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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복음의 시작 (막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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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란 말은 "기쁜 소식"이란 말입니다. 성경시대의 사람들은 이 복음이란 말을 몇가지 용도에서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장모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갑작이 못오시게 되었다는 소식이 왔을 때(당시는 오늘날과 달라서 장모님이 몹시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모양입니다. 오늘날은 친모보다는 장모님이 더 좋은 관계이기도 합니다만......), 또 하나는 세금이 내렸을 때(세금은 언제나 작게 내던 많게 내던 달갑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금은 보통 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세금때문에 등이 휘는 시대이고 보면 세금이 내렸다는 말은 정말 기쁜 소식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이 귀한 왕이 왕자를 생산했을 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런 일들이 대단히 중요했고 그러므로 이런 소식이 기쁜소식 즉 복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탄절은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적인 용어로는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좀더 학술적인 용어로는 '인카네이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신 예수탄생이 '복음의 시작'이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제사장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언자들을 멸시하고 제사장들을 욕보였습니다. 이런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온 것입니다.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그대로 놔두어도 좋을 것이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 어째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 '복음'입니까?

  1. 높고 높은 신이 우리를 위해서 낮아지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신들은 군림하고 임의로 다스리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빠앗가는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여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주시고, 우리의 허물을 뒤집어 쓰시고, 우리의 질고를 대신 앓아주시고 아퍼해주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나실 때,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자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은 그렇게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속한 민족인 유대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이었으며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가 자라신 곳은 갈릴리 나사렛이었습니다. 반역자의 소굴, 그래서 늘 채포조가 달려오는 곳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하셨습니다.
  이렇게 낮은 자로 오신 것은 가장 낮고 천한 자에게까지라도 희망을 주시고 평화를 주시고 가능성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낮아져서 오신 주님을 영접하고 기념하고 축하하고 감사하는 우리들이 높아지기만 연습하는 것은 주님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모든 인간적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겸손히 낮아진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하겠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듣고자 하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낮아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과 위로와 높여주심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시대에는 두렵고 무서운 소식이 너무 많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실 구세주가 나셨다는 것은 기쁜소식이요 위대한 소식이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인 정현경씨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는 귀신의 땅에서 태어나 귀신의 땅에서 성장했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붙어 있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로 채워졌다. 부억귀신들, 변소귀신들, 물귀신들, 그리고 산귀신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온통 귀신이 들끓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해가 진 후에 나 혼자 스스로 밖에 결코 나가지 못했다. 그 때 당시 변소는 밖에 있었는데 내가 변소에 가고 싶을 때마다 어른들과 함께 가야했다. 나는 변소 귀신이 무서웠기 때문에 용변보는 동안 나의 변소문을 계속 열어 두었다. 사람들은 변소 귀신은 변기통으로 사람을 끌어드리는 피흘리는 빨간 손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변소가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역시 나 혼자서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13세까지 어른들과 함께 잠을 잤다"라고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그의 책에 기록해 놓은 것을 읽었습니다. 

  저도 어렷을 적에 이런 귀신 이야기들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추억이나 경험은 저에게도 있고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경험들을 무수히 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깊이 길들어져 있습니다. 두려워 하는 감정에 쉽게 몰입되기도 하고,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일을 망치는 그런 경우들도 많습니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들도 두려워 떨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성을 잃어버려서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사실 귀신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이었고 공포와 전율이었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도 오셔서도 게속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워 하지 말라, 무서워 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예수탄생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믿지 믿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많은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 믿고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3. 예수 탄생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기록이 창세기 1.2장에 나와 있습니다. 세상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에 나온 "태초"라는 히브리말과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할 때 이 "시작"이라는 헬라어말이나 누가복음 1장 2절,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도 동일하게 '시작'이라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태초인 "알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인 "알케"는 전무후무한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의 시작이냐 하면 구원의 새로운 시작이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요, 약간의 보수나 하고 고쳐쓰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이 시작하신 것입니다.

  4. 자, 이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십시다. 내 욕망과 내 의지를 따라 살려고 했던 지난  삶이 계속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면, 주와 함께 다시 사는 삶은 소망과 기쁨을 갖다 주리라 확신합니다.
주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삶은 복음의 시작처럼 여러분들에게 기쁨과 승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의 바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탄은 새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을 연말과 함께 보내는 그런 절기로 생각하면 않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연말이라고 하고 끝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한발 앞서 먼저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초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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