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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세 가지 예물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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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 드린 예물

지난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7일간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즉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회의’에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21개국의 정상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개최한 한국은 한 가지 적지 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도대체 이 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재직 중 다른 국가원수들로부터 받은 선물 가운데 퇴임하면서 가지고 나간 선물이 수십만 달러 어치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쯤 되면 그 정도야 가져갈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미국은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다른 국가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 260달러(한국 돈 26만원) 이상의 선물은 반드시 신고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60달러가 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소장할 수 있지만 그 액수가 넘으면 반드시 신고를 하고 강제적인 규정은 아니지만 외교박물관 등에 기증을 하도록 하는 전통이 있는데 클린턴 대통령은 그 규정과 전통을 어긴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법률상 대통령 같은 공무원은 외국에서 외교적 차원으로 받은 선물 가운데 100달러 이상, 10만 원 이상일 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보존 가치가 높은 품목은 박물관 등에 기증해서 전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국 정상들에게 줄 선물은 가격이 너무 높고 사치스러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품위가 떨어지는 선물은 당연히 안 되겠지요. 더욱이 그 나라의 전통이나 과학수준을 대표할만한 선물이어야 하기에 선물을 선정하는 데 더욱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최 측은 고민 끝에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의 과학기술을 대표할 만한 삼성 디지털 카메라와 APEC로고가 새겨진 서류가방, 그리고 기념촬영 때 입었던 두루마기가 선물로 제공되었고, 대통령 부인은 별도로 만찬 때 사용했던 우리나라 전통 식기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남에게 예물이나 선물을 줄 때 그 선물의 수준은 반드시 받는 상대방의 품위와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이 돌아오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혹은 이번에 나는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고민하게 됩니다. 성탄절 선물은 물론 소중하지만 너무 비싸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하면 안 되니 고민입니다. 종류도 고민이고 또 이 선물을 과연 상대방이 좋아할까도 고민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수준에 걸맞은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에 맞게 장난감 같은 것을 사주어야 하며 어른 중에서도 그 사람의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맞게 선물을 해야 제격인 것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성탄절 스토리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며 세 가지 예물을 드리는 장면입니다. 오늘 설교 후에 부를 찬송가도 116장 ‘동방박사 세 사람’입니다. 그런데 과연 왜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분명 동방에서 박사들이 왔다고 되어 있지 세 명이라는 말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세 명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전통적으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예물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이므로 한 사람이 하나씩 드렸다고 생각해서 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워낙 오래 된 전통이니까 세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고 또 나중에 가서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이 멜콘, 발사살 그리고 가스퍼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들의 이름은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1절에서 이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요? 과연 이들이 온 동방은 어떤 곳을 뜻하며 박사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들이 온 동방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마도 바벨론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까닭은 물론 바벨론이 동쪽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벨론에는 남왕국 유다 멸망 후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후손이 상당수 남아 있었고 바벨론 사람들 중에 이 유대인들과 유대관계를 가지고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박사’라고 번역된 낱말은 점성술사, 천문학자 혹은 마술사를 뜻하는 말인데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동방박사들은 먼 동방의 바벨론에서 온 점성술사나 천문학자들로서 평상시에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고 있었으며 지위 또한 매우 높은 존귀한 사람들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이들은 자신들이 동방에서 그의 별, 즉 아기 예수님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별은 무엇인가? 조금 전에 이들은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한 일들을 결정하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을 하는 데 익숙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로 별을 이용하신 것이지요. 민수기 24:17 같은 곳에서는 별을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기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야이며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자로 오실 것을 별을 통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특별하게 빛나는 별을 본 사람들이 누구냐? 멀리 동방에서 늘 별을 관찰하던 박사들이 그 특별한 별을 보고 이 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유대 땅에 메시야, 왕이 태어나셨다는 증거다 생각하여 그 별을 좇아 온 것입니다.

세 가지 예물

그런데 이 동방박사들은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빈손으로 경배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누가 왕에게 경배하러 가면서 빈손으로 가겠습니까? 지금이야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 비싼 선물 가지고 가면 뇌물이라는 의심을 받거나 처음 말씀드린 대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여 대통령은 잠시 만져보기만 하고 곧바로 박물관으로나 가겠지만, 옛날에는 그 누구도 다른 나라의 왕을 만나러 가면서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오면서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다른 나라 왕을 만날 때는 반드시 가장 귀한 보배를 예물로 가지고 가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따라서 저 먼 동방에서 별을 따라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도 가장 귀한 보배를 예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11절에 보니 이들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한 후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예물은 단순히 비싸고 귀한 것이라기보다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황금은 불변하는 성질 때문에 동서고금을 통해 매우 값진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또한 유향은 값비싼 향료의 한 종류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 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 것입니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액체로서 좋은 향기를 내기 때문에 상당히 가격이 비싼 품목입니다. 특히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또는 마취제로 사용되었습니다(막 15:23).

