일 보다, 어떻게 하면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재물을 모을까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면죄부까지 만들어 팔면서 오히려 세상을 어둠 속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해서 역사는 교회가 왕관을 쓰고 있던 시대를 가리켜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부끄러운 일인데요,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절망으로 몰고가버린 암적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교회는 왕이 아닙니다. 교회는 왕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왕관을 받아쓰는 순간 교회는 빛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들의 모임인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소망이 된다는 건가?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직무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사장에 부여된 직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택하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죄의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유일한 공동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신 거요,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사장으로 서기 보다는 왕으로 서기를 더 좋아합니다. 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보다는 자꾸 정죄하려고 합니다. 아니오,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지 정죄하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죽어야 한다면 죽기까지 순종하라 하셨지, 뒷짐 지지 서서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라 하신 것 아닙니다.

우린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린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십자가 은혜로 건짐 받은 나, 아직 주님을 모르는 영혼을 붙들고 끝까지 기도할 뿐입니다. 그럼요, 우린 정죄하는 대신 전도해야 합니다. 심판하는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망인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해서 주신 말씀, 2장 10절인데요, 함께 읽으며 마음에 새깁니다. / 2:10 / (읽기) / 아멘.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죄인들에게 교회가 소망인 것입니다.

<당신이 죄인들의 소망입니다.>

3. 교회는 <거룩한 나라>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오직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옷깃을 여미며 들어야 할 말씀인데요, 어딜 보아도 거룩함을 찾아보기 힘든 세태 속에, 너희만은 거룩한 공동체가 되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거룩함 때문입니다. 거룩한 교회,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우리 교회마저도, 우리 성도들마저도, 거룩함이 아닌 세속적인 것으로 이 세상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룩함 아닌 것, 곧 세속적인 것으로, 이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인데요, 그러나 명심할 것은, 거룩한 나라일 때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와서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병원은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학교는 아닙니다. 교회에 잘 다녀 큰 복 받아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기업이나 은행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직 거룩함으로 소망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해도, 아무리 화력하게 치장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인기를 모은다 해도, 거룩함을 상실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거룩함을 상실한 봉사, 거룩함을 상실한 구제, 거룩함을 상실한 모든 행사로는 결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그래서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한 나라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1장 15절을 보니,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 말씀의 출처인 레위기로 가 보겠습니다. / 레 11:44 / (읽기) / 거룩한 나라가 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간단하군요. 내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 무엇으로도 자기 몸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몸> 하면 <거룩>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몸>하면 <거룩>이란 단어 대신 이 단어를 먼저 생각합니다. 내 몸을 보고 사람들이 이 단어로 인사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현대인들이 <몸>하면 가장 먼더 떠올리는 단어는? 네, <Sexy>입니다.

저 자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한 개념 정리가 잘 안되지만, 언제부터인지 <섹시합니다!>가 최고의 찬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섹시하시군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다는 겁니다. 그렇구나, 섹시한 것이 감사한 일이구나!

그래서인지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와! 섹시하시네요!>라고 칭찬하면 열이면 아홉은 무척 좋아하십니다. Sexy Code가 이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경향이 된지 오랩니다. 그러다가 섹시해 지고 싶은 욕망에 자기 몸에 칼을 대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거룩한 몸을 찾아보기 힘든 세태가 된 거지요. 그래서 소망이 없는 거지요.

아니오, 몸은 거룩한 몸이 좋습니다. 섹시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섹시하게 꾸며도, 10년만 지나면 그거나 이거나 큰 차이가 없어지고, 20년만 지나면 대충 거기서 거기고, 30년만 지나면 건강하게 살아준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몸이 소망입니다. 거룩한 몸이 빛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몸에 은혜를 주십니다. 우린 거룩한 몸으로 영생을 얻게 됩니다. 거룩한 몸이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됩니다. 거룩한 몸이 소망입니다.

저는 우리 동광 하늘 가족들 모두가 섹시한 몸이기 보다 거룩한 몸으로 구별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우리 동광 교회가 오직 거룩한 공동체로 온전히 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지체들이 모여 거룩한 빛을 발하는 동광 교회, 그렇게 이 세상의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거룩한 당신이 소망입니다.>

4. 교회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 분의 소유된 백성이라!> 우리를 가리켜 그 분,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시는군요. 그런데 그 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세상의 소망이 된다는 말씀인가?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의 소유가 되어버린 인생에게서는 소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돈의 소유된 백성, 우리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눈을 뜨면 오직 돈, 돈, 돈 하는 사람, 결국 돈을 사랑하다, 그만 돈 때문에 돌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돈의 소유, 곧 돈의 노예가 된 백성, 결고 소망일 수 없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 권력의 소유가 된 백성이 우리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것을 잡기 위해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행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단 권력을 장악한 사람, 동시에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권력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닌 어떤 것에 매인 백성이 이 세상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 매인 상태가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를 따라가는 인생, 비참할 뿐입니다. 해서 오직 그 분의 소유된 백성, 곧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께만 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소유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의 나 된 것 역시 오직 주님의 은혜인 것을 인정하며, 평생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린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 3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안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늘 아래 어떤 교회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상의 소망일 수 있음은, 교회만이 갖는 특이성 때문임을 오늘 배웠습니다. 남은 과제는 그 특이성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그 분의 소유된 백성으로 설 때에, 우린 세상의 소망이요, 구원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세상의 소망인 이유입니다.

이 소망을 우리에게 다시 주시고자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십니다. 이제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다. 나는 주님의 순결한 신부,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가장 순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한 주간, 주님의 신부로서 스스로를 거룩하고 순결하게 단장하며 말씀 따라 빛으로 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우린 찬송을 부르며 그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 죽겠다고 통곡을 해도, 우린 소망이 있다고 외치며, 희망의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택하신 족속이요,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래서 거룩한 나라요, 그래서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하신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소망입니다. 아멘! (장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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