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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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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 멸망치 않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심 감사합니다.
예수님 나심을 기둥교회 모든 성도들과 함께 감사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사랑의 주님, 얼어붙은 땅이, 주 나신 소식으로 녹아지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세상은 평화 모르고, 어지러운 소식들로 비통해 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 때문에 가슴아파합니다.
저들 모두 천국의 소망을 갖고 평안케 하시기를 구합니다.
병상에 누워 신음하는 이들에게, 객지와 외국, 군대에 있음으로 외로운 가족들에게
성탄절의 기쁨과 사랑 받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우리가 모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참석한 모든 이들의 헌신을 받으시옵소서.
부족한 종에게 능력을 주셔서, 구세주 탄생 소식을 힘있게, 능력있게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기쁨과 감사의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모두 옆의 분과 "Merry Christmas!"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인사는 "Merry Christmas!"입니다.
보통 뜻 없이 인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Merry는 '명랑한', '쾌활한'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Merry Christmas는
"기쁜 성탄되세요!, 즐거운 성탄 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큰 기쁨의 날임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듣습니다.
오늘은 어떤 뉴스를 듣고 보셨습니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요즘 대부분의 뉴스들은…
가슴 벅찬 기쁨 보다, 답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 입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손에 나라를 맡기면
지상 천국이라도 만들어 줄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기대했던 엄청난 일들 대부분 실망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놀랍게도 2000년 전 유대 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는 평화의 시대라고 불렸던 때입니다.
로마가 점령했던 모든 땅들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Caesar Augustus)는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죽은 후 혼란에 빠졌던 로마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덕에 로마제국은 안정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로마에 평화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변경의 수비도 견고했고, 이민족(異民族)의 침입도 없었으며,
국내의 치안도 확립되어 교통, 물자의 교류도 활발하였고,
로마제국 내의 각지의 도시(都市)가 번영하여 그야말로 '로마의 평화'를 누리는 것 같았고
그들에게 '로마의 평화'가 주는 기쁨이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로마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년경~기원후 65년)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의 로마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로마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뺏고 빼앗기고, 서로 휴식(평안)을 망쳐놓고,
서로 불행하게 만드는 사이에 그들의 인생은 소득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정신적 향상도 없이 지나간다.
아무도 죽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저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에 희망을 걸며,
사후의 일 - 거대한 분묘 … 화려한 장례식 - 까지 대비하고 있다."

로마 제국이 사상 유래 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만일 로마의 통치 아래서 누리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였다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가장 평화로웠다는 그 시대, 그 땅에 평화가 없었고, 참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필요했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의 나심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 (good news of great joy: NIV)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기쁜 일이, 기쁨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큰 기쁨"(great joy)은 없습니다.
세상에 뉴스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엔 정말 "좋은 소식"(good news)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처음 성탄절에 예수님을 통해 기쁨을 누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기쁨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때 기쁘기도 했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소식은 마리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말이었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1:31)

이것은 당시 보통 여인에게는 죽음의 소식입니다.
남편을 맞이하지 않은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유대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마리아에게 이 소식은 나쁜 소식입니다. 엄청난 비극의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먼저 가브리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30)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은혜는 마리아가 낳을 아기가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왕위)"(눅 1:32)를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눅 1:35)이시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마 1:21) 예수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
무서운 일이지만,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마리아는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닥치는 일이 인간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자신을 통해 시작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고통스러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 해도, 예수 잘 믿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도,
성경말씀대로 살아도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여러분은
마리아의 고백처럼 "말씀대로 …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 주님의 뜻하심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려워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 승리를 믿노라"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목자들의 기쁨

오늘 본문 8~11절을 보면,
베들레헴 근방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8~11) 했습니다.

