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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라 (마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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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절기입니다.
영원히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그를 통해 온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굿간에서, 으앙 으앙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갈 그때가 역사를 깨우는 은총의 순간이 된 것입니다.

이런 동화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왕자가 하루는 말을 타고 산책을 하다가 어느 다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다리 밑에 아주 어여쁜 소녀의 얼굴이 물에 비쳐 보였습니다. 그 소녀는 거지 소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왕자는 그 소녀와 사귀고 싶었습니다. 말에서 내려 다리 밑으로 가자, 소녀는 깜짝 놀라 급히 도망쳐 버렸습니다.
다음날 왕자는 소녀가 보고 싶어 다리로 가 보았지만, 역시 소녀는 도망쳐 버렸습니다. 왕자는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다음날 왕자는 찬란한 옷을 벗어 버리고 거지 옷을 입고 그 다리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어제까지 도망하던 소녀는 오늘은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야 드디어 아름다운 사랑의 만남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영광스러운 하늘의 자리를 비우시고 친히 종의 형상을 입고 인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낮고 천한 마굿간, 먹이통인 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낮은 모습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서 뵙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성탄절은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 복된 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공생를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주면서 선포한 내용입니다. 마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 .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가 무슨 뜻입니까? ‘회개’는 영어로 ‘repent’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후회하다’는 뜻과 ‘회개하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회하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흔히 사람들이 회개를 후회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후회’는 단순히 과거만을 돌아보고 통탄하는 것인 반면, ‘회개’는 미래에 대한 결단이 따르는 것입니다. ‘후회’는 단지 과거 자신의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만 할 뿐 중심의 변화는 수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도 ‘그 때 이렇게 할 걸’ ‘젊었을 때 좀더 열심히 공부한걸’, ‘일을 열심히 할걸’ ‘껄껄 . . .’ 많이 후회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후회가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지 못합니다.

반면 ‘회개’는 후회를 포함하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적으로 결단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걸어오던 죄악의 길에서 발길을 돌려 이제 앞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대한 정확한 단어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후회는 죄책감과 멸망만 가져오지만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고 진보적 삶을 얻게 합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같이 주님을 배반했지만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는 회개하므로 구원받고 초대교회에 귀중한 인물이 되었지만 예수님을 은전 30에 팔았던 유다는 후회만 하므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와 후회의 차이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후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죄의 뜻’은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과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즉, 빨간 신호가 켜졌는데도 길을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나쁜 습관으로 계속 빠져들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유혹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개선없이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는 돌이킨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생의 출발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회개하라”와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외친 이 외침은 이미 구약성서에서의 예언된 멧세지입니다.

이사야 40장에는 하나님께서 위대한 임금, 구원자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 위대한 임금이 오시는 길을 미리 예비하고, 평탄케 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선포는 50년간이나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버려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며 위로하려고 오신다는 외침은 희망의 선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런데 이 예언을 위해서 광야에 등장한 사람이 세례요한인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이 외침은, 우리의 희망이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우치는 소리입니다. 또한 주의 재림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희망의 선포입니다.