그런데 이 세 가지 예물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의미 외에 더욱 깊은 영적 의미가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이며 우리 장로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빈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각각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되심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황금은 찬란한 영광을 뜻하므로 메시야로서의 왕권을 상징하며, 유향은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므로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를 상징하고, 몰약은 시체의 방부제로 사용하므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장사되심을 상징한다고 본 것인데 참 좋은 해석입니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님의 가족이 나중에 헤롯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을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드릴 예물은?

오늘 우리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을 살펴보면서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은 당시로서는 가장 귀한 것으로 왕에게나 드리는 예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동방박사들이 천한 목수의 아들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인 그 천한 아기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요 그리스도요 왕(King of kings)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뭐하러 동방에서 그 먼 길을 별을 따라 찾아왔겠으며 그것도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품속에 가장 귀한 세 가지 예물이 든 보배합을 품고 왔겠습니까? 또 그들이 왜 헤롯이라는 권력자의 부탁을 마다하고 아기 예수를 경배한 후 일부러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는 수고와 위험부담을 했겠습니까?(12절) 그것은 아기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메시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 3절처럼 크게 소동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분명 그리스도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날 것이라고 말했으므로 베들레헴에 나신 그 분이 메시야요 왕인 줄 알았을 텐데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있는 아이들까지 두 살 아래로는 다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로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알면 찾아 죽이려는 수작이었던 것입니다. 똑같이 아기 예수가 메시야요 왕인 줄 알았는데 동방박사들은 경배하며 소중한 예물을 바쳤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헤롯은 그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요? 그것은 헤롯이 자신의 왕권을 빼앗길까봐, 그것을 움켜쥐고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헤롯은 실제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첫 아내에게서 얻은 첫 아들을 죽이고  또한 둘째 아내와 그 두 아들까지 살해한 사람입니다.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죽기 직전 예루살렘의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을 감옥에 가둔 후 자기가 죽으면 같이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을 묻자 자기가 죽으면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존경 받는 사람을 같이 죽이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냐고 대답한 사람이 바로 헤롯입니다. 헤롯은 이와 같이 왕권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메시야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기꺼이 내게 가장 귀한 것을 바칠 각오가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나아가 내 가장 귀한 자리도 그분께 내드리고,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그분께 기꺼이 내어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헤롯처럼 여전히 내 권리, 내 자리, 내 주도권 안 빼앗기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 소중한 것들이 너무도 귀하고 아까운 나머지 얼마든지 예수님을 모른 척 하거나, 배척하거나, 버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면서도 죽이려 했던 헤롯처럼,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끝까지 그분께 왕권을 내드리지 않고 내 자리, 내 권리, 내 소유를 사수하려는 크리스천의 모습은 아닐까요?

두 번째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보배합(=보물상자)는 열려서 사용되어야 제격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귀한 보배합은 반드시 예수님 앞에서 열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드린 예물은 예수님의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쓰여져야’ 합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귀한 예물이 아기 예수님의 애굽 피신 때 요긴하게 쓰인 것처럼 말입니다. 안 쓰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 능력, 물질, 지위와 권력, 건강,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꼭 드려야 하며 예수님이 쓰겠다고 하시는 곳에 요긴하게 쓰여질 때 비로소 가치가 있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것인 양, 내가 갖겠다고, 내 맘대로 쓰겠다고 보배합 안에 꽁꽁 숨겨 두고 안 꺼내면 가치가 없어지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귀한 성탄절에 우리가 아기 예수께 드릴 가장 귀한 보배는 무엇이며 소중한 예물은 무엇일까요? 다른 데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보배합 속에 들어있는 그것입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내가 쓰고 싶고 내가 갖고 싶은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아낌없이 예수님의 필요에 따라 드린다면 그 소중한 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해 쓰여지고 인류 구원을 위해 가장 귀하게 쓰여질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 앞에서 바로 지금 나의 보배합을 열어 그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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