첫 성탄의 메시야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된 사람들은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들판의 이름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입니다.
구세주의 탄생 소식이 왕궁에 있는 사람에게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나신 소식이 말씀을 연구하던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변방에 있던 목자들에게 그야 말로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먼저 들려졌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이 말씀에서 "오늘"(Today)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오늘" 나셨습니다. 약속의 메시야가 "오늘" 오셨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성탄절이 2000년 전의 한 아기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성탄절이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내게 해당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추억하고자 모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신 그리스도, '오늘'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내게 구세주가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며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나신 구주의 소식을 듣고 목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5절에 보면 " …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 " (눅2:15)
목자들은 "가자"했고 "보자"했습니다. 들판의 목자들은 양치는 사람들입니다.
밤에 들판에서 메시야가 났다고 해서 '가자'고 했다는 것은 양떼를 끌고 갔거나,
아니면 양떼를 버려 두고 갔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 " (눅2:16) 했습니다.
간 것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빨리 갔습니다."
가서 대충 보고 오지 않았습니다. 구세주가 어디 계신지 "찾아서" 보았습니다.

이 목자들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내리는지,
우리가 메시야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시는 은총(선행적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해서 그 은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들처럼 들었으면 빨리 가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듣고 오지 않습니다.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갔던 목자들에게 이루어진 결과가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눅 2:20)

그들은 메시야의 소식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나심의 소식을 들었고
예수님의 나심을 찬양하기 위해 모였으니
그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구원의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듣기는 잘합니다. 그러나 구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소식이 '오늘' 우리 가운데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기는 듣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인공이신 예수님 없는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뺀 크리스마스를 즐깁니다.
오늘, 여러분은 들판의 목자들처럼… 예수님을 만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소유한 성도가 되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동방 박사들의 기쁨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하고 경배한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이상한 큰 빛 하나가 나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만왕의 왕이 나실 징조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준비하여 그 별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 길을 여행하여 그들이 유대 베들레헴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
한 아기가 강보(보자기)에 싸여 구유(짐승의 밥통)에 누운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10~11)

동방박사의 기쁨은 참 빛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평화를 안겨는 준다고 했지만 당시 고대 근동은 암울했습니다.
거대한 제국 로마는 세상을 짓밟았고 자신들만을 위한 평화와 번영만을 누렸습니다.
한마디로 그 세상에서 희망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 어두움의 때에 어디서 빛을 찾아야 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동방의 박사들이 그 희망의 빛을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은 빛은 결국 예수님이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 빛임을 소개합니다.
(요한복음 1장 9~12절 봅니다.) 함께 읽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빛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빛을 만난 여러분은 참된 소망을 가졌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도 희망이 없고, 빛을 찾을 수 없을 때… 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대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중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평소 어둡던 숲이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숲 사이로 영롱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둡던 숲에 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인간도 저 전나무와 같다. 한 개인은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루터는 이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촛불을 장식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어두움이 많습니다. 빛을 찾기 어렵습니다.
동방박사가 찾았던 예수님의 빛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사람 중에 오시면,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과 느낌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에 라이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우리 목사님이?…' 하며 이상한 생각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 차가 너무 더러워서 세차를 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자동차 문이 얼어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고 교회 관리실에 물었더니 알려준 방법이
라이터로 열쇠를 달구고 불에 달궈진 열쇠를 구멍에 넣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려 준 방법대로 해보니 쉽게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계속 추우니 어쩔 수 없이 라이터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라이터를 가지고 다녀도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소주병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아도
'아, 석유를 받아 가시나보다'라고 해야지 이상한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막걸리 병을 들고 가도 '감주인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신뢰관계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의 고정관념, 지금까지의 경험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남에 대해 함부로 정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모두 다 흠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어두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가능성이 있는 은혜입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나니 그 은혜가 임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넘어 오시는 구원의 기쁜 은혜를…
그런 은혜를 오늘 여러분도 함께 입으시길 바랍니다.

큰 기쁜 소식이 '오늘' 우리 중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러 갔던 목자들처럼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오셨음에 감사합니다.
성탄의 구주를 온전히 모신 성도로서 참 기쁨을 누리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그 먼 길을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힘들고 어렵게 예물을 준비해 가서 만났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 거룩한 성탄절에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여러분 속에 구세주로 영접할 뿐 아니라
그 구세주 나심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빛으로 힘있게 사는 복된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마리아
들판에 양 치던 목자, 먼 곳에서 나신 예수님을 찾아 빛을 따라 갔다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났던 동방박사,
이 옛날 얘기를 듣고 가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오늘 나신,
오늘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12월 25일 고신일 목사,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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