이 말은 옛날 왕들이 행차하실 때, 그 왕 앞에서 나아가는 전령이 외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옛날 왕이 어느 곳을 행차하려고 할 때에 왕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발대가 먼저 갑니다. 가서 이제 왕이 행차하실 수 있는 넓은 길을 닦습니다. 산을 메우고 강에 다리를 세우고 넓은 길을 만든 다음, 주변 마을에 들어가서 왕을 환영할 수 있는 인파를 만들고 혹은 경계하면서 준비를 잘한 후 왕께서 그 환영받는 자리로 큰 길을 통하여 오시게 하는 것이 선발대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해서 왕이 행차하면 왕이 행차했다 해서 왕의 길, 곧 ‘왕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왕을 맞으려면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첩경이란 여기서 “High way” 고속도로를 의미합니다. “위대한 왕께서 이제 오신다. 그러므로 빨리 곧은 길을 만들어서 왕의 행차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제아무리 자동차가 좋아도 비포장도로로 가노라면 참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길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길은 세계적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참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들여서 왜 길을 만드느냐”고 반대했습니다만 길을 뚫어 놓자마자 북부와 남부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물동량의 운송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오늘날의 기적의 터전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은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길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길을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많은 것들은 부수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도 사서 부수어야 되고 골짜기는 메워야 되고 산은 뚫어야 합니다. 길을 내는 데에는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그동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것은 예로부터 돈만 생겼다 하면 성 쌓는데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을 쌓고 담장을 높입니다. 자꾸 막아 버립니다.
베이징(北京)에는 유난히 담장이 많습니다. 평균 높이 11m의 붉은 담이 쳐진 자금성(紫禁城)을 비롯해서 그 유명한 길이 6000㎞의 만리장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중국의 안전과 부(富)를 지키려 했던 거대한 벽입니다. 중국인의 담 쌓기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 회사의 사무실은 직원들 사이의 업무 공간을 나눈 칸막이가 유난히 높고 또 많습니다. 까치발을 해도 쉽게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미국인의 특성은 길을 잘 닦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길부터 훤하게 닦고 철도부터 놓습니다. 그래서 미대륙 같이 드넓은 땅을 철도와 고속도로로 횡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일 낮, 3일 밤을 쉬지 않고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동서 횡단 고속도로를 만든 것이 미국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좋은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곧은길이 필요합니다. 구부러진 길은 효율이 없습니다. 평탄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튀어나온 곳은 깎아내고, 낮은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에는 굴을 뚫고, 강에는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본문에는 우리 마음에도 이같이 곧은길을 만들라고 권고합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마음의 길을 갈고 닦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군의 대장이신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길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1. 골짜기는 돋우어야 합니다.
요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골짜기가 깊은 곳은 교각을 세워 다리를 만듭니다. 왠만한 산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 마음에도 여러 골짜기가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열등감의 골짜기, 낮은 자존감의 골짜기 등이 있습니다. 마음의 골짜기를 돋우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이 열등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큰 장애가 됩니다. 이 문제가 치유받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은혜를 주시고 축복해 주시더라도 당당하게 내 것으로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체적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외모의 열등감이 있습니다. 가난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이 열등감은 자존감을 떨어뜨립니다. 그러므로 꼭 치유 받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기도가 부족한 것도 나의 골짜기가 됩니다. 이것을 이기는 비결은 더 많이,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심이 부족한 것도 나의 골짜기 일 수 있습니다.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골짜기를 메울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 나를 연단하시고, 더 크게 사용하십니다. 원망과 불평의 고짜기, 절망, 열등감의 골짜기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믿음과 능력으로 이겨 내시기를 바랍니다.

2. 산은 낮추어야 합니다.
이 산은 교만을 가리킵니다. 교만한 마음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열등감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심리적 요소라면, 교만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요소입니다.
성경속에 죄에 대한 단어가 1,100가지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단어가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교만은 잘난 체 하는 것입니다.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장점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다 자기가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비판해 버립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교만의 산을 헐지 못해 참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만은 우리의 적입니다.
천사를 마귀로 만드는 것이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이 겸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만의 높은 산을 깎아 겸손의 평지로 만들 때, 주님을 모시게 되고 은혜도 받게 됩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단테가 한번은 연옥에 가서 구경을 합니다. 한구석에 가보니 여러 사람들이 뒷잔등에다 무거운 돌을 가득 지고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무거운 돌을 지고 서 있습니까?” 그랬더니 “저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에 너무 교만해서 허리를 굽혀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낙원에 올라가는 문은 낮아서 허리를 굽혀야겠기에 그 연습을 하느라고 저러는 것입니다. ” 세상에서 허리를 좀 굽히는 것을 배웠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교만을 이기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맡겨주셔도 “주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자를 사용해 주시는 것만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솔직해져야 합니다. 교만은 거짓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죄악입니다. 자신을 과대포장하려고 하는 속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좀 더 솔직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독불장군을 싫어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교만한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내 자아가 살아나지 않도록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마음의 교만을 깎아서 겸손의 길을 만들 때 주님이 거기로 오시는 것입니다.

3. 굽은 것이 곧아져야 합니다.
구부러진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펴서 바르고 곧은 마음의 대로를 만들어야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데 방해되는 것들, 이웃과 내가 하나 되는데 방해되는 것들, 이런 것들이 구부러진 것입니다. 이 구부러진 것들을 다 제해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부러진 마음, 비뚤어진 마음이 있는 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에 들어오십니까? 곧은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왜 주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까? 그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삐뚤어진 생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온통 세상이 다 삐뚤어지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움, 질투, 시기, 투쟁, 오만, 죄악과 같이 구부러진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을 바꾸고 성품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길을 닦아서 그 길로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이 